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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와의 논쟁④:
가치법칙과 옛 소련, 그리고 다시 진영 논리

박노자 교수(이하 존칭이나 호칭 생략)는 필자가 제기한 반론이나 비판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계속 곁가지 치기 식으로 이 쟁점 저 쟁점을 툭툭 던져, 필자의 핵심 논지를 다루기를 회피하고 문제의 핵심을 흐리려 하는 듯하다. 가장 최근에 쓴 글에서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주된 법칙으로 가치법칙을 들었다며 옛 소련 등의 동구권 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이 “상대화”되어,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그는 자본 시장, 토지·부동산 시장, 노동 시장 등 3대 시장이 없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2 필자는 전에 쓴 글에서 소련에도 노동 시장이 존재했음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경제자문 아벨 아간베기얀의 소련 임노동 논의를 소개함으로써 지적했다.

그리고 토지·부동산 시장이 부재하고 토지가 국유화되더라도 자본주의가 아니기는커녕 오히려 부르주아지가 토지 국유화의 주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이다. 레닌도 자본주의에서 토지 국유화는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하는 조처라고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토지 국유화 문제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두 부분 ― 차액지대 문제와 절대지대 문제 ― 으로 나뉜다. 국유화는 전자의 소유자를 변경하며 후자의 존재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국유화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한계 내에서의 부분적 개혁(잉여가치 일부의 소유자의 변경),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전체의 발전을 방해하는 독점을 폐기한다. … 자본주의의 자유롭고 광범하고 급속한 발전, 계급투쟁을 위한 완전한 자유 …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 체제 하에서 토지 국유화가 의미하는 것이다”(Lenin, “The Agrarian Programme of Social-Democracy in the First Russian Revolution 1905-1907,” Collected Works, Vol. 13).

“국유화는 지대를 국가로 이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국유화는 토지의 이용을 촉진할 것이다. … 토지 국유화는 부르주아적 조처다. … 토지 국유화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도 가능하며 생각할 수 있다. 토지 국유화는 자본주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촉진할 것이며, 농업 관계 분야에서 최대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이다”(Lenin, 1906, “Revision of the Agrarian Programme of the Workers’ Party,” Collected Works, Vol. 10.)

자본 시장의 부재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많은 후진국이 실시했던 정책이고, 1997년 동아시아 금융 공황에 직면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는 매우 엄격한 자본 통제를 시행했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지금까지도 사하라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지역은 국제 자본의 철저한 외면을 당했으므로 자본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넌센스에 불과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서두에서 자본주의를 “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라고 정의했는데, 구체적 수준에서 본 자본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존재해 왔다. 따라서 박노자처럼, 옛 소련 같은 한 나라 안에 시장이 거의 없는 것을 근거로 삼아 그 사회가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것이다.3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의 진정한 성격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으로부터 강요되는 가치법칙

마르크스에 따르면(특히 ‘자본 일반’과 ‘다수 자본’의 관계에 대한 논의), 자본주의의 동역학은 경쟁적 축적이 개개의 자본에 외적 강제 법칙으로서 강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압력 때문에 개별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든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견줘 덜 효율적인 생산자의 추가 노동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따라서 가치법칙은 서로 다른 활동들 사이에 노동이 배분되고, 비효율적 생산자들이 불리해지는 과정을 반영한다.

이처럼, 경쟁 때문에 개별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내재적 법칙을 외부적 강제로 느낄 수밖에 없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이윤을 재투자하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축적하지 않는 자본가는 경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경쟁은 자본들이 생산 효율을 서로 비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치법칙 때문에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치법칙의 압력을 반영해 자본가들은 자기 기업 내부에서 생산을 ‘계획’한다. 따라서 가치법칙은 개별 기업의 관료적 통제나 ‘계획’과 상충하지 않는다.4

19세기 말, 자본의 집적과 집중 덕분에 대기업들이 등장했다. 대기업들은 시장 진입 비용을 높이거나 비시장적 방식(국가 관료와의 유착, 유통망 독점 등)으로 잠재적 경쟁자들을 물리치려 했다. 특히 국가의 경제 개입이 중요해졌다. 국가는 경제 성장을 위해 경제에 개입했다. 국가 개입 덕분에 대자본은 경쟁 압력을 덜 받고, 운신의 폭이 어느 정도 넓어졌다.

