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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처형:
지배 관료 핵심부의 위기와 체제의 모순을 드러낸 사건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장성택이 12월 12일에 처형됐다. 지난 12월 8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 혐의”로 장성택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한다고 발표한 지 불과 나흘 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급작스런 처형 과정은 경악스런 일이다. 북한 당국은 장성택의 혐의로 국가 전복 음모(남한 형법의 내란 음모!) 등을 제시하며 장성택이 모든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일을 기도했고 증거가 무엇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차례의 비공개 재판 즉시 처형한 것이다.

장성택 처형 사태는 북한 스탈린주의자들의 잔학성과 비민주성을 여과 없이 보여 준 일이다.

3대 세습

그러나 장성택 사태는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이 처한 어려움의 깊이도 보여 준다.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 김정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 속에 권력을 잡았다. 〈레프트21〉은 김정은 등장 때부터 이 점을 강조했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북미 관계가 그가 헤쳐 나가야 할 난제들이라고 했다.

△1990년대의 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북한 경제 [크게보기] ⓒ레프트21

1990년대 내내 북한 경제는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1990~98년 내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며,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30퍼센트나 감소했다.

북한은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금을 국제 금융 기구들한테서 받고 싶었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로 가로막혀 있었다. 20년 넘게 지속된 북미 간 갈등은 지금도 전혀 풀릴 기미가 없다.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하고, 그것을 핑계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북한 관료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믿음 결여와 불안감이 확산돼 왔다. 북한 인민은 오랜 위기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처럼 김정은은 지난 20년 동안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나라를 물려받았다. 〈레프트21〉이 강조했듯이, 3대 세습은 북한 체제의 강력함이 아니라 불안정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2011년 1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선택[3대 세습]을 한 것은 북한 내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체제의 안전과 원만한 권력 계승을 실현하기 위해 3대 세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오히려 때에 따라 3대 세습은 불안정을 더 키울 만한 일이었다. 북한 당국이 거듭거듭 “유일 영도 체계” 운운한 것은 그만큼 그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김정은은 나라 안팎의 구조적 문제들에 직면해 집권 2년 동안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제국주의 간 긴장이 점차 커지고 세계 자본주의가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북한 체제의 위기를 헤쳐 나갈 여지는 많지 않았다.

최근 방공식별구역 사태가 보여 줬듯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 제국주의 갈등은 커져 왔다.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 귀환”을 선포하며 이 지역에서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력 배치를 강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옥죄는 강도도 높아졌다.

세계 1·2·3위의 강대국들이 주변에서 힘을 과시하고 북한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판국에, 김정은이 바라는 북미 관계 개선은 정말 요원한 일이다. 오히려 이런 힘의 대결을 보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북한)의 지배 관료들은 상당한 공포감과 “피포위 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가뜩이나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여전히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원 상당 부분을 군사력 강화에 돌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은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노선은 허약한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계속 군사력을 높여야 하는 북한 관료들의 고육지책일 뿐이다.

경제 회복의 난관들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와 인민 생활도 근본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 북한 경제는 2000년대 들어 다소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로 경제는 다시 마이너스 성장과 소폭의 회복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5·24조치를 발표해 남북 교역이 급감한 2010년을 전후로 북한은 무연탄 등의 광물자원 수출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교역을 대폭 늘렸다. 이는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따라 원자재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기도 했다. 2011년 현재 북한의 전체 무역(남북 교역 제외)에서 대중국 무역의 비중이 무려 89.1퍼센트에 이르렀다. 북한이 최근 들어 경제특구들을 대거 지정하며 외국 자본에 손짓한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대외 무역 의존은 몇 가지 위험을 안고 있었다. 우선, 북한 경제가 외부 경제 상황에 매우 민감해졌다. 특히, 중국 등의 한두 나라와 교역하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그 나라 경제가 침체하면 북한 경제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중국의 대북 교역과 투자가 중국 전체 무역 및 투자 추이와 거의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이것이 북한 경제에도 어려움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기대하며 야심차게 시작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개발은 중국 기업들의 투자 부진으로 내내 지연돼 왔다. 북한 관료들은 중국과 러시아 자본이 투자한 라선(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이 컸던 듯하다.

또한 중국만을 주된 교역 대상으로 하다 보니, 교역의 불평등성도 문제가 될 것이다. 강대국 중국의 기업들이 석탄 등의 거래 조건에서 북한보다 훨씬 더 유리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즈음부터 중국 정부는 경제 정책과 제도 개선에 대해 북한에 여러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이 저지른 여러 혐의 중에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 버리는 매국행위를 [했다]”는 점을 꼽은 것은 바로 중국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불만을 반영한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북한에 미치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 왔다. 이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한테 “동북 4성”을 언급할 정도였다. 얼마 전 평양을 다녀온 도쿄대학교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강력해지고 있는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는 북한 관료 다수한테 달가울 리가 없다. 핵무기 개발 같은 군사·대외정책 등을 놓고 중국의 압력이 거세지면, 북한 관료들 사이에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금과 자원을 확보하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때로 북한 당국은 자원의 대량 수출로 정작 국내 산업(예컨대 전력산업)을 가동할 자원이 부족해지는 사태도 겪었다. 한동안 북한 당국이 전량 수입해야 하는 코크스탄 없이 새로운 제철공법으로 “주체철”을 만들자고 강조했던 것은, 그만큼 북한 관료들이 국내의 협소한 자금과 자원으로 자본 축적을 지속하려고 몸부림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민 대중의 불만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인민 다수의 삶은 너무 힘겨웠다. 그동안 북한 당국이 경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인민에게 떠넘겨 왔기 때문이다. 2002년 시장 개혁 정책인 7·1조치로 각종 보조금이 삭감되는 등 지난 10여 년 동안 보통 인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7·1조치로 북한 당국이 국정가격을 대폭 올린 이후 물가와 환율의 앙등으로 대중의 고통은 더 깊어졌다. 특히, 2009년 화폐 개혁 이후 3년 동안에는 쌀값이 무려 2백91배나 올랐다. 북한은 이란·짐바브웨와 함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 물론 이것이 북한 인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다.

