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재명 기소:
민주당 지도부, 당 중심부에서 좌파 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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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이재명 경기지사를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법원에 기소했다.
이 지사가 자기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했고, 공사 중인 지역 개발 사업에서 벌써 수익이 나온 것처럼 선거 공보물에 기재한 것이 허위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사 측은 친형이 모친을 폭행하고, 시장 친형이라며 공무원들을 괴롭히고,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의 입원은 적법한 강제 진단 시도였다고 해명한다. 또, 지역 개발 공약은 “사전 이익 확정식 공영개발” 방식이어서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검찰은 여배우 스캔들 의혹, 부인 트위터 이용 의혹, 조폭 연루설은 불기소했다. 몇 달간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한 사안들이 모두 증거 부족과 무혐의로 드러난 것이다.
검·경, 언론이 반년간 발가벗겨 조리돌려 망신을 준 사람의 사생활 측면들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이 선별 기소를 한 것만 봐도 (여권발) 여야 합작 연출의 반(反)이재명 캠페인의 불순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물론 불기소된 건들도 이대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
기소된 사안들조차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예컨대, 민주당 용인시장 백군기는 이 지사와 비슷한 지역 개발 공약 관련 허위사실 공표 건을 놓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다른 선거법 위반 건으로 기소됐지만). 같은 수원지검 사건이다!
직권남용 문제도 그렇다. 직권남용의 달인인 이명박과 김기춘은 최근 재판에서 직권남용 부분에서 무죄를 받았다. 강원랜드 채용 청탁 혐의를 받은 한국당 권성동과 염동열도 강원랜드 사장이 직접 증언했는데도 직권남용 무죄를 받았다. 비슷한 부정 채용 압박 사건에 연루된 친박 최경환도 무죄를 받았다.
사법 농단 재판에 대비해 법원이 직권남용을 ‘엄격하게’ 해석한다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법원만 그런 게 아니다. 현 검찰 지휘부 자신이 권성동 수사 중단 압력을 넣은 일을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권성동은 검사 출신이다.
위의 직권남용 혐의들은 사익이나, 민주적 권리 억압(김기춘)에 해당한다. 반면 이 지사의 경우는 직계가족 단속 문제로 볼 여지도 있다.
앞서 열거한 재판 결과들은 적폐 청산이 증발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 내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 이재명 지사를 친문 진영이 밀어내는 모습은 시사적이다.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노동개악 등에서 자유한국당과 쿵짝이 잘 맞아서 더욱 그렇다.
이를 볼 때 문재인 정부와 현 여권의 우경화는 단지 이재명 찍어내기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더 연장돼 좌파 일반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번질 수도 있다.
기업 투자
올해 경제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서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 기반을 고려해 우경화를 노골화·본격화했다. 가령 문재인은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지만] …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해] … 민간 부문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서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0월 4일 일자리위원회)
문재인은 12월 10일 새 경제부총리 홍남기 임명장 수여식과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기업의 투자 애로가 뭔지, 그 해결책이 어디 있는지 방법을 찾는 데 각별히 노력하라.”(10일)
“일부 일자리의 질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좋은 일자리를 늘린다는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11일)
문재인이 일자리의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말한 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가 설비 점검을 하다가 비극적으로 사망했다.
친기업 기조 노골화와 더불어 일어난 다음의 일들은 따로따로 떨어진 게 아니다. 의료 영리화, 노동 개악의 연쇄 추진,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 노동단체들에게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음해, 탄력근로제 반대 집회에 갔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난받은 일 등등.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선 보수 통합을 내세워 친박의 지지를 받은 나경원이 이겼다. 보수 혁신은 말로라도 쟁점이 되지 않았다.
전 원내대표 김성태는 전 기무사령관 이재수의 자살을 언급하면서, 사람이 먼저이니 적폐 청산을 중단하라고 가증스럽게 눈물을 짰다. 이재수의 자살은 우파의 항변을 대변하는 사건이 됐다. 체제 수호를 위해 정당한 일을 했는데도 왜 죄인으로 모느냐는 것이다. 간판만 바꾸는 기무사 개혁으로 재생 기회를 주고, 쿠데타 모의 의혹 수사에선 발을 빼 온 현 여권이 이 ‘죽음의 항변’을 모른 척할 것 같지 않다.
계급의 이해관계라는 잣대로 봐야만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 여권 내 ‘좌파’ 찍어내기, 진보 지지층 이반을 감수하는 여권의 태도, 우파의 사기 회복 현상의 상호 연관성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사에 대한 검찰 기소가 11일 발표되자마자 민주당 지도부가 모인 것도 시사적이다. 이 지사 징계 문제 때문이었다. 징계를 서두르는 쪽은 재판이 늘어지다가 자칫 이 지사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와 유력 주자가 되는 상황을 막고자 하는 것 같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여권 지지층을 분열시킬 걱정 때문에 당원 제명은 유죄 판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12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는 ‘당의 단합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이 지사의 약속을 받고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이 지사의 입에 재갈을 물려 민주당의 우경화에 대한 당내 비판을 차단하려는 것 같은데, 이 지사가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잘못이다.)
누가 봐도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여론 공작 의혹 사건 대응과 너무 다르다는 점도 지금으로선 징계를 어렵게 했을 것이다. 사건 공개 초기에 김 지사는 거짓말을 했고, 경찰의 비호를 받았으며, 재판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 징계의 ‘ㅈ’ 자도 안 나온다. 죄질도 훨씬 더 나쁜데 말이다.
결국 현 여권의 좌파 찍어내기는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정책을 계속 펴겠다는 신호이다. 또한, 노동계급의 불만이 공식 정치로 반영되는 데 초점을 제공할 수도 있는 인물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이 이 캠페인의 성격(목적)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지층에게 책임지려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를 자임했기에 노골적 우경화와 적폐 청산 중단은 사람들에게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재인의 우경화는 우파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반면 진보 염원층은 실망해 이탈하고 있다(특히 20~30대 청년층).
문재인의 우경화에 실망해 이탈하는 이런 청년층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정치인·세력의 형성·강화를 억제하려는 것이 이재명 찍어내기 캠페인이 궁극으로 노리는 바다.(민주노총, 정의당 등도 음해 대상이다.)
이 지사가 내세우는 정책들, 기본소득이나 부자 증세, 부동산 투기 억제와 개발 이익 환수, 의료 공공성 강조, 노동 존중 등을 보면, 사회민주주의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지지 기반도 서민층이다. 그는 박근혜 퇴진 운동을 화끈하게 지지해 급부상했다. 민주당의 자본가 계급 기반은 (특히나 경제 위기 시대에) 이런 정치인이 성장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이런 인물·세력이 정치적으로 실망하는 청년층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소수는 각성해 정의당이나 좌파 지지로 돌아설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부류는 환멸 속에서 탈정치화되거나 우익 포퓰리즘의 데마고기에 휩쓸릴 수도 있다. 이는 촛불의 긍정적 효과가 약화되는 걸 뜻할 것이다.
민주당은 진보 염원 대중이 대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기 당에게 투표하게 되면 만사 ‘OK’일 것이다. 이재명 지사가 민주당 지도부에 “백의종군”을 약속한 것이 잘못인 이유다. 이재명은 여권 지도부가 아니라 지지층에게 책임을 지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