한일 ‘위안부’ 합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돕고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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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1월 1일에 발표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되자, 가장 크게 기뻐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합의 직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는 합의 결과를 환영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로써]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의 진전을 비롯해 폭넓은 지역 및 세계적 문제들에 대한 협력이 심화하기를 기대한다.” 미국 국무부에서는 “이번 합의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말마저 나왔다.
미국 정부가 한일 ‘위안부’ 협상의 타결을 위해 외교력을 동원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위안부’ 합의를 위해 자신들이 “건설적 구실”을 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외교부 장관 윤병세도 협상 과정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미국 오바마 정부는 박근혜 정부한테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과 타협하라고 집요하게 촉구해 왔다. 한·미·일 동맹을 구축·강화하는 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커다란 걸림돌이 돼 왔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과거사 문제를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다. 2015년 2월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은 한 연설에서 한국 지도자들이 과거사 문제 등을 거론하며 “과거의 적을 악당으로 만듦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여러 차례 직접 나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비롯한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
기뻐하는 미국
미국이 이토록 ‘위안부’ 문제를 덮어 버리고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를 원한 것은 지속적으로 점증하는 제국주의 간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2000년대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하고 2008년 경제 위기까지 오면서, 미국의 세계 패권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이 와중에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떠올랐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 등지에서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한편, 상대를 약화시키기 위한 외교적 책략도 치열하게 동원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동맹 구조를 견고히 구축하려고 애써 왔다. 일본 총리 아베도 이에 화답해 대중국 견제의 선봉장을 자임해 왔다.
특히, 최근 중동과 유럽의 상황 때문에 미국은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 ‘안보적 기여’를 훨씬 더 많이 해 주기를 강조해야 할 처지다.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면 유럽·동아시아·중동 모두에서 헤게모니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혼자 힘으로 세 지역에서 제기되는 도전에 모두 대응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상당한 역량을 투입한 와중에 중동 상황은 크게 악화했고 러시아는 전보다 더 많은 운신의 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중동 개입이 낳은 괴물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아이시스)에 이어,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 문제도 다뤄야 한다. 미국의 상대적 지위가 약해지면서 중동에서 제국주의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중동 정세는 더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힘을 동아시아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로선 일본을 중심으로 대중국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더 사활적일 게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부담을 가장 확실히 나눠 질 수 있는 국가는 세계 3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일본이다. 미국은 한국도 이 다자동맹 구조의 ‘하위 파트너’로서 전략적 구실을 맡고 군비도 지금까지보다 더 많이 부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번 ‘위안부’ 합의의 다음 수순은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가 될 것이다. 일본 외무상 기시다 후미오는 “[‘위안부’] 합의에 의해 일·한, 일·미·한의 안보 협력도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요건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일의 군 당국 간 실무협의가 비밀리에 여러 차례 열렸다는 사실이 최근에 폭로됐다. 미국은 3월 핵안보정상회의 때 다시 한 번 한·미·일 정상회담을 열고, 군사 협력 문제에서 좀 더 확실한 진전을 꾀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 협상에서 미국의 개입과 압력을 의식했다. 즉, 박근혜는 오늘날의 친제국주의 정책을 위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을 또다시 희생시켰다.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그래서 ‘박근혜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매국 행위를 했다’는 지적들이 있다. 이번 ‘굴욕’ 협상의 본질이 “매국 대 애국”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는 ‘위안부’ 문제에서 매우 부당하고 기만적인 타협을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다른 한편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도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
한국의 역대 지배자들은 모두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일본 지배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한국이 일본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경제를 성장시켜 온 데다가 미국과의 군사 동맹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안보 문제에서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한국 역대 정부들의 “한일 관계 [정책은] 언제나 국내용과 대외용이 따로 존재했다.”(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가 깊어진 오늘날에도 이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한국 지배자들은 전보다 훨씬 더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게 됐지만, 미국의 동맹으로서 경제적·군사적 이득을 얻고 한국 국가의 국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기본 전략까지 바꾸지는 않았다.(물론 중국과의 관계 악화 없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균형’을 어떻게 이룰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지만 말이다.) 한국 지배자들이 보기에 중국은 당분간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고, 북한 문제에서도 미국의 안전 보장 구실을 대신 해 줄 리 없다. 그리고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한미 동맹을 강화해 안전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다.
안보 문제나 한국 국가의 국제적 지위 상승 등을 위해 한미 동맹을 중시할수록 한국 지배자들은 한·미·일 동맹의 구조에 깊숙이 발을 담그게 된다.
