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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중앙위 파경 사태:
민중전선체의 정치적 파산을 보여 주다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다 무기한 정회됐다. 참석 대의원의 6분의 1가량밖에 안 되는 당권파(경기동부 계열)가 물리력까지 동원해 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를 훼방놓다 급기야 단상을 점거하고 대표단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중앙위원회 성원 문제를 제기했다. ‘참여계’가 회의 하루 전에 중앙위원을 무더기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 중앙위원회 해산”을 요구했다.

단상 점거와 몸싸움으로 얼룩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선진 노동자들의 투지와 사기를 갉아먹고 있다. ⓒ사진 고은이

당권파의 자업자득이다. 지난해 12월 3자 통합 때 각 세력의 지분을 민주노동당 55퍼센트, 참여당 30퍼센트, 통합연대 15퍼센트로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3주체’가 알아서 자기 지분을 채우도록 했다.

당원 민주주의에 충실한 당도 아닌 참여당이 자파 중앙위원을 내리꽂기 식으로 선정하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정희 전 대표를 비롯해 당권파는 참여당이 진성당원제에 근거한 당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민주노동당도 추가된 중앙위원 몫을 선출 없이 지역별로 안배했다).

마녀사냥?

이날 파국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단상 점거와 몸싸움으로 얼룩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이윤선

두루 알다시피, 문제의 발단은 비례후보 부정 선거였다.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는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거를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로 규정했다.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사실들만 놓고 봐도 이 선거는 정당성과 신뢰성을 완전히 잃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이었다.

그러나 당권파는 선거 부정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부실하니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우파의 마녀사냥은 당권파로 하여금 더 한층 강경하게 만들었다(유감스럽게도,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한때 이런 ‘색깔론’에 일부 동조하는 듯한 기사들을 내보냈다).

우리는 우파의 마녀사냥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검찰 수사는 문제를 결코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 것이다. 검찰의 목적은 결코 통합진보당 내 민주주의와 쇄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권파가 검찰 수사를 빌미로 자신들의 과오를 덮고 버틸 수도 있다.”(5월 3일 ‘노동자 연대 다함께’의 성명서)

실로, 우파의 마녀사냥이 강화되자 당권파는 이 사안의 성격을 ‘색깔론’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도 빗댔다. 당시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일심회’ 관련 당원 2인 제명 문제가 쟁점이었다. 심상정 비대위는 이들을 제명해 민주노동당을 오른쪽으로 “혁신”하려 했다. 좌파는 응당 이 시도를 저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우파의 징글맞은 ‘색깔 공세’와 자유주의자들의 얄미운 가세가 있다 할지라도, 이 사안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불거진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경선의 ‘총체적 부실·부정선거’ 논란”이라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규정이 맞다!

한편, 중앙위원회 직전에 봉합 목소리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검찰 수사와 우파의 마녀사냥으로 인한 위기감 때문이었다(민주노총의 압박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강기갑 의원은 당원 총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반반으로 해 비례후보 총사퇴를 결정하자고 했다. 이상규 당선자는 관리형 비대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봉합 시도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5월 12일 중앙위원회는 충돌을 예고했다.

오만하고 무모한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는 민주주의를 간단히 무시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스탈린주의 정치가 얼마나 오만하고 무모한지를 보여 줬다. 그들은 거의 모든 언론들이 취재하고 있던 중앙위원회를 폭력적으로 중단시켰다.

개혁주의가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 만한’ 요소들을 앞세우는 온건하고 조심스러운” 정치라면, 스탈린주의는 “부르주아지의 정서를 거의 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만하고 인정머리 없는”(존 몰리뉴,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 정치라는 점을 유감 없이 보여 줬다.

또, 중앙위원회의 파경은 서로 다른 계급 기반을 가진 정당들 간 통합인 민중전선체의 정치적 파산을 보여 줬다(통합진보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중전선체다).

사실, 이런 불안정한 동거는 어떤 계기만 주어져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지난해 11월 말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참여당과의 통합을 강행한 직후에 다음 같이 경고한 바 있다.

“상이한 계급 기반을 가진 정당들의 통합에서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다. ‘3자가 합당하는 것은 노동자와 중산층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정치적 선택’(최장집)이기보다는 상이한 계급적 기반에서 비롯한 상이한 정치 방침 때문에 수시로 갈등이 표면화될 공산이 크다.”(〈레프트21〉 70호)

당권파는 노동자 운동과 진보 운동 내 강력한 반대와 당내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참여당과 통합을 강행하더니 종래에 자기가 쳐놓은 덫에 걸려 버린 것이다.

