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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이 보여 준 여성 해방의 길:
“타흐리르는 파라다이스 같았다”

주류 언론은 아랍 세계의 평범한 여성들을 성차별적 질서에 순종하고 자기 권리에 눈뜨지 못한 사람들처럼 보도해 왔다. 서구 문화를 접한 소수 엘리트가 이들을 계몽해야 한다고도 했다.

패션 잡지 《보그》가 시리아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에, 영국에서 공부한 학살자 아사드의 아내를 “그림자 가득한 나라의 한 줄기 빛”이라고 치켜세운 것은 극단적 사례다.

그러나 2010년부터 시작된 아랍 혁명은 이런 위선을 걷어내고 진정한 여성 해방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 줬다.

이전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혁명 속에서 용기를 얻고 거리에 나왔다. 다음은 50대 여성 이브라힘의 증언이다.

이집트 혁명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여성들 ⓒ기기 에브라힘

“2005년 [무바라크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면서 정말 동참하고 싶었지만 경찰의 봉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무바라크 퇴진하라’고 외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언젠가는 나도 그 말을 외쳐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1년] 혁명이 시작됐을 때, 내 염원이 마침내 이뤄질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저항 세력의 신문을 읽고 1월 25일 시위 계획을 알았다. 그리고 1월 26일, 생애 처음으로 타흐리르 광장에 나갔다.

“당시 보안 경찰과 군부는 유독 여성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여성은 경찰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모욕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이브라힘은 여전히 투쟁에 한복판에 있다.

“나는 [치안을 책임지는] 내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해 24일 동안 타흐리르에서 연좌를 했다. 당시 내게 타흐리르는 마치 이집트가 아니라 파라다이스 같았다. 많은 사랑과 연대가 있었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별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저항 세력의 일부였다.”

서방은 아랍 혁명의 봄이 ‘이슬람주의의 겨울’로 몰락했다고 왜곡한다. 그러나 대학생인 안와르는 종교가 아니라 군부와 그에 타협한 정치인들 때문에 여성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 학생그룹 소속이고, 이집트 혁명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첫 반정부 시위를 조직했다. 시위 도중 한 동지가 경찰 폭력으로 피흘려 죽는 것을 바로 옆에서 봐야만 했다.

“나는 니캅[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리는 검은색의 무슬림 복장]을 쓰고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것은 정권과 군부지, 니캅이 아니다.

“나는 무슬림이면서 사회주의자다. 그리고 무슬림이면서 자유주의자인 사람, 무슬림이면서 공산주의자인 사람도 있다. 종교와 정치는 별개기 때문이다.”

혁명 전, 사람이 많이 붐비는 타흐리르 광장은 성폭력의 상징이었다. 정부와 경찰은 성폭력 피해 여성의 ‘행실’을 탓하곤 했다. 그러나 무바라크를 몰아낸 18일 동안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이 자취를 감췄고, 타흐리르 광장은 오늘날 해방의 상징이 됐다.

물론 모든 이집트인들의 의식이 2년 안에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더는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큰 시위나 종교 행사가 있는 날에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성폭력범을 색출하고, 물리적 충돌까지 불사하며 성폭력에 맞서 싸우는 단체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거리의 성폭력에서 여성을 보호하는 것은, 단지 여성뿐 아니라 시위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한다고 본다.

혁명을 경험하며 많은 이집트인들이 여성차별적 관점을 바꿨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혁명을 ‘도둑질’하려는 정부에 맞서 이집트에서는 오늘도 남성과 여성이 함께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