이런 국가 개입은 가치법칙의 작용에 영향을 줬다. 국가 개입으로 가치법칙이 부분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과점이나 국가 개입 등으로 서방 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이 부분적으로 변형되긴 했지만, 법칙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경쟁의 형태가 변한 것이지, 자본주의적 경쟁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옛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노자는 소련에서 관료들이 “정책적 고려에 의해” 가격을 “독단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부의 군사적 경쟁 압력과 그로 인한 “총동원”의 필요와 무관하게 소련 관료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 박노자의 글들을 보면, 군사적 경쟁 압력과 소련 내부의 ‘계획’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는 듯하다. 서방 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이 기업(또는 때로 국가) 내부에 ‘계획’을 강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 관료들도 세계적 수준의 가치법칙 때문에 소련 내부에 ‘계획’을 강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군사적 경쟁을 자본주의적 경쟁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잘못된 관점이다. 국가를 지배하는 자들은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뒤처지는 것을 막으려 애쓰게 된다. 경쟁국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 더 많은 잉여를 투자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경쟁국들이 항상 신규 기계설비류와 기술혁신에 투자하므로 자신들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나라의 구체적 노동이 세계적 수준의 추상 노동과 연관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는 군사적 경쟁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각국 내부의 노동과정을 재편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력을 형성한다. 마치 경제적 경쟁이 각 기업 내부의 혁신을 추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에 제정 러시아가 군사 경쟁에서 영국·프랑스 등에 뒤처지자 뒤늦게 자본주의를 ‘육성’하려고 애를 썼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마찬가지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수십 년 동안 군사적 압력을 받으면서 서방 강대국과 경쟁해 온 소련은 그 내부의 노동과정과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련에서 ‘계획’은 언제나 외부 압력 때문에 계속 사후적으로 수정돼야 했다. 자본주의 경쟁의 역동적 성격 때문에, 경쟁 압력의 수위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1937년 한 소련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고 그 국가들의 경제적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과제는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 목표는 그 자체로 역동적이다. 자본주의는 전반적인 위기에 처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가 완전한 정체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5

외부의 역동적인 경쟁 압력이 있었다. 그리고 소련 관료들은 이에 대응해 경제 목표를 세워야 했고, 그에 따른 문제가 잇따랐다. “제1차5개년계획은 1천7백페이지 이상에 달했지만, 전혀 달성되지 못했다. 연이어 나온 5개년계획들은 의향서(declarations of intent)에 불과했다.” 〈프라우다〉도 이 점을 인정해야 했다. “일관된 계획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꽤 단순한 유형의 우선순위 시스템이 존재할 뿐이다.”6

따라서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에서 진정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배 관료의 정책적 고려에서 우선순위는 군사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소련 경제는 세계적 수준의 가치법칙에 종속됐다.

박노자는 옛 동구권이 붕괴한 뒤에 경제가 후퇴하고 “온갖 사회적 재앙”이 벌어져, 지금 옛 소련을 비롯한 옛 동구권 사람들에게 과거 동구권 시대가 “잃어버린 황금기”로 보인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취약한 경제를 세계 시장에 개방해 버린 것은 바로 동구권 스탈린주의 체제의 관료들 자신의 결정이었다.7

이미 1989년 이전에 동구권 경제는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었으며, “황금기”이기는커녕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정체의 시기였다. 아벨 아간베기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1~85년에 실질적 경제성장은 없었다. 1979~82년에 전례 없는 정체와 위기가 닥쳐서 전체 공산품 생산이 실제로 40퍼센트 감소했다.”8

그런데 박노자의 글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동구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 국가들의 공식 통계를 봐도, 이미 1960년대 말에 성장률이 3분의 1에서 3분의 2가량 하락하는 장기적 경향이 나타났다. 게다가 세계 자본주의에서 점차 세계화·다국적화 경향이 유력해지면서, 동구권의 국가자본주의 경제는 더욱더 취약해졌다.

당시 지배 관료들은 이미 위기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경제를 세계시장에 개방해 경쟁력을 제고하려 했다(이른바 “충격 요법”). 이것은 탈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후퇴’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에서 민영화하는 다국적 자본주의로의 게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전가돼 이미 허약해진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준 것이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내내 러시아와 동유럽 민중은 구조조정과 경제 위기의 대가를 혹심하게 치러야 했다.