북한 관료들은 강력한 탄압으로 인민의 불만을 억눌렀다. 2011년에는 시위 진압 부대가 사용할 최루탄·헬멧·방패 등을 중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하기도 했다. 동시에, 2012년이 강성대국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인민 대중을 달래 왔다.

그러나 북한 인민의 80퍼센트 이상은 여전히 식량난에 시달리며 32퍼센트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해에도 황해도 일대의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했다는 비극적인 보고가 있다.(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449호)

반면에 이 와중에도 당 관료는 많은 특권을 누리면서, 소득격차는 더 커졌다. 이들은 부분적 시장 개혁과 대외 무역에 힘입어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처럼, 로켓을 쏘고 핵 실험을 하는 나라에서, 수도 평양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급증하고 외환 거래가 활발해지는 나라에서 당장의 끼니부터 걱정인 인민 다수의 박탈감과 분노는 얼마나 크겠는가.

관료의 동요

대외 지정학적 긴장, 경제 위기, 인민 대중의 불만 등의 문제들은 북한 관료 내부에 상당한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을 것이다. 장성택 사태는 더는 숨기지 못할 만큼 커진 관료 내의 갈등이 곪아서 터져나온 것이다.

올해 6월 조선노동당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이하 10대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했다. 10대원칙을 개정하면서 간부들이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는 현상에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추가됐다. “양봉음위”(겉으로는 명령을 받드는 척하지만 뒤로는 배반한다)는 은밀히 장성택을 겨냥한 표적 개정이었음을 시사하지만, 또한 북한 관료들 사이에 상당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음도 반영한다.

북한 당국이 장성택 처형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발표문들을 봐도, 무엇이 북한 관료들을 그토록 동요하게 했는지가 드러난다 — “나라의 경제 사업과 인민 생활 향상에 막대한 지장”, “2009년 [화폐 개혁 실패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됨]”.

북한 당국은 이처럼 경제와 인민 생활이 파국에 이르렀음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대신에, 이 모든 책임을 장성택 등 “종파분자들”한테 전가한 것이다.

장성택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했다거나 미국의 대외 정책에 편승하려 했다고 비난하는 대목에서는 핵무기 개발 같은 군사·대외 정책 등을 놓고도 관료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했음이 엿보인다.

이처럼 북한 관료들은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놓고 고심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국 경제 협력을 주도했고 그 때문에 아마도 중국으로부터 핵무기·미사일 개발 중단 압력을 많이 받았을 장성택이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려다 철퇴를 맞은 듯하다.

“장성택 일당”이 “사법검찰, 인민보안기관에 대한 당적 지도를 약화”시켰다거나,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는 것으로 보아, 북한 관료의 동요는 당과 내각을 넘어 군부에까지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으니,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까지 처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관료들의 내분 속에서 아마도 장성택이 반대파의 지도자였던 듯하다. 장성택 처형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의 기사는 장성택이 북한의 “유일 영도 체계”를 무시한 사례들을 상세히 열거했다.

그러나 장성택파든 김정은 지도부든 북한 관료들 사이의 갈등에서 북한 인민 대중이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세력은 전혀 없다. 이들은 모두 지속적인 자본 축적과 지배 체제 유지의 방식을 두고 갈등하고 분열하는 것이다. 일부 관료들이 인민 대중을 위한 “개혁”에 나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북한 관료들은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획일체 같던 관료들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 불안정이 발생하면,세계경제 위기로 인한 중국의 경제 성장둔화와 노동자 저항의 성장과 맞물려 그동안 억눌려 있던 노동계급한테는 저항에 나설 가능성이 주어질 수 있다. 만약 이런 저항이 북한에서 터진다면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남한 좌파 앞에 던져질 텐데, 이는 그저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강대국들과 박근혜의 위험한 대응

장성택이 처형되자 미국 정부는 신속하게 논평을 내며 북한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처형 소식이 알려진 직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대변인 패트릭 벤트렐은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 잔혹성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들도 잔학성과 비민주성에서 북한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들을 “테러 혐의”로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 감옥에 장기간 가두는 게 미국 오바마 정부다. 오바마의 주특기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예멘 등지에서 드론(무인기)을 이용해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성택이 처형된 12일에도 미국은 드론을 동원해 예멘에서 결혼식에 참가한 차량들을 공격해 최소 민간인 14명을 살해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중국 외교부장 왕이와 북한 동향과 6자회담 재개 문제 등을 논의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급변사태가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한 이유들 중에 중국 지배 관료들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국 외교부의 첫 반응은 ‘북한의 안정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은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을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울 기회로 삼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북한에 군사 개입할 것을 검토해 왔다. 그래서 미국은 남한과 함께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대응계획을 진전시켜 왔다.

여기에 박근혜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장성택 처형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설 사무조직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정부 내에서 남한과 미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해 만든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중국의 우려를 부른다. 그래서 중국도 북한의 불안정에 대비한 계획을 갖고 있으며, 12월 초 중국군 3천여 명이 백두산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등 북한 인근에서 군사 훈련의 빈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불안정을 빌미로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에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위기를 가속시키려고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런 개입은 북한 노동계급이 저항할 잠재력이 현실화하는 것을 방해하고 왜곡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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