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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학생인권조례 통과:
성소수자 혐오에 맞선 통쾌한 승리

12월 19일, 서울시학생인권조례가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찬성 54, 반대 28, 기권4)

성소수자들과 인권단체들이 혹한 속에서 엿새 동안 벌인 절박한 점거농성 끝에 드디어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점거농성에 참가했던 활동가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격려했다.

성소수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점거농성 6일째 되는 12월 19일 오후 학생인권조례가 원안에 가깝게 통과됐다.
19일 오후 학생인권조례 본회의 통과 승리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승리 발언을 듣고 있다.

우파들은 그 동안 조례에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임신과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집회의 자유 등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며 인권조례를 누더기로 만들려 했다. 특히 우파 기독교인들과 한국교총 등 우파단체들은 성소수자,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를 유독 물고 늘어졌다. 동성애 문제와 임신한 청소년 문제를 약한 고리 삼아 공격하면서 인권조례 자체를 좌절시키고, 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분열시키려 한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들과 인권단체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6개월 동안 받은 9만 7천여 명의 서명을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우파들은 "동성애 인정하면 에이즈 창궐한다”며 황당한 혐오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한나라당 김덕영 의원은 "우리나라는 동방의 순수한 민족인데, 동성애를 인정해서 에이즈를 확산시켜서 파국으로 내몰려고 한다. 학생들이 에이즈 때문에 학교에 다니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부정하고 있는 동성애를 왜 학교에서 인정해줘야 하느냐" 하는 망발을 했다.

원안 찬성발언을 한답시고 나온 민주당 의원의 발언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릴 때 동성친구랑 성애를 했는데 이제는 정상적인 이성애자다. 하지만 그 때 나랑 성애를 했던 학생은 잘못되게 컸다.”

HIV 감염과 동성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 동성애는 전염병이나 '비정상적' 성애가 아니라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런 자들이 시의회에 앉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혐오스러운 일이다.

단지 동성애와 임신한 청소년만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우파와 한나라당은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했다. 한나라당 김덕영 의원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학생에게 보장하면 ... 학교는 무너지고 현장은 붕괴될 것이다. 체벌 금지는 교원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고 주장했고, 민주당 의원이자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인 곽재웅 역시 “부모는 때려서 자녀를 지도할 수도 있다. 두발과 복장 규제를 할 수 없으면 교사가 지도를 못한다”고 했다. 곽재웅은 교육위원회 표결에서 끝내 기권표를 던졌다.

애초에 서울시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안에서는 우파의 압력을 받아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 일부 조항을 빼거나 포괄적 차별 금지로 뭉뚱그리는 방식으로 타협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본회의 반대 토론에서 한 한나라당 의원은 "금요일(16일)까지는 민주당 의원들이 독소조항[임신·출산, 성소수자 차별 금지 구절을 뜻함] 다 없애겠다고 합의해 놓고서 고쳐온 것을 보면 다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분열하며 동요했던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때 진보진영의 일각에서도 '원안 통과를 고집하다가 인권조례 자체가 좌절되는 것보다는 일부 타협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일부 싹트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타협안을 수용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은 차별해도 좋다고 용인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미 경기와 광주에서 통과된 인권조례에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항목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한 후퇴였다.

통합진보당의 태도도 우려스러웠다. 통합진보당의 우위영 대변인은 농성 지지 입장을 발표해 달라는 성소수자들의 요구에 대해 '모든 사안에 대해 논평을 발표할 순 없다'며 소극적 태도를 취하다가 뒤늦게야 시점이 지난 논평을 올렸다. 다행히 나중에 사과하고 입장을 바꿨지만, 진작부터 농성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결합했어야 할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단호하고 용기 있는 행동

학생인권조례 원안을 그대로 시의회에서 통과시키라는 성소수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점거농성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시의회 농성장 곳곳에 붙어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일관되게 후퇴를 거부했다.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등은 인권조례가 후퇴할 조짐이 보이자 시의회 교육위원회 결정 전에 민주당에게 원안 통과를 촉구하며 과감하게 시의회 의원회관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점거 이후에도 진보진영 일각의 동요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농성을 이어갔고, 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면담 등을 추진하며 민주당을 비판하고 원안대로 통과하라고 압박했다.

