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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와의 논쟁②:
옛 동구권과 현 중국 사회의 성격, 그리고 제국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연대〉 149호에 실린 기사 ‘박노자 교수는 진영 논리로 빠져드는가? — 옛 소련과 현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링크)에 대해 박노자 교수가 반박하는 글(링크)을 〈레디앙〉에 실었다.

옛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의 성격과 오늘날의 제국주의에 대한 박노자의 생각은 ‘진영 논리’에 빠진 일부 국제 좌파들의 잘못된 주장과 비슷한 면이 많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진정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박노자는 옛 동구권 사회를 “적색 개발주의”라고 규정했지만, 이번 글에서는 왜 그렇게 규정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옛 동구권 사회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봐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제국주의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으므로, 다시 한 번 다뤄 보도록 하겠다.

옛 동구권은 자본주의의 변형태

옛 소련과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등을 서방 자본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 즉 ‘사회주의’ 또는 ‘탈(Post-)자본주의’로 보는 좌파들은 주로 그 사회의 형태적 특징(사기업이 거의 없고 시장 경쟁이 없음, 중앙 계획경제, 낮은 대외무역 수준 등)이 서방 자본주의와 많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이 점에서 박노자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세계경제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었는지를 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세계 자본주의와 떼어놓고 그 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옛 소련과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립된 ‘섬’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쟁의 압박을 받고 이에 대응해야 했다. 이것이 소련과 중국 경제의 동역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련 지배 관료들은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에 직면해 있었다. 외부의 강제적인 (군사적) 경쟁 압력이 지배 관료의 ‘계획’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됐다.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의 상태에 ‘종속’됐으므로 경제 계획도 그에 따라 거듭 수정돼야 했기 때문에, 계획이라는 말에 아이러니를 나타내고자 작은따옴표(‘ ’)를 붙였다.) 군사적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지배 관료들은 군사력 강화에 필수적인 중공업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했다. 1927년 소련공산당 제15차 당대회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고 있다.

“군사적 공격의 가능성을 명심하고 … 5개년계획을 세울 때는, 일반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급속한 발전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 특히 전시에 우리 나라를 방어하고 경제 안정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산업들의 급속한 발전에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탈린은 외부와의 경쟁을 위해 축적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업화 속도를 늦추면 뒤처진다. 뒤처지면 패배한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이나 뒤져 있다. 10년 안에 이 격차를 메워야 한다.”

축적이 외부의 압력으로 강제되면서, 노동자들의 필요는 공업화 압력에 종속됐다. 소비가 축적에 종속됐고, 노동자들은 축적 과정의 희생자가 됐다.

외부의 강제적이고 경쟁적인 축적 압력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끊임없이 향상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는 건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이다.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서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소련 지배 관료들은 소련 내의 생산 비용을 다른 나라(특히, 미국)와 수시로 비교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견줘 소련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지 항상 자문해야 했다. 소련 지배 관료들의 경제 ‘계획’은 바로 이 압력에 좌우됐다.

그래서 고르바초프의 최고 경제자문이었던 아벨 아간베기얀은 자신의 저서에서 소련과 미국의 경제 실적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세계의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후진성은 너무 커서 금세기 말까지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산성 면에서 우리는 미국보다 두 배 반이나 세 배 정도 뒤떨어져 있으며 서방 선진국보다는 두 배나 두 배 반 정도 뒤떨어져 있다.”

옛 소련의 한 경제학자도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25년 동안 미국과의 경제적 경쟁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산업의 노동생산성은 1960년에는 미국의 44퍼센트, 1986년에는 55퍼센트 수준이었으며 농업에서는 오랫동안 20~25퍼센트 수준이었다.”(데렉 하울이 쓴 ‘가치법칙과 소련’에서 재인용, 강조는 나의 것)

서방의 중공업 생산자들이 노동비용을 줄이면 소련도 따라 해야 했고, 서방의 경제적 리듬이 변할 때마다 소련의 경제적 리듬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옛 소련에서의 구체적 노동은 세계적 규모의 추상적 노동과 연관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 축적한 잉여의 대부분을 산업 발전에 투입해 군사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한 사회를 ‘사회주의’ 또는 ‘탈(Post-)자본주의’라고 보는 건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과 정치경제(학) 비판과 관계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 경제학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념과 닮았다. 옛 소련에서 벌어진 “축적을 위한 축적”,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겪은 소외는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론》 등에서 묘사한 자본주의의 모습과 같다.