따라서 1989년 이전의 동구권 시대가 “잃어버린 황금기”였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1990년대 동구권 민중에게 닥친 고통은 그 이전 시대에 벌어진 위기와 연관시켜 살펴봐야 한다.

제국주의와 옛 소련

박노자의 글들을 살펴보면 그는 여전히 사적 소유라는 법률적 소유 형태에 집착하고 있다. 사적 소유 때문에 소련에는 시장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관료적 통치가 문제이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옛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산관계와 소유관계를 구별해야 한다는 점은 필자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논쟁 초기에 강조했던 바이므로 여기서는 추가적인 논의를 생략하겠다.

냉전 시대에 스탈린주의 체제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가 아닌 ‘노동자 국가’나 ‘탈자본주의’로 본 좌파들은 제국주의 문제에서도 부적절한 선택을 했다. 옛 소련을 서방 자본주의보다 사실상 열등하다고 생각한 사람들(특히, 관료 집산주의론을 주장했던 막스 샤흐트먼)은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 반면에, 옛 소련이 모종의 진보적 생산양식을 구현하는 사회라고 본 좌파들은 소련의 대외정책들을 변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박노자는 후자에 가까운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자 연대〉는] 미 제국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혁명 이후 국가들의 필연적인 자위적 몸부림들을 ‘국제경쟁’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앞으로도 반제국주의 투사/혁명가들에게 유효할 집단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옛 소련 등의 행태가 “혁명 이후 국가”의 “필연적인 자위적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이런 주장은 스탈린파 관료의 반혁명을 간과한 결과이다. 1928~29년 이래로 소련은 “혁명 이후 국가”가 아니라 ‘혁명이 패배한 후의 국가’라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볼셰비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는 단지 한 줄기 피가 아니라 피의 강이 흐르고 있다”(트로츠키).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공포정치로 혁명기의 지도자들이 거의 다 처형되거나 투옥됐다. 1923년 당시 소련공산당 정치국원 9명 중 단지 3명(레닌, 스탈린, 몰로토프)만이 자연사했고 나머지 6명은 스탈린에 의해 살해됐다. 1930~32년 ‘반혁명 및 특별위험 범죄’로 소련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매년 2만 명 대로 급증했고, 1937~38년에는 무려 매년 30만 명을 넘었다.9 러시아 혁명 자체를 뒤집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 이런 대량의 처형 사태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파 관료는 자국의 군사적 방어를 위해 각국 공산당들을 자신의 외교적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소련 바깥의 노동자 운동은 커다란 패배를 겪어야 했다. 1925~27년 중국 혁명이나 1936년 스페인 내전의 패배는 뼈 아팠다. 그러나 특히,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일종의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1928~34년 스탈린주의의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 때문에 히틀러의 집권을 저지하지 못한 것은 세계사적인 재앙을 불렀다.

이 점에서 옛 소련의 대외정책과 군비 증강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우리가 배워야 할 “집단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결코 재연돼서는 안 되는 반면교사다. 지난번 글에서 필자가 썼듯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즈음에 소련은 미국·영국 등과 함께 세력권을 분할했다. 그 결과로 한반도가 분단됐다. 그리고 서방 진영에 속하게 된 그리스에서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그리스 우익 세력이 레지스탕스 세력을 소탕할 때 스탈린은 처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에서 영국이 취한 정책을 완전히 신뢰하오.”

냉전 하에서 미국과 소련 양대 초강대국이 벌인 핵무기 경쟁은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한 심각한 문제였다. 한때 전 세계에 4만~5만 두의 핵탄두가 쌓여 있었을 정도였다. 필자는 소련이 핵무기 경쟁에 뛰어든 것에 대해 박노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소련이 핵무기 경쟁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군사적 경쟁이 낳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박노자는 이것도 “자위적 몸부림”이었다고 미화할 것인가?

