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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의 퇴진은 새로운 투쟁의 시작

11월 12일 모두가 증오하던 총리 베를루스코니가 20년 만에 마침내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축하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로마 도심으로 몰려들었고, 승리를 만끽하며 밤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베를루스코니의 퇴진을 축하하는 시민들 이 승리를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싸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 저택에 다다르자 오래된 민중가요인 ‘벨라 차오’를 불렀다. 베를루스코니 저택 앞에 모인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를 향해 외쳤다. “뛰어 내려! 뛰어 내려! 뛰어 내려!”

베를루스코니의 퇴진은 역사상 가장 요상한 정치인의 종말을 보여 준다. 베를루스코니는 편협하고 밉살맞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독일인 유럽의회 의원을 “나치”라고 불렀고 오바마에게는 “선탠을 잘 하셨군요” 하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젊은, 아마도 미성년인 여성과의 성매매에 집착했다. 그는 변론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저는 게이가 아니죠.” 이탈리아 LGBT 운동은 이렇게 응수했다. “적어도 우리는 베를루스코니가 아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를 마치 과거 자신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준 부실 공사 현장인 것처럼 운영하면서 수많은 이탈리아인을 고통에 빠뜨렸다.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에서는 단기계약 때문에 환자도 출근해야 했고 교사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휴가 기간 동안 출산했다. 또, 임금은 정체했지만 물가는 치솟았다.

아무 권리도 없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공격이 주기적으로 일어났고 마피아의 그림자가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다.

많은 사람은 2011년을 독재자들이 몰락한 해로 기억할 것이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이제는 베를루스코니가 몰락했다.

독재자

베를루스코니는 확실히 독재자였다. 총리 시절에 그는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 이후 누구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자기 손에 집중시켰다.

그는 또한 부패했다. 그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애쓴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죄목 중 하나로 기소돼 감옥에서 썩는 것을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언제나 자신이 억누른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1994년에 입각한 베를루스코니의 첫 정부는 노동자 총파업의 압력으로 연정이 분열하면서 실각했다.

2001년 그가 재선하자 대중 운동과 전투적 활동들이 폭발했다. 그중에는 2001년 제노바의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가 있었다.

정상회담 사흘 동안 제노바는 전쟁터 같았다. 경찰들은 25만 명 규모의 시위대를 미친듯이 공격했다. 시위대 중 한 명인 카를로 줄리아니가 살해됐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러자 수백만 명이 참가한 파업과 시위가 연달아 벌어졌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자연스럽게 반전 운동으로 옮아갔다.

2002년 피렌체에서 1백만 명 규모의 반전 시위가 벌어지자 베를루스코니는 이라크 침공 과정에 동참할 이탈리아 전투 부대를 단 한 명도 보내지 못했다.

결국 베를루스코니는 2006년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좌파의 오류 탓에 베를루스코니는 2년 뒤에 복귀할 수 있었다.

급진좌파 일부도 포함된 좌파 연립정부는 그 2년 동안 베를루스코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고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파병했다.

심지어 2008년 베를루스코니가 재선하자 좌파는 ‘국가적 단결’을 위해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때는 탄탄했던 좌파 지역 조직과 대표자들의 네트워크는 약화했다.

사실 베를루스코니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선 것은 의회 밖의 세력이었다. 피아트 자동차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 파업을 일으켰다. 학생운동은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해 투쟁했다.

올해 6월에 치러진 사유화에 관한 세 차례 국민투표에서 전국의 반사유화 운동과 사회운동이 베를루스코니를 패배시켰다.

그때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저항의 행진이 이어졌다. 몇 차례 총파업이 벌어졌고 산지오바니 성당을 점거한 10월 15일 대중시위가 있었다. 덕분에 베를루스코니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됐고 마침내 물러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축하하는 동안에도 우리 앞에 과제가 쌓이고 있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탈리아의 급진 운동은 급속히 성장하는 국제적 투쟁 속에서 자기 힘을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베를루스코니는 떠났지만 우리는 애초에 그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했던 세력들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

마리오 몬티 - 구질서의 인사

마리오 몬티가 이탈리아의 새로운 지도자가 됐다. 그는 선출되지 않았다. 대신에 유럽의 엘리트들이 이탈리아 위기를 ‘해결’하라며 그를 선택했다.

그는 “존엄성이 보장되는 희망찬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과제는 유럽중앙은행과 IMF가 요구하는 혹독한 긴축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다.

몬티는 1995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유럽연합의 관료로 일했다. 그는 유럽연합 고위 관료 친구들의 말에만 귀 기울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요 세력들

이탈리아의 정치적 지배자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정치 엘리트들은 쓰디쓴 분열과 개인적 경쟁을 거치며 형성된 다양한 정당들로 나뉘어 있다.

북부동맹은 이탈리아 정치를 좌우하는 주요 세력이다. 북부동맹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민중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결정적 순간마다 베를루스코니의 정부를 뒷받침해 줬다.

북부동맹의 당내 분파 중에는 파시스트도 있다. 그들은 반이주민·반로마(집시)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북부동맹은 최근 심각한 패배를 겪었다.

공직자 투명성 등을 주장하며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이탈리아가치당 안에는 중도 우파 포퓰리스트들도 있다. 이탈리아가치당 지도자는 이미 마리오 몬티를 만나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르주아 언론이 꽤 괜찮은 의회 내 좌파로 묘사하는 급진당도 몬티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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