많은 좌파들이 거의 모든 산업체가 국유화된 경제를 옛 소련 등이 서방 자본주의보다 낫다는 근거로 삼는다. 박노자도 이런 소박한 인식을 가진 듯하다. 그는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에서 옛 소련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개별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와 사적 이윤 추구가 없던 사회였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특징지운 바와 다르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은 단지 관계이기만 한 게 아니라 과정이다. 다양한 계기들을 지닌 과정 속에서 자본은 언제나 자본이다.” 마르크스는 경쟁이 자본 축적을 추동하지만, 반대로 자본 축적 과정이 경쟁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발전하면서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이것이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의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융합) 변화는 훨씬 더 두드러졌다. 이것을 두고 레닌은 국가자본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불렀다. 국가 간의 군사적 경쟁도 더한층 치열해졌다.

이러한 국가자본주의 경향은 1930년대 대불황에 의해 가속됐고,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유력한 경향이었다. 그래서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국가가 고정자본 형성을 대부분 떠맡았다. 1970년대 중반 브라질 국가는 모든 투자의 60퍼센트 이상을 담당했으며, 영국 국가는 고정자본 형성의 45퍼센트를 떠맡았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였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자본주의는 1930~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유별난 게 아니었다. 그저 서방의 국가자본주의에 견줘 극단화(전면화)된 형태였을 뿐이다.

마오쩌둥 시대의(1949~78)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1949년의 혁명이 낳은 중국 사회는 옛 소련 사회와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냉전) 때문에 중국 투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중공업에 집중됐다. 중국 지배 관료들도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소비를 억제해서 마련했다. 중국의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임금 상승률은 매우 낮게 유지됐다.

중국에서 토지는 국가 소유였지만, 그 토지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공업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수탈당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52년 농민들에 대한 세금과 도시·농촌 간의 교역조건을 조작해 얻은 수익이 중국의 총투자에서 무려 34.7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농촌은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련 등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북한이 여전히 옛 모습대로 존재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국가자본주의론이 옛 동구권 국가들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자본주의론은 서방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가장 시장화됐다는 미국과 영국 경제의 적어도 3분의 1이 국가 부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많은 좌파들이 자본주의를 경제 체제로만 인식하고 있지, 국가를 핵심부로 하는 정치 체제로도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여러 혼란에 빠져 든다. 국가는 자본주의의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 일부이다. ‘경제’와 ‘정치’의 통일체라는 통전적(holistic) 관점의 결여 때문에 예컨대, 1978년 이후 시장 개혁을 단행한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대해서 좌파들의 관점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또한 제국주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옛 소련 몰락 이전에 좌파들은 소련과 그 동맹국들을 사회주의나 탈자본주의 사회로 보고, 미국에 맞서 그 국가들을 지지하는 진영 논리(campism)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특정한 형태를 서방에 비해 진보적이라고 봤던 습관은 소련의 붕괴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진영 논리’의 문제가 국제 좌파들에게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

박노자는 요즈음 중국을 비롯한 옛 동구권 사회를 “적색 개발주의”라고 규정한다. (몇 년 전에는 그런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내가 지난번 글에서 지적했다.) 그리고 그 국가들이 지금은 “서방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체제에 편입[됐다]”면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구 ‘적색 개발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고전적 자본주의 국가들과 상당한 질적 차이를 보입니다. 중국만 해도 아직도 토지 공공소유 (국유)부터 신자유주의적 환경임에도 복지를 계속 늘리려는 경향(무상 의료를 목표로 해서 의료복지를 계획적으로 늘리는 등의 움직임), 주요 은행과 대기업에 대한 여전한 국유 등까지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그게 이상적이다는 말을 제가 한 적은 없지만, 대다수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형태는 분명히 극단적 신자유주의에 비해 차악으로는 보일 수 있겠죠.” (강조는 나의 것)

