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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이 가야 할 길

아랍혁명 1주년을 맞이해 〈레프트21〉은 지난 호에 이어 이집트 혁명을 분석하는 기사를 싣는다. 다가오는 1월 25일은 이집트 혁명이 시작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전 세계적인 연대 시위가 예정돼 있다. 이집트 혁명에서 점차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가 지난달에 발표한 글을 소개한다

이집트 혁명은 매우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그 위험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혁명을 유산시키려는 끈질긴 반혁명 시도가 있다. 반혁명 세력은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고, 혼란과 불안감을 조장해 대중의 관심을 혁명에서 멀어지게 하고, 깡패·경찰·군대를 동원해 이데올로기적·실제적 영역에서 대중 운동에 보복 공격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경제 위기는 모순적 구실을 한다.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대중의 일부는 항의 시위, 점거 운동, 파업에 나서지만, 동시에 대중의 다른 일부는 반혁명의 무기와 선동 도구가 되기도 한다. 혼돈과 경제 위기를 야기한 것이 바로 혁명 자체라는 논리를 통해서 말이다.

이 결정적 순간에 작용하는 둘째 요소는 이슬람주의자와 자유주의적 개혁주의 정치 세력이다. 이 세력은 혁명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한다. 기존의 경제·사회 시스템은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올해 1월 3일 반군부 시위에 참가한 이집트 여성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세력은 최고군사위원회와 옛 정권의 잔존 세력에 추파를 던지고, 자신들이 대중운동을 억제하고 가라앉힐 수 있다고 약속한다. 이 세력은 대중을 향해 자신들이 옛 의회를 통해 대중의 열망과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거짓 약속을 한다.

셋째 요소는 물론 대중운동 자체다. 노동자 운동을 선두로 한 빈민과 피억압자들의 저항 운동은 혁명이 시작됐을 때부터 계속 이어졌고 2011년 9월과 10월에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집트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70만 명이 대중 파업 물결에 참가했다. 이에 더해 수십 년 동안 정권의 체계적인 억압을 당하던 가난한 콥트교도, 시나이 주민 등이 벌인 전례 없는 시위와 점거 농성이 있었다.

현재 현실에 작용하는 세 가지 핵심 세력은 다음과 같다.(물론 이는 다소간 단순화한 그림이다). 첫째로 최고군사위원회, 기업주들, 옛 정권 보안 기구의 잔존 세력이 이끄는 반혁명 세력이다. 반혁명 세력은 혁명적 대중 운동에 엄청난 규모의 무장 공격을 퍼부어 체제의 허울만 바꾸고 옛 정권을 다시 세우려고 열중한다.

둘째로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옛 정권의 야당 세력이다. 이 세력은 혁명을 억제하고 유산시켜 의회로 수렴되기를 바라고, 자신들의 조직화 능력과 경험, 광범한 대중적 지지에 의존한다.

셋째 세력은 혁명을 지속·심화시켜 온전한 사회혁명으로 전환시키기를 바라는 세력이다. 그 선두에는 부상하고 있는 노동자 운동이 있는데, 노동자 운동은 단단하고 전투적이고 의식적이어서 이집트 부르주아지뿐 아니라 국제 부르주아지를 벌벌 떨게 한다.(전 세계 주요 신문들이 이집트 노동자 운동이 국제적 불안정성을 낳을 위험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보라.)

이집트 혁명의 최근 단계에서 이 세력들은 평형을 이루고 있다.

반혁명 세력과 국가 기구 내부의 균열은 대체로 깊어지고 있고, 짧은 시간 안에 봉합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혁명으로 국가 기구는 회복하기 힘든 큰 타격을 입었다. 여전히 정권이 존재하지만 너무 약하고 그 지도자들은 마비됐고, 두려움에 떨고, 우물쭈물하고, 분해되고 있다.(이런 사례로는 경찰 내부의 혼란, 경장(警長)들이 일으킨 파업, 사병들의 분열 가능성을 놓고 군 수뇌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태, ‘정화’ 요구에 맞닥뜨려 마비된 사법부, 변호사들이 일으킨 파업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해 경제 위기가 가하는 압박도 있다. 비록 정권은 위기를 이용해 중간계급의 적개심을 부채질하고 혁명을 갉아먹으려 하지만, 정권의 허약함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혁명

물론 최고군사위원회와 반혁명 세력은 지난 몇 달 동안 학살을 벌이고, 활동가들을 체포하고, 노동자 운동과 파업을 포함한 혁명적 세력에 반대하는 언론 캠페인과 선동을 늘리는 등 주도권을 장악하고 직접적인 공격으로 나아가려고 애썼다. 또한 선거 기간을 이용해 저항세력을 분열시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리고 의회라는 경기장, 특히 이집트 혁명이라는 지진의 여파가 가장 적었던 이집트 상층부 영역에서 국민민주당(NDP)이 주전 선수로 활약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게(제한된 수준에서라도) 하려고 애썼다.

