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정의연 논란의 진정한 쟁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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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 국회의원 당선인과 그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5월 7일 ‘위안부’ 피해자이자 그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씨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판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수요집회 성금 등 기부금을 피해자 지원에 쓰지 않았다. 둘째, 윤미향 씨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외교부로부터 미리 듣고도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셋째, 위안부 문제가 다 해결되기 전에 사욕을 앞세워 국회로 갔다.
윤미향 씨와 더불어시민당, 정의기억연대는 해명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간 회계를 엄격하게 관리했으며 피해자 지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2015년 당시 외교부가 하루 전날 합의 내용 일부를 “일방 통보한 것은 맞지만 불가역적 해결 등 중요한 독소 조항이 빠져 있어 판단을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우파의 쟁점 비틀기
그러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등 우파 언론들과 미래통합당(통합당)에 의해 쟁점이 윤미향 씨나 정의기억연대의 횡령, 회계 조작 의혹 등으로 번지거나 옮겨갔다. 우파들은 위안부 운동의 주요 인물들 간에 벌어진 갈등을 이용해 그 운동 자체를 흠집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통합당은 “윤미향 씨가 시대의 아픔을 짓밟고 이용했다”며 “민주당이 책임지고 진실을 규명하라”고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과거사 진실을 은폐하려 해 온 우파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대변하는 척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우파들이 노리는 것은 이 기회를 이용해 위안부 운동의 대의에 흠집을 내는 것뿐이다. 특히, 우파들은 윤미향 씨의 부정 의혹을 부각시켜서 위안부 운동 전체의 문제로 확전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의혹들이 설령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그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지 이 운동이 필연적으로 낳은 결과가 아니다. 무엇보다 위안부 운동이 추구해 온 대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5월 13일 이용수 할머니도 입장문을 발표해 “기성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편가르기”를 비판했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와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공감과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 낸 성과에 대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고 우파와 선을 그었다.
그런데 통합당이 공세를 펴자 윤미향 씨와 민주당은 “조국이 떠오른다”며 진영 논리를 불러내고 있다. 사태의 성격을 “친일·반인권 세력의 공격”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운동 외부에서 우파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운동 내부에서, 특히 위안부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자 위안부 피해 당사자 한 분의 항변에서 시작됐다. 그런 만큼 운동 내부의 쟁점을 포함하고 있고, 민주당-통합당 대결로 치환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3년
5월 12일 국세청은 정의기억연대가 공시한 회계 장부에 오류가 있으니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곧장 횡령이나 탈세 혐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명이 필요한 부분인 듯하다. 정의기억연대의 재정은 위안부 운동을 지지해 온 사람들의 기부금 비중이 크기 때문에(물론 정부 보조금도 받았다) 지지자의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위안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과 그것이 이 운동에 낳는 효과이다.
3월 말 윤미향 씨의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은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윤미향 씨 스스로도 “2주 전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때는 더불어시민당이 급조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하면서 많은 비판이 가해지던 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윤미향 씨가 위안부 운동의 대표성을 발판으로 여당의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에 출마하기로 했다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문재인은 과거사 적폐를 청산하리라는 기대 속에 집권했다. 이용수 할머니도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인 2017년 3·1절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과 함께 “새 정치, 새 대통령”을 외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2년을 맞아,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일본 정부와 맺었던 이면 합의를 폭로하면서 적폐 청산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행동했다. 문재인은 합의 과정과 결과에 “중대한 흠결이 있”으니 “빠른 시일 안에 후속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일본이 항의하자 재빨리 그는 합의 “폐기”는 절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대선 공약이었던 “재협상”조차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2018년 말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10억 엔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핵심 쟁점인 10억 엔의 반환은 유보됐다. 10억 엔의 반환은 일본이 합의 파기로 받아들여 극구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2019년 말에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장 문희상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한·일 기업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법안을 발의해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정의연은 일본 국가의 출연금조차 없는, “박근혜의 한일 위안부 합의보다 더 나쁜 안”이라고 비판했다.
윤미향 씨는 더불어시민당 공천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문희상 안’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30년 동안 거리에서 싸웠지만 이 문제를 한꺼번에 망칠 수도 있고 해결할 수도 있는 공간은 결국 국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문희상은 문재인 정부의 대일 메신저로 수차례 일본을 다녀온 인사다. 그런 자가 정권 핵심부와 아무런 교감 없이 그런 법안을 발의했을까? 그래서 문희상 안을 막기 위해 집권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말에는 모순이 느껴진다.
이미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경험도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미경,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지낸 지은희가 대표적이다.
윤미향 씨는 이런 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국회로 가는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등을 위안부 피해자들과 운동의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밝히고 함께 소통하지는 못한 듯하다.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와 역대 한국 정부의 친제국주의 문제
문재인 정부는 한일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역사는 역사대로 외교는 외교대로 분리해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국가의 책임(전쟁 범죄)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미국이나 일본에게는 두 국가가 함께 추진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방해하는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 문제에 민감하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 질서를 구축하는 데 과거사가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개입해 왔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실천에서는 이런 제국주의적 질서에 도전할 뜻이 전혀 없(었)다. 지난해 “항일전”을 외치더니 결국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재연장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하고 한·일 양국이 협조하는 제국주의 질서에 반대하는 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윤미향 씨를 비롯한 NGO 중심의 위안부 운동 지도자들은 그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정면으로 요구하며 싸우기보다 정부가 미해결 과제를 추진하도록 대화하고 설득하는 편을 택한 듯하다. 윤미향 씨의 국회 입성은 그 연장선일 것이다.
요컨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진척이 없음에도 그에 맞서는 투쟁은 부족했고, 그런 상황에서 윤미향 씨가 여당 의원으로 국회에 가는 것이 갑자기 결정됐다는 점이 운동 내에서 갈등이 불거지게 한 진정한 요인이 된 듯하다. 이 갈등을 보면서 진보·좌파 진영이 돌아봐야 할 것은 이런 개혁주의 정치 문제이다.
우파들의 위선적인 의혹 제기 공세와 민주당의 진영논리 식 방어가 충돌하면서 진보·좌파가 살펴봐야 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쟁점이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위안부 문제가 제국주의 체제 문제(따라서 세계 자본주의의 권력구조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