그가 냉전의 양대 초강대국 중 한편의 행위를 (차악이나 차선으로) 미화하는 것을 보건대,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간 경쟁이 격화할 때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우려가 된다. (박노자가 중국이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는 점은 필자가 지난번 글에서 지적했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박노자의 잘못된 입장이 낳을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옛 소련 사회의 성격을 다룰 때 박노자는 경제 계획이나 국유 경제 덕분에 소련이 “다수의 생활수준을 경향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던 반면, 관료의 독재와 민주주의 부재가 진정한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소련의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켜, 둘의 연관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관료 독재와 지령 경제(‘계획’)가 공존했는지 말이다. 소련은 곱절의 경제 규모를 지닌 미국(영국과 프랑스, 서독, 일본 등 다른 서방 열강은 제쳐놓고라도)과 군비경쟁을 하기 위해 미국보다 곱절의 비중을 군비 부문에 투입해야 했을 뿐 아니라 다당제와 민주적 자유들을 허용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전면적(관료적) 국가자본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짝을 이뤘던 것이다.

이것을 서방 자본주의의 대안 문제와 연결시키면 어떤 함의가 있을까? 옛 동구권의 ‘계획’ 경제에 “민주적 요소”를 결합하자는 박노자의 생각은 유러코뮤니즘 좌파의 “민주적 사회주의” 전략과 맥락을 같이한다.10 두루 알다시피 “민주적 사회주의”는 고전(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 개념과 동떨어진 것이다. 유러코뮤니스트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를 “생산수단의 사회적(공공) 소유”로만 이해한다. 여기서 사회주의 앞에 붙은 수식어 “민주주의”는 의회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 개혁주의적인 노동자 정당이 의회를 통해 집권해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시장 통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11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의회제 민주주의를 확장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서구식 공산당들은 레닌이 아니라 카우츠키의 사상과 실천에서 영감을 얻어, 혁명적 입장과 개혁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중간주의 경향을 보였다.

반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노동자 민주주의(노동계급의 자력해방)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통일을 뜻했으며, 노동자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생산 통제가 융합됐을 때만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 이것은 기존(자본주의) 국가의 민주화를 통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기존 국가를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운동으로 분쇄하고 노동자 민주주의 기관들(대표적으로 러시아 혁명기의 소비에트)로 대체해야만 가능하다.

박노자는 여러 글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표현해 왔다. 물론 그 개념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서구식 공산당이 표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와 정확히 얼마나 같은지 단정짓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12

한편, 박노자의 혼란은 북한에 대한 기괴한 주장으로도 연결된다. 《좌파하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는 북조선 체제를 친민중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회주의와도 무관하다고 보지만, 지금 북조선 인민 입장에서 본다면 현 체제 유지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체제가 무너지고, 북조선이 남한 자본의 획득물, 일종의 전리품이 된다면 북조선 인민들의 처지가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현 정권을 좋게 볼 수는 없지만, 북조선의 현 체제가 그래도 당분간 유지되어야 인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장기적으로 챙길 수가 있을 겁니다. … 그러한 의미에서 현 정권의 유지와 그들을 상대로 하는 밑으로부터의 민중적인 압력 행사가 북조선 인민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시나리오로 보입니다.” (218~219쪽, 강조는 필자.)

지금의 독재 정권을 참고 그 밑에서 개혁을 요구하며 압력 행사에 그치라는 것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북한 노동자에게 시장 자본주의는 결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 독재 정권 하에서 북한 인민이 “기본적인 권리”를 챙기기를 기대하라는 주장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박노자의 상상력 속에는 남·북 노동자들이 서울과 평양, 워싱턴과 베이징을 모두 거부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위해 투쟁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전망이야말로 노동자연대와 박노자 사이의 결정적 차이점일 것이다.

각주

  1. 박노자는 여러 차례 우리의 단체명(또는 신문명) 노동자연대를 “로동자 련대”라고 쓰고 있다. 그가 글 전반에서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가 고유명사는 해당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 자신을 부르는 것에 따름을 원칙으로 한다는 관행을 존중해 줬으면 한다.?

  2. 이 쟁점에서 저 쟁점으로 메뚜기 뛰기를 하면서도 박노자의 주장에 일관된 면이 있다면, 그것은 옛 소련, 북한,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등 옛 동구권 사회가 (서방 자본주의 사회보다 우월한) “적색 개발주의”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적색 개발주의”의 등장 배경, 그 사회의 동역학, “적색”의 실체적 내용, 다른 개발주의와의 본질적 차이 등을 논증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3. 옛 소련 진영 사회의 성격 문제는 단지 과거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자는 것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사회의 성격 문제도 관련돼 있지만, 옛 소련 진영 사회에 대한 박노자의 잘못된 생각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도 여러 혼란을 낳고 있다. 이 점을 필자는 박노자와 논쟁하면서 써온 글들에서 거듭 지적했고, 이 글에서도 강조하려 한다.?