비당권파 지도자들을 경계하라

비당권파(비주류 NL계+참여계+진보신당 탈당파 지도자들로 이뤄진)는 선거 부정 문제를 교묘하게 당권과 정치적 주도권 장악 문제로 옮겨 놨다.

사실, 비주류 NL계도 선거 부정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경기동부 계열은 집요하게 물타기·물귀신 작전을 폈다 — ‘너네는 깨끗하냐.’ 이 때문에 상호 비방전이 이어졌다. 진흙탕 싸움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당권파는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라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비당권파는 “쇄신”의 이름으로 당의 우경화를 시도할 위험성이 있다. 유시민 대표의 난데없는 ‘애국가’ 발언이 그 징조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애국가 제창 거부가 선거에서 당 후보들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던 요인이 됐다고 했다.

2012년 2월 통합진보당 창당대회 파국의 불씨를 품은 채 시작됐던 참여당과의 통합 ⓒ이미진

다함께 운영위원 김하영은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한다면 자신의 왼쪽을 향해 우경화 압력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선, 참여당 지도자들은 당면한 선거적 성과를 위해 이른바 ‘수권 정당’다운 태도를 취하라고 촉구할 것이다. 그동안에도 유시민은 진보진영에게 “‘운동’을 강조하고 ‘[제도]정치’를 멀리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거나, 이념만 내세우지 말고 “유능해야 한다”거나, 민주노동당 후보가 대선 때마다 독자 출마해 완주했지만 번번이 “득표는 미약”했는데 이렇게 “너무 진도가 느리고 천천히 커서” 언제 집권하겠느냐거나, 그러니 “승리하는 것을 기피”하지 말고 “경계를 넘어서” 연합하자고 얘기해 왔다. 그 다음에, 실제로 정권교체를 이룬다면 참여당 지도자들은 통합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의 이해관계를 새 정부의 성공에 종속시켜 투쟁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다.”(《마르크스21》 11호, 2011년 가을호, ‘통합진보정당과 국민참여당’)

참여당이 통합진보당에 참여한 것은 그들이 “진보화”해서가 아니라 “진보세력과 통합하면 야권연대 테이블에서 협상력이 커질 것”이라는 “실용주의적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심상정 대표는 연립정부가 “연합정치의 최대 목표”라고 본다. 그는 통합진보당을 연립정부를 위한 지렛대로 삼고자 한다. 지난해 통합 전에 심 대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연합정치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했다.

비당권파가 현 국면에서 사태 해결의 열쇠로 제시하는 것은 비대위다. 그리고 비대위원장 후보는 강기갑 의원이다. 그는 당장 이번 부정 선거 문제에서도 사태의 발본적 해결보다는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중재에 주력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의 체계적 연합을 초보적 수준에서 착수한 것도 강 의원이 당 대표로 있던 때였다.

비록 당권파의 물리적 저지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비당권파가 현장 발의한 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비대위 구성안을 다함께 소속 통합진보당 중앙위원들이 지지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권파의 종파적 오만함, 정치적 패착, 어이를 상실케 하는 중앙위원회 대응이 많은 진보적 노동 대중을 질리게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당권파 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당내 역학 관계 뒤집기에 십분 활용할 기회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분당할 가능성은 아직 커보이지 않는다. 아니, 비당권파 지도자들이 현 상황에서 분당할 까닭이 더 없어졌다. 무엇보다, 연립정부를 향한 강한 정치적 애착은 이들로 하여금 제3당의 지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분당은 않더라도 한 지붕 두 당으로 갈 가능성이 뚜렷해졌다.

비당권파 지도자들의 정치 계산을 이해한다면, 그들도 신뢰할 만한 대안이 못 된다는 점도 쓰디쓴 진실이다.

지금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장외 투쟁과 통합진보당을 매개로 한 원내 개혁 입법이라는 자신들의 로드맵이 차질을 빚게 돼 크게 분개해 있다. 매우 강한 어조로 통합진보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중단,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6월 말 경고파업과 8월 말 총파업’ 계획을 재확인하고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기로 의결”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의 5월 11일 결정도 차질 없이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동력은 결국 대중 투쟁이기 때문이다.

많은 선진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씁쓸함뿐 아니라 환멸감도 느낄 것은 자명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정서가 투지와 자신감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분투해야 한다. 그것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명료한 정치적 이해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와 조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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