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문제에서 후퇴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민주당 안에서 친서민 행보는 여간 고난도 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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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결국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기로 했다. 자영업 분야 최대 지원액이 가구당 200만 원으로 거론되는데 그 돈으로는 한 달치 임대료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더 급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두텁게 지원하자고 하지만, 2차 지원 총예산이 1차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면, 초점은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에 있는 것이다. 경제가 더 나빠져 기업들을 긴급 구제하는 것이 정부와 기업주들의 더 중요한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정부의 논리는 결국 기만이고 진실은 재난지원금 총액을 절반 줄이면서 노동계급의 다수가 재난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복지예산 증가는 거의 시늉 수준이고, 쥐꼬리만 한 지원을 할 때조차도 주기 싫은 티를 팍팍 낸다.
노동자들은 현 상황의 최대 피해 집단이다. 갑자기 일이 줄어 재택 근무를 하며 각종 수당이 깎이거나, 일감이 없어지거나, 또는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로 소상업 분야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유지하는 노동자들도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면서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이 때문에 〈노동자 연대〉 신문과 정의당·진보당 등은 재난 지원을 모두에게(보편) 지급하라고 요구해 왔다. 보편 지급에 따른 소득 재분배 필요는 사후 증세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모두에게 신속하게 지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제2차 재난지원금 논쟁과 이재명 지사
이재명 경기지사도 정부에 보편 지급을 촉구했었다. 이 문제로 그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도 공개 설전을 벌였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도 충돌했다. 이낙연은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부터 선별 지급을 주장했다. 두 사람은 현재 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들이기도 하다.
이낙연의 입장은 청와대가 경제관료들을 지지하면서 선별지급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을 의식한 것이다. 그는 지금 당내 기반이 불충분해서 당을 장악한 친문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낙연은 비문 후보들이 모두 낙선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3분의 2의 지지를 얻고 당대표가 됐다.
그러나 지금 여권의 위세는 총선 직후에 비해 많이 꺾였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사실상 위기가 시작됐다. 개혁 염원 배신과 부동산 등 경제 실패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로 이번 위기는 심상찮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앞으로 문재인과의 차별화 압박을 더 크게 받아 더 큰 모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끝내 선별지급을 결정하자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부 결정을 수용한다면서도 강경한 어조로 정부를 비판했다. 당 밖 여론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한다]…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
이 글을 이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리자마자 민주당과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의 새 당명) 양쪽 모두에서 비판이 터져나왔다. 두 당 모두 선별지급으로 재난 지원금 규모를 최소화하기를 바란다.
그러자 다음 날 이 지사는 금세 말을 주워 담고 문재인 정부 지지를 공언했다.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정권의 성공이 국가와 국민에 바람직하기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다. 훼방 놓을 생각이 없다.”
민주당 개혁파로서 친서민적 이미지와 행보 때문에 지지를 얻은 그가 우파와 타협하는 정부 정책에 금세 굴복한 것이다. 이재명은 친서민적 개혁 정책을 주장하며 정부와 날을 세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계급의 이익을 고려하는 민주당 주류의 현실론적 압박 앞에서 급격히 그 수위를 낮추거나 말을 주워담는 일이 잦았다. 그도 자본가 계급의 정당인 민주당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논쟁 과정에서 이 지사는 1인당 30만 원 지급에서 10만 원 지급으로 후퇴한 바 있다.
진보 염원
이재명 경기지사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이 올해 들어 오른 것은 코로나 위기 악화 국면과 문재인 정부 지지 하락이 두드러지면서다. 이는 그가 이전부터 구축해 온 이미지와 관계있을 것이다.
그는 줄곧 문재인 정부 등 민주당 주류보다 더 반(反)우파적이고 노동자·서민에 친화적이며 과단성 있는 개혁가로 보이려고 노력해 왔다. 노동계급 출신으로 입지전적 경로로 정치인이 된 것도 이런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됐다.
그는 2016년 가을 주류 정당의 기성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박근혜 퇴진을 촉구했다. 2017년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당내 대선 경선에서 자신이 문재인보다 더 급진적인 개혁가임을 자처했다.
그의 정계 입문 계기는 성남시의료원(공공병원) 설립 운동이었는데, 성남시의료원은 올해 정식 개원 전부터 코로나 대응 병원 구실을 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방역 조치뿐 아니라 보편적 재난 지원금 지급에도 앞장섰다. 정부가 선별 지급 입장과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경기도는 도 재정으로 보편 지급을 실행했다. 이는 민주당이 단체장으로 있는 지방정부들도 속속 재난 지원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행보 때문에 그는 안 그래도 2016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친문 진영에게 찍혀 있던 터에 더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선 때 경기도에서 얻은 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진보 성향 표가 그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2018년 압도적 표 차이로 경기지사에 당선되고도 친문 실세들의 고발과 공격으로 당선 직후부터 곤란함을 겪고 올해 대법원 판결까지 가서야 도지사 직을 유지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상고심에서 이 지사를 도운 변호인단은 조국 부부와 김경수 경남지사 등의 변호를 맡은 LKB파트너스였다. 이 로펌은 이밖에도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 전병헌의 뇌물 사건, 문재인 판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조국 수호 집회 후원금 사기 의혹 등의 사건도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로펌을 이끄는 이광범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친문계의 이재명 견제는 경쟁자 제거 시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노동자·서민층의 반발과 분노가 좀 더 급진화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부의 배신이 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이는 이 사회의 주류 전체에 유리한 것이다. 그를 주류 언론 전체가 포퓰리스트 취급하는 이유이다.
이런 공격에 길들여져서인지 몰라도 최근 2년새 이 지사는 “백의종군”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낮추고 문재인 정부와 친문 진영의 위선과 배신에 자주 타협해 왔다. 대선 후보로서 당내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이 컸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사는 지난해 수도권 버스 대란 때 (서울시와 달리) 정부의 버스 요금 인상 압력을 수용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의 부패와 위선에 대한 분노가 컸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자신이 당한 근거 없는 비난 공세에 견주며 조 전 장관을 감쌌다. 올해 윤미향 의원 문제로 위안부 운동 관련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조계종이 관리하는 나눔의 집(위안부 할머니 쉼터)에 대해서는 신속히 조치했지만, 윤미향 의원과 연관된 경기도 안성 쉼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올해 코로나 유행 첫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 전가용 신천지 마녀사냥에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비록 실제로는 신천지 교단의 협조를 받아서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방역을 했지만 말이다.
정부보다 더 나은 노동정책을 약속했음에도 실제로는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뒤로 물러섰다. 경기도 콜센터가 대표적 사례이다.
재난지원금 문제에서는 이주민 다수를 지급 대상에서 배제했다.
한편, 그가 재난지원금을 단순히 복지가 아니라 경제정책이라고 하는 것도 사회 상층부와의 타협을 보여 준다. 이번 재난지원금 문제에서도 말은 강하게 했지만, 사실은 후퇴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선별지급에 대한 이 지사의 일갈은 노동계급과 서민층에게 사이다 발언이었을 것이다. 뒤늦게 경기도 차원의 재난지원금 보편지급 가능성도 흘리고 있다.
이런 행보는 정부의 개혁 배신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반면, 이 지사가 친문과 자신의 지지층 사이에서 줄타기하려고 하면 할수록 실제로는 사회 상층부의 위세를 높이고 진정한 개혁과 진보 염원 대중의 염원을 사기 저하시키는 효과를 낼 위험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