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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주년 세계여성의 날:
경제 위기 때면 높아지는 가족 가치 수호의 목소리

“가족 부활은 국가 과제다. 올 한 해도 가족과 함께 가면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

2013년 새해 첫날, 〈조선일보〉는 ‘가족의 해체’를 한탄했다. 〈조선일보〉는 “가족의 붕괴와 해체는 … 각종 범죄의 배경”이고, “‘가족 해체’에 따른 연간 사회적 비용”이 11조 원이나 된다면서, “가족 부활”을 “국가 과제”로 삼았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가족제도가 하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은 지배자들에게 아주 절실하다. 경제 위기 시기에 지배자들은 복지 예산이 너무 늘어나지 않도록 하거나, 심지어 삭감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복지가 형편없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개별 가정 여성의 몫이 된다.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가족 가치’를 강조하고 여성의 헌신과 봉사 등을 강조하는 보수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지배자들이 ‘가족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가 하는 구실과 연결돼 있다.

자본가 계급은 가족제도(특히 여성의 가사노동)를 통해 그들이 착취하는 노동자들과 차세대 노동자들을 거의 공짜로 재생산할 수 있다. 양육뿐 아니라 노인 부양, 간병 등 돌봄 비용을 생각해 보면, 가족 내 여성의 공짜 노동이 지배자들에게 얼마나 큰 이득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주류 정치인·언론·광고 들은 여성이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라는 관념을 부추긴다. 이것은 여성의 저임금을 정당화하고, 남성과 여성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데도 유용하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가 유지되는 것이 자본가들의 필요 때문만은 아니다. 체제로부터 착취받고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무정한 세계의 안식처’로 여겨 가족을 꾸린다. 현실에서 가족이 개인들의 삶을 억압하고 국가가 가족에 대한 지원을 거의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대가 무너지곤 하지만 말이다.

떠넘기기

경제 위기 시기에 지배자들은 ‘가족 가치’를 수호해야 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낀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80~90년대 복지 감축에 발맞춰 개별 가족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들이 크게 부상했다.

“예컨대, 공공 교육 시스템을 보자. 수십 년간의 지원 감축은 과밀 학급과 과로에 시달리고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교사들을 만들어 냈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은 이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부모들은 이전에는 정부가 지원했던 학교 물품들을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부모들은 매일 밤 아이들의 숙제를 해 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이런 일을 하지 못하는 부모들(주로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고 여겨지고 아이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데 대해 비난받았다.”(미국의 사회주의자 젠 로쉬)

이렇듯 경제 위기와 양극화가 낳는 부담을 개별 가정에(즉, 여성에게) 떠넘기는 데 ‘가족 가치’를 앞세우는 것은 아주 효과적이다.

물론 지배자들은 실제로 여성들이 아예 일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노동력의 중요한 일부다. 그럼에도 ‘가족 가치’ 강조는 여성의 이중 부담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예컨대,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일·가정의 양립”을 위해 여성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면서 ‘유연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이 가정을 책임지면서 틈틈이 저임금을 받아 가며 일도 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흔히 이런 ‘가족 가치’ 강조는 동성애자와 비혼모 등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런 마녀사냥은 경제 위기 시기에 광범한 사회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는 효과를 낸다.

마녀사냥

그래서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뉴라이트’는 1960년대의 급진적 사회운동이 낳은 성과인 여성의 낙태권과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맹렬히 공격했다. 2010년 초 한국에서 벌어진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 근절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난해 우익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문제 삼으면서 동성애자들을 공격했다.

‘가족 가치’ 수호자들은 범죄와 같은 ‘사회적 질병’이 가족의 붕괴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거나 기르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범죄와 비행의 증가를 한부모 탓으로 돌리는 전례없는 공격이 벌어졌다.

그러나 범죄와 가족 해체의 연관성에 관한 이런 주장이나 연구들은 대부분 ‘빈곤’이 둘의 공통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무시한다. 그래서 ‘빈곤’을 해결할 복지 확충 같은 국가의 책임을 언제나 비껴가게 만든다.

사실 진정으로 ‘가족 해체’를 막으려면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매우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불안정한 저질 일자리 등은 노동계급 가정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가족 내의 긴장과 불화를 낳는다.

그런데 모순이게도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자들은 실질적으로 노동계급 가정의 처지를 향상시키는 조처들에 반대한다.

〈조선일보〉는 쪽방촌 노인들의 열악한 처지와 고독사를 다루면서, 이들이 ‘매정한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곤 하지만, 우리는 더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들이 없도록 복지를 대폭 확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위기 시기에 정부와 보수언론이 ‘가족 가치’를 강조하면서 양육과 돌봄의 부담을 노동계급 가족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려는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가족 가치’를 해친다며 이혼이나 낙태 등을 더 어렵게 만들려는 시도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에도 반대해야 한다. 또, 여성과 남성을 분열시키는 이데올로기에도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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