박노자는 “중국형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부정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중국형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보다는 낫다고(혹은 덜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른바 ‘중국 모델’이 서방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국제 좌파들은 일부 있다. 이런 견해가 부상한 데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그 와중에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이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가 낳은 힘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볼 때, ‘중국 모델’은 차선은커녕 차악으로 보기도 힘들다. 1970년대 말 중국 지배자들은 기존 방식으로는 경제 성장(즉, 축적)을 더는 지속할 수 없고 이 때문에 군사적 경쟁에서도 뒤처질 듯하자, 세계 시장에 편입돼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생산성(따라서 착취율)을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생산양식의 변화라기보다는 동일한 생산양식 내의 변화(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부터 민영화하는 다국적 자본주의로)였을 뿐, 그 속에서 자본주의 경쟁적 축적 압력에 종속된 노동계급의 처지는 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

‘중국 모델’에 관한 좌파들의 논쟁에서 쟁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국유기업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쟁이 되는 것 중의 하나다. 시장 개혁 이후 민간 부문이 성장하면서 중국 경제에서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주요 산업과 금융은 국유기업이 주름잡고 있다. 물론 ‘중국 모델’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중국의 국유기업들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본다. (박노자도 “국유”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국유기업들이 ‘사회주의적’이라고 보지는 않더라도 사기업보다 좀 더 나은 기업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대나 지금이나 중국의 국유기업은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국유기업 노동자들은 기업의 운영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 국유기업 노동자들의 처지는 동시대 일본 대기업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국유기업은 서방의 많은 공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중국 정부는 핵심 국유기업들이 다국적기업들에 견줘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 중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둬 왔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는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국유기업에서 가차없는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를 단행했다. 이때 무려 노동자 6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운 좋게 일자리를 지킨 국유기업 노동자들도 그동안 국유기업이 제공하던 복지 혜택이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삶이 불안정해졌다. 또한 국유기업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평균 봉급 차이는 무려 1백 배나 됐다.

중국 국유기업들의 이윤 추구 행위도 사기업이나 서방 다국적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예컨대 최근 제주도가 영리병원을 들여오려고 했는데,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설립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곳이 바로 중국 국유기업인 녹지그룹이었다. 중국 국유기업이 이윤을 위해 한국의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 진영은 중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는 입장을 밝혔다.(항의가 있고 국내 자본가들이 녹지그룹을 앞세워 영리병원을 추진한 것도 폭로되자, 결국 보건복지부는 영리병원 승인 요청을 잠정 반려했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모델’의 장점으로 “주요 은행과 대기업에 대한 여전한 국[가 소]유”를 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토지의 공공 소유” 문제도 마찬가지다. 토지가 ‘사유화’되지 않았다는 중국에서도 정부와 기업이 토지를 이용하는 농민과 지역 주민을 수탈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 문제는 중국에서 아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돼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투자 자금을 확보하려고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거나 토지를 적절한 보상 없이 몰수해 왔다. “토지 몰수” 문제는 중국 농민들이 갖고 있는 최대 불만 사항이며, 이 때문에 농민 저항이 커져 왔다. 많은 농민들이 과도한 세금이나 토지 몰수를 견디지 못하고 도시로 이주해 “농민공”이 돼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이 과정은 과거 박정희 정권 때 한국의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해 노동계급의 일원이 된 과정과 유사하다. (그리고 자본의 시초 축적의 일환이기도 하다.)

박노자도 중국의 토지 몰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토지 소유 관계가 중국 민중에게 ‘차악’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아,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아래에서 묘사되는 중국의 현실은 용산 참사가 일어나는 한국의 현실과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세수 확대를 바라는 지방정부는 토지를 개발업체에 양도하고, 토지를 양도받은 개발업체는 지방정부의 묵인하에 가옥을 강제 철거하고 그 위에 아파트나 상가, 고층 빌딩을 새로 지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중국 정부가 거둬들인 토지 양도 수익은 총 1조 4천2백39억 위안. 이 가운데 다시 철거와 토지 보상으로 나가는 비용이 5천1백80억 위안, 도시화 건설에 3천3백41억 위안, 그리고 토지개발에 1천4백30억 위안이 쓰였다. 토지 양도로 벌어들인 수익은 또다시 토지를 사들이고 건설하는 데 쓰고 있으니 결국 중국 각 지방정부가 토지 개발을 위한 강제 철거를 부추기는 꼴이 된 셈이다.”(《다큐멘터리 차이나》(고희영, 나남), 131쪽)