이런 요소들의 발전은 이집트 혁명에 위험 요소이고, 이 요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고군사위원회는 지금 당장은 혁명적 세력, 특히 노동계급과 빈민들을 광범하고 직접적으로 공격할 능력이 없다. 이집트 대중이 혁명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과 전투성은 쉽게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군대와 대중이 직접적으로 충돌한다면 군대가 분열할 위험이 있고, 반혁명 프로젝트는 붕괴하고 심지어 최고군사위원회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선거와 개혁주의 정치 세력이 작용한다. 최고군사위원회에게는 이집트 거리에서 어느 정도 신망이 있어 개혁과 변화를 약속하며 대중의 분노를 흡수할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새로 구성될 의회가 할 구실이다. 현재 시점에서 선거를 무산시키는 것은 최고군사위원회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

아마도 2011년 11월 18일에 일어난 사건을 보면 최근의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개혁주의 야당 세력과 최고군사위원회 사이에서 거래가 있었는데도, 권력 분할을 둘러싸고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게 될 무슬림형제단, 그리고 예외적 권력과 경제적 특권을 유지하려는 군부와 옛 정권의 일부이거나 핵심으로 남아 있는 유력 기업주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이는 알리 셀미(과도정부 부총리)가 발표한, 예외적 권력을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 원칙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이 헌법 원칙은 새로 구성될 의회를 단지 껍데기로 만들고 군부와 옛 정권이 군림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무슬림형제단은 알리 셀미가 발표한 헌법 원칙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광범한 정치적 운동을 조직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11월 18일 행동에 참가했다.

평형

그러나 이날 행동으로 대중의 혁명적 분노에 불이 붙었다. 혁명 중에 다친 사람들과 순교자의 유가족에 대한 공격에 뒤이어 터져 나온 운동, 무하메드 마흐무드 거리에서 일어난 폭력적 충돌(수십 명이 순교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 등 대중의 저항 운동을 보며 이슬람주의자들과 군부는 혁명적 분노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처럼 총선은 혁명적 저항 운동을 무마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승리한 의회에 적법성을 부여하고자 치러진 것이었다. 비록 그들이 서방을 안심시키고자 협상하고 술책을 부리고 양보할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지난해 5월 가두행진을 하고 있는 이집트 마할라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1월 혁명 와중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오마르 술레이만과 함께 앉아 협상했던 것을, 혁명 뒤 자신들의 이익을 바라고 노동자 파업을 공격하는 데서 이슬람주의자들이 했던 구실을, 최고군사위원회가 종교 간 갈등을 이용하려 했던 일을, 이슬람주의자들이 최고군사위원회를 도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던 일을, 그리고 5월에 열린 ‘2차 분노의 금요일’ 시위와 7월 8일과 11월 19일에 있었던 두 차례 점거 시위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참가하기를 거부한 것을.

군부가 권력에서 손을 떼고 나라 운영권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쉽게 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군부는 무바라크 시대에 나라 경제를 암처럼 지배했고 지금은 정치적으로 패배한 기업주와 투자자 들의 이익을 지킬 뿐 아니라, 자신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는 농장, 공장, 호텔을 포함해 국가 경제의 30퍼센트를 지배했고, 그곳에서 청년 병사들은 무보수로 일해야 했다. 게다가 군부는 해외 원조로 들어오는 막대한 국방비도 주물렀다.

용어설명그러나 최고군사위원회, 순전히 장식품에 그치는 ‘자문위원회[최고군사위원회가 설립한 위원회]’에 참가하기로 한 일부 자유주의 세력, 이슬람주의 진영의 무슬림형제단과 살라피주의자들이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 합의의 목적은 이 세력들이 모두 케이크를 한 조각씩 나눠 갖는 것이다(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상황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중의 도움 없이 말이다. 지난 11월 자유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대중을 통제할 수 없고 대중운동이 최고군사위원회 자체를 타도하자는 요구를 발전시킬 수 있음을 대중에게서 배웠다.

혁명을 유지하고 심화시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혁명적 세력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블록으로 나눌 수 있다(비록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오류가 있을 것이지만).

첫째 블록은 빈민·하층민·실업자 청년들로, 이들은 독립적 청년 조직과 아나키스트들과 관련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초기부터 혁명에 참여했고, 순교자와 부상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최고군사위원회와 경찰에 직접 복수를 하려 하고, 6월 28일 전투, 모하메드 마흐무드 거리 전투, 7월 8일과 11월 19일 점거 시위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혁명적 용맹함의 대명사이고, 군부 지배 타도, 경찰 정화, 군사 재판 중단, 순교자의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권리 보장을 직접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았고, 운송 노동자나 교사 노동자의 파업 같은 노동자 운동에 대한 연대를 건설하지 않았다.