  4. 한편 박노자의 주장과 달리, 상품의 가격은 “상품 생산 실비와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법칙을 따라, 상품 생산에 드는 사회적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소련 경제학자 페브스네르도 “생산자들 사이의 경쟁은 그 생산자들이 새로 생산된 가치에서 최대의 몫을 얻기 위한 투쟁”이며, 이런 투쟁을 통해 노동가치론이 적용된다고 지적한다(Ya. Pevsner, State-Monopoly Capitalism and the Labour Theory of Value, Progress publishers, 1978). 계속해서 그는 개별 상품이 시장 가치로 이행하고 또 시장 가치가 시장가격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꽤 복잡하긴 하지만, 어떤 상품이 그 속에 포함된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에 비례해 시장가치로 판매되며, 이 상품의 총량을 생산하는 데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 전체는 이 상품에 대한 사회적 필요의 총량과 같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시장가격의 변동을 추종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므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게다가 박노자는 상품 가격(또는 가치)를 결정하는 데 유통 마진을 포함시킨다. 그러나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 이윤을 포함시키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부르주아 경제학의 방식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들에게서 착취한 잉여가치가 생산자 이윤을 포함해 유통 마진과 세금 등으로 나뉜다고 본다.?

  5. M Rubinshtein, Bolshevik, no. 21(1937)?

  6. Mike Haynes, Russia: Class and Power 1917-2000, Bookmarks, 2002에서 재인용.?

  7. 박노자의 구체제 향수론 비슷한 타령을 듣다 보면, IMF를 불러들인 1997년 경제 공황 이후의 한국 경제 저성장을 박정희 시대의 경제 고성장과 비교하면서 박정희 향수를 느끼는 남한 우파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레닌은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는데, 노동운동(특히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가장 중요한 환경은 정치적 권리를 누리며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노자가 주로 노르웨이에 거주한다 해서 복사기와 타자기도 사찰받던 1980년대 소련과 동유럽, 남한 같은 정치적 조건이 필자가 그와 ‘비교적’ 안전하게 혁명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할 만큼 현실감각이 결여되진 않았으리라고 본다.?

  8. Abel Aganbegyan, Pravda, 5 April 1988. 크리스 하먼의 《좀비 자본주의》(책갈피, 2012)에서 재인용.?

  9. Moshe Lewin, Soviet Century, Verso, 2005.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아카데미, 2006)에서 재인용.?

  10. 박노자는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에 실린 “민주적 사회주의의 청사진”이라는 글에서 고등교육계의 비정규직 교원 문제를 사례로 들어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은 [비정규직 교원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이미 동유럽의 계획 경제 국가에서 실현된 바 있다. 그리고 학술 발전의 차원에서도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민주적 요소를 제대로 결합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청사진이 그려진다.”(292쪽)?

  11. 장상환, 민주적 사회주의와 민주노동당의 실천,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권 제2호 (통권 제2호).?

  12. 그러나 《좌파하라》(꾸리에)에 나은 아래 대목에서 드러난 박노자의 생각은 서구식 공산당의 “민주적 사회주의”와 흡사하다.

    “만약 프랑스라든가 노르웨이 같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당장 모든 것을 소련처럼 국유화시키지 않고, 조금씩 먼저 노동시간을 계획적으로 줄이고, 사회 임금 제도를 시행해서 이제는 자기 노동을 팔지 않아도 기본 소득을 얻을 수 있게끔 사회를 연대 원칙으로 재편성시키고, 그다음에 조금씩 사기업에 대한 사회 통제를 높이게 되면 결국에는 소련보다 훨씬 더 좋은 민주적 사회주의로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자본가 계급이 그걸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거죠.”(155~156쪽)

    “만약 핵심부[선진국들]에서 은행을 비롯한 대기업을 사회화하고, 금융제도를 이윤극대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운영[했다면] … 상황이 [옛 소련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소련의 쓰라린 경험을 배워서 다르게 하면 되잖아요. 일단 정치적 민주주의를 당연히 보장해야 하고, 그리고 다당제 민주주의보다 조금 더 높은 노동자 민주주의 단계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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