박근혜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도 의식했을 것이다. 여전히 한국은 수출 상품에 필요한 많은 중간재와 자본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전체 외국인 투자 가운데 일본의 투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한국과 일본 기업이 함께 진출하는 사례도 많다. “에너지와 인프라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는 게 10건이 넘는다.”(〈한국경제〉 사설)
그래서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전경련은 성명을 내어, 양국의 경제 협력이 증진할 것이라며 반겼다. TPP 참여 협상도 더 원활히 진행되고, 중단된 한일 통화교환협정도 다시 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 같은 제국주의적 국가들에 편승해 지위 상승을 추구한 결과, 박근혜 정부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위안부’ 합의를 한 것이다. ‘위안부’ 합의가 “어떤 합의보다 잘된 합의”라고 기만했고, 이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모두가 다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축해 버린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태도에는, 자신의 경제적·안보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위안부’ 피해자 같은 천대받는 사람들은 언제든 내칠 수 있다는 한국 지배계급의 냉혹한 논리가 깔려 있다.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이처럼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미국·일본 지배계급들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같은 정부들도 다른 우파 정부들처럼 한일 관계에서 ‘미래로 나아가자’는 입장을 표방했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은 이번 ‘위안부’ 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보좌한 노무현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12월 31일 청와대가 ‘역대 정부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다분히 문재인과 민주당의 약점을 겨냥한 것이다.) 2004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은 “내 임기 동안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본의 과거사 왜곡 문제가 불거져 국내 여론이 나빠지자 노무현은 2005년 태도를 바꿔, 강경하게 말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한 것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같은 일본의 침략 과거 청산은 한국과 일본에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는 것에서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이후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자신의 전략적 중심에 놓고 패권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일본의 침략 과거 때문에 일본과 주변국들의 민중은 강하게 반발해 왔다. 지금도 아베의 과거 침략 사실 부정이나 집단적 자위권 채택 등은 대다수 한국인들의 불안감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도 안보법제 반대 운동이 크게 성장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에 반대했었다. 향후 한일 군사 협력 문제나 일본 평화헌법 개정 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한·미·일 지배자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계속 대중의 불만과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백지화돼야 마땅한 ‘위안부’ 합의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나온 후, 이 합의에 대한 공분이 일었다. 합의 직후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한일 ‘위안부’ 합의를 옹호하는 뉴스와 논평을 내보냈고 박근혜도 직접 나서 이번 합의를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 달라”고 말했지만, 반대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12월 30일 수요시위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1천여 명이 모였다. 그리고 집회에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수백만 명이 이번 합의가 매우 부당하고 굴욕적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 할머니들은 “[박근혜] 정부가 우리를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박근혜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염원을 완전히 무시했고, 협상 내용조차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다. ‘연휴 기간이라 할머니들께 미리 말씀을 못 드렸다’는 외교부 차관 임성남의 궁색한 변명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분노와 배신감만 더 키웠다.
부당한 합의를 즉시 파기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12월 31일 청와대는 재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이 합의를 수용하지 않으면 24년 전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그러면 정부도 이 문제에 손을 놓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협박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을 모두 “유언비어”라고 매도하면서, 반대 여론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릴 심산이다.
협박
‘원점’ 운운하는 청와대의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한일 두 정부는 일본 정부가 20년 넘게 고수해 온 입장에서 거의 진전이 없는 수준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고 처음 제기한 이후로,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하는 게 최소한 “피해자들이 납득할 조처”라고 생각해 왔다.
△ 논란에 휩싸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 이미진
그러나 이번에도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표현했으나, 이는 1993년 고노 담화의 표현을 그대로 베낀 것일 뿐이다. 이 표현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당시 일본군에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일본 외무상 기시다 후미오는 이것이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의미한다고 못을 박았다. 즉, 아베 정부는 여전히 당시 일본 국가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일본 총리 아베의 ‘사죄’가 당연히 진정한 사죄일 리 없다. 심지어 총리가 직접 발표한 게 아니라 대독 ‘사죄’였고, 합의 발표 직후 아베는 “일본의 다음 세대가 계속 사죄하는 숙명을 지면 안 된다”, “더는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연히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지원 재단’에 일본이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대기로 한 게 배상이나 다름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일본 외무상은 이 돈이 배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것은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은 회피한 채, 재단 출연금 형태로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에서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을 철거·이전해야 출연금을 낼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위안부 지원 재단’ 안은 과거 일본 무라야마 정부가 국민 성금 형태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주겠다고 한 “아시아여성기금” 안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그때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잘못을 인정한 “배상”이 아니므로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해야 했다.
일본의 공식 사죄나 법적 책임 인정이 없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번 합의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약속해 줬다. 그리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도 합의했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은 ‘위안부’는 물론이고 강제징용·핵피폭 피해자 등에 대한 배·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도 유사한 문구가 삽입된 것이다. 이 문구가 향후 온갖 문제를 낳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향후 일본 지배자들이 ‘위안부’ 문제에 또다시 망언을 일삼고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왜곡·은폐하는 일이 거듭돼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추가 조처를 요구하기도 어려워졌다.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약속한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를 근거 삼아 일본이 유엔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이미 일본 외무상은 한국이 ‘위안부’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녀상’
이처럼 일본 정부는 아무런 법적 책임과 배상 의무도 지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소녀상’의 철거·이전도 수용할 태세를 보였다. 그러니 일본 외무상이 ‘우리가 잃은 건 [재단 출연금] 10억 엔뿐이다’ 하고 만족해 하는 것이다. 이번 합의로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합의가 국내에서 크게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듯,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 공식 합의문을 만들지 않고 공동기자회견에서 양국 외교장관들이 합의된 입장을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위안부’ 합의에 관한 공식 합의문을 만들면 국제법상 조약으로 규정돼 국회 논의와 동의 절차를 밟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즉, 이번 합의는 내용부터 형식까지 모두 꼼수와 기만으로 점철돼 있는 것이다. 이런 합의는 당장 백지화돼야 마땅하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1965년 아버지 박정희가 강행한 한일협정 체결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때 박정희는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집권 이후 처음으로 대중적 저항에 부닥쳐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번에 박근혜도 ‘위안부’ 합의를 끝까지 고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도 ‘위안부’ 합의에 대한 광범한 반대 정서에 직면했다.
‘위안부’ 합의 결과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공산도 있다. 조만간 일본 정부는 ‘소녀상’ 철거가 재단 출연금 지급의 전제조건이라고 공식화할 가능성이 큰데, 그리 되면 ‘위안부 지원 재단’은 출범 전부터 삐거덕댈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다수가 이 재단을 거부할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에 일본의 침략 과거 축소·왜곡 문제 등이 결국 다시 불거질 텐데, 그때마다 박근혜 정부의 이번 ‘합의’가 큰 문제였다는 점이 계속 부각될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한일 군사 협력을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거센 비판과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부담도 떠안게 됐다. 박근혜가 이번 합의를 외교 치적으로 포장하며 마냥 자위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