혁명적 세력 가운데 둘째 블록은 2006년 이래로 수많은 전투를 벌인 전문가 조합과 독립노조인데, 이들은 이집트 노동자 계급의 핵심 부위다. 이 블록은 지난 2월 무바라크를 날려 버린 혁명에서 많은 경험을 얻었다. 이 블록의 계속된 저항 운동은 버스 노동자, 교사, 이집트 통신 노동자, 의사들의 파업 등 총파업의 씨앗을 품었던 수많은 운동이 일어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자 조직의 부재와 사회적·정치적 요구와의 연결 부족으로 총파업은 유산됐다. 게다가 이 블록은 군부 통치에 맞선 정치적 시위와 점거 운동에서 거듭거듭 조직적으로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셋째 블록은 다양한 혁명적 단체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사회적 요구를 채택한 급진 민주주의자들부터 7월 8일 점거 시위 이래 정치적·조직적으로 통합된 좌파 사회주의자들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 수백 명을 신입 회원으로 조직할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을 활용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블록은 여전히 정치 영역에서는 비교적 작고, 더 큰 세력들을 결집시키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 비록 이들이 11월 점거 시위, 노동자와 전문가들의 파업과 점거 농성을 지원하는 활동에서 지도부에 참여했지만 말이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하면 혁명적 단체들이 사회주의적 강령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혁명이 채택한 사회정의 슬로건을 — 자유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들과는 다르게 — 구체화하고 실질화해서 임금, 물가,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일할 권리와 연결시키고, 그 다음에는 이런 강령을 쟁취하려면 혁명 정부를 건설해야 함을 설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발전

비록 이슬람주의자들(특히 무슬림형제단)이 최소·최대 임금을 설정하고 진보적 과세를 도입하라는 요구를 포함해 선거 강령을 만들고 있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지금까지 사회적 쟁점에 내놓은 입장을 보면 이 요구들은 표를 얻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경제적 투자를 많이 해 왔고, 무바라크 시절에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았고, 소작농의 소작료에 대한 보호를 폐지한 농업 개혁을 옹호하고, 1월 혁명 이후 (교사 파업에 그리 했듯이) 노동자 파업을 강하게 공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사회권, 임금, 실업을 둘러싸고 체제에 맞서 일어난 정치적 전투나 사유화로 국가 경제를 처분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자유시장 정책을 완전히 지지한다고 선언하며 거듭 미국, 서방, 걸프 국가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이집트와 세계 경제의 혹심한 위기를 보면 현재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모두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외환 보유고는 줄어들고 있고, 투자는 멈췄고, 살라피스트들의 부상으로 관광 산업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부가 도입한 긴축 정책의 결과로 남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심각하게 휘청거린 것을 보면 세계 경제도 난파 위험에 놓인 이집트 자본주의에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 없는 상태다. 걸프 국가와 이집트 동쪽 국가 출신의 이집트 자본가들도 안심할 수가 없다. 그 국가들의 외곽에 있는 예멘과 바레인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이 승리하려면 다음 사항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1. 기층 노동자, 농민, 학생에 뿌리내리고 대중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집트의 학생과 노동자 혁명가들에게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에 가입하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전국의 타흐리르 광장, 공장,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고, 억압, 착취, 빈곤의 사회를 제거하고 자유와 정의를 좌우명으로 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 빵, 자유, 사회정의라는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2. 정치적 강령을 가진 혁명적 전선을 건설해야 한다. 혁명적 전선은 사회정의를 위한 사안들을 채택하고, 거리의 혁명을 지속시키는 데 찬성하는 지역 사회, 공장, 노조, 대학 캠퍼스의 활동가들을 결속하기 위해 투쟁하고, 노동계급, 독립노조, 전문가 단체와 융합해 그들의 투쟁을 발전시키고 그들에게 군부와 광신도들의 연합을 타도하는 것의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그들의 핵심부에 있는 임금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에 반대하는 자들을 폭로한다.

3. 빈민, 하층민, 순교자의 유가족, 부상자 들과 함께 싸워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고, 군부 타도라는 그들의 정치적 요구, 그들이 벌이는 점거 시위와 저항을 사회적·경제적 요구(이 요구를 쟁취하려면 혁명 정부가 필요하다)와 연결시켜야 한다.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연결은 매우 중요하다. 최소·최대 임금을 설정하라는 경제적 요구를 강제하는 것은 자본가 지배계급, 최고군사위원회와 직접적으로 정치적 대결을 벌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국가와 국가기구의 이해관계, 그리고 피착취 대중의 이해관계 사이의 모순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채택한 ‘민중에게 권력과 부를’이라는 구호는 급진적 강령으로 실현돼야 한다. 이 강령은 비틀거리는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무기가 되고, 혁명을 유산시키려는 의회를 처음부터 대중의 통제 아래에 놓고, 핵심적 사회적 대결과 모순(자본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계급과 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을 드러낼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혁명은 계속된다.

2011년 12월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