오늘날 중국은 국유기업, 사기업 그리고 서방 다국적기업들이 국제 생산 사슬 속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혹심하게 중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회다. 그래서 중국 정부와 국유기업·사기업·다국적기업 모두 중국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하고 지배하는 데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도외시한 채, ‘중국 모델’이 서방 자본주의(신자유주의)보다 조금 낫다고(혹은 덜 나쁘다고) 보는 것은 중국과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제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진영 논리

일부 좌파들은 ‘중국 모델’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 함께, 흔히 중국의 대외정책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경향은 많은 좌파들이 ‘진영 논리’를 따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진영 논리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중국에 기대거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옹호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에 좌파들은 옛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나 “변질된 노동자 국가”나 모종의 “탈자본주의” 국가로 보고 미국에 맞서 옛 소련을 지지했다. 그래서 냉전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양대 초강대국(미국과 소련) 사이의 경쟁임을 보지 못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이른바 ‘단극 체제(미국만이 제국주의)’가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대다수 좌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좌파들이 제국주의를 단순히 미국의 세계 지배로 환원한 채, 미국에 맞서는 국가들의 편을 들게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압도적이고,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지금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다수의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이다. 이런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경쟁을 위해 이윤이 재투자되면서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파산한 다른 자본을 인수·합병하면서 자본주의에서는 점차 소수에게 자본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본은 일국적 규모를 넘어 세계적 규모로 경쟁하게 된다. 이때 자본은 해외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자국 국가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다른 국가와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국보다 우월한 무기와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자국 자본에 의존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이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결합되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중국도 명백히 제국주의 체제의 일부다. 이는 비단 티베트와 신장 등지에서 벌어지는 식민주의적 소수민족 억압만을 두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물론 중국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고, 이 때문에 동아시아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런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심장부로 떠오른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 등과 치열하게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군사력 격차는 계속 줄어 왔고, 이에 따라 중국 지배자들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를 뒤흔든다는 구상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1948년에 국민당의 한 장군이 작성한 지도를 근거로 동남아 국가들에게 남중국해 전체가 중국 것임을 받아들이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국을 두고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체 어느 국가를 제국주의적 국가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국주의를 식민주의로 환원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로 이해할 때 제국주의에 맞설 진정한 동력을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봐야 제1차세계대전 당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독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칼 리프크네히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박노자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자국 부르주아지부터 먼저 비판해야 한다고 옳게 지적한다. 제국주의 국가 밑에서 사는 사회주의자들이 자국 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노동자연대’는 항상 미국 제국주의와 남한 지배자들의 친미 정책을 폭로하고 반대해 왔다.

그러나 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등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한 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해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 끝내 그들을 전복하는 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끝장 내기 위해 국제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족들이 단결해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서로 다투지만,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놓고는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제1차세계대전 때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듯이 자본들(그리고 그 국가들)에 맞서 국제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게 중요함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레닌이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한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더 오래됐고 [식민지를] 많이 잡아 먹은 강도[영국, 프랑스]에 맞서 더 강하고 더 젊은 강도[독일]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 전부를 전복하기 위해 강도들의 싸움을 이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사회주의자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즉, 이 전쟁은 노예제를 공고히 하려고 벌이는 노예 소유주들 사이의 전쟁이라는 진실 말이다.” (강조는 나의 것)

이와 반대로, 진영 논리를 받아들이면 상대편 제국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저항에 대한 태도에 혼란이 생긴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과 연대에도 약점을 드러낸다. 예컨대 지난해 홍콩에서 벌어진 우산 운동(민주화 요구 운동)을 두고 일부 좌파들은 중국에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려고 미국이 지원한 “색깔 혁명”이라고 취급하거나, 아예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해 버린 일이 있었다.

레닌 등 제정 러시아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독일 편을 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러시아 제국주의와 러시아 국가를 반대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과 남한이 적대시하는 국가들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남한·미국·일본의 국가들을 반대할 수 있다.

박노자는 자신이 ‘중국 편’을 드는 게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그가 완전히 진영 논리에 기울었다고 단정짓지는 않겠다. 그러나 중국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중국을 제국주의라 하지 않고 애써 준제국주의(sub-imperialist)라고 하는 것을 보건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갈등 문제에 대해 박노자가 적어도 진영 논리에 뒷문을 열어 주고 있다는 우려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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