이런 성소수자들의 단호하고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이 투쟁은 계속 전진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 등에 소식이 널리 알려졌고, 연대의 촛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명동 향린교회 임보라 부목사를 비롯해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우파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며 농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쌍용차, 기륭, 김진숙 지도위원, 전교조 교사들 등 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연대단체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고 지지를 표현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성 지지 집회의 규모가 불어났다.

결국 민주당은 단호한 투쟁과 연대 확산에 부담을 느껴 원안에 가까운 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우파들이 문제 삼았던 차별금지 항목이 모두 원안대로 포함됐고, 경기와 광주 인권조례에는 없는 집회의 자유가 포함됐다. 서울시인권조례 통과를 계기로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비롯한 청소년의 인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단, "학교 내의 집회에 대해서는 …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학교규정으로 시간, 장소, 방법을 제한할 수 있다” 등 일부 제한조치가 달린 것은 아쉽다. 하지만 우파들이 가장 문제 삼았던 내용이 모두 포함됐고, 집회의 자유 일반을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서 큰 틀에서 원안에 가깝게 통과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통과는 우파들의 동성애 혐오 조장 캠페인에 맞선 통쾌한 승리다. 근래 우파들은 동성애 혐오 조장 분위기를 강화해 왔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반대 캠페인,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캠페인이 벌어져 왔고, 급기야 지난 3월에는 동성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군형법 92조가 합헌 판결을 받았다. 이번 승리는 이에 대한 중요한 반격이고, 한국 인권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남을 것이다.

인권 활동가들과 성소수자들의 값진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 농성에 참가한 청소년 성소수자 인터뷰

“성소수자를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인터뷰·정리 최미진

[인터뷰에 응해 준 매미 씨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를 촉구하는 농성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한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가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아요.

저의 경우, 중학교 때 아웃팅을 당하고 나서 체육복이 찢겼어요. 책상에 혐오 발언들이 칼로 새겨져 있었고, '더러워'라는 말을 듣는 게 일상이 됐어요. 심지어 선생님들조차도 경멸의 눈빛을 보냈고, 다가오기 힘들어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렇게 제 중학교 생활이 매우 암울하게 마무리 됐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특별히 심각한 것도 아니에요. 제 성소수자 친구들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들도 있어요. 혼자 빌딩에서 차가운 바람에 몸을 던진 친구, 쓸쓸한 방 안에서 홀로 손목을 그은 친구,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던 친구... [매미 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우, 학교 다닐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 남학생들이 "교정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간을 했어요. 가족도 자기 딸이 강간 당한 사실을 알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끝까지 내몰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탈학교를 택하거나 탈학교를 강요받게 돼요.

이런 현실 속에서 주민발의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게 1년 전 이때쯤이었어요. 그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했고, 한편으로는 많이 힘들었어요.

서명을 받으며 싸움이 난 적도 있고 가판대가 엎어진 적도 있고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제 정체성을 부정당하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서명을 받았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했어요.

이제 주민발의가 성사되고 다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시의회 통과 과정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생길 줄은 몰랐죠. 또 이 꽉 물고 다시 의원들 붙잡고 통과시켜 달라고 했죠.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내 정체성을 부정당하면서까지 운동을 했는데 막판에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했어요.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했던 이유는 '현실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나랑 똑같은 상처를 받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이번 농성에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지와 연대를 표해 줬어요. 당사자만큼 열심히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트위터에 올릴 때마다 '수고한다', '뭐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같이 농성했던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친구들도 정말 고맙죠. 지지해주신 분들 한 분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죠.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희망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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