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이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 이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합의해 줄 수 있다:
새정치연합을 믿지 말고 노동자 대중 투쟁을 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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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새누리당이 제출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새정치연합이 제출한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병합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법안이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국내에서 금지돼 있는 영리병원을 (일단) 해외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를 위해 각종 금융 세제 지원을 해 주는 법이다. 박근혜는 올해 하반기 내내 이 법을 ‘경제 활성화법’이라며 조속한 통과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런 조처가 장차 의료 민영화와 영리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그동안 국회 통과가 미뤄져 왔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법이 국내 의료체계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관이 해외에 영리병원을 세우고 환자를 국내로 유치하는 기업을 만들려면 국내 의료기관이 보유한 자산의 일부를 투자해야 한다. 이는 ‘병원에서 벌어들인 소득은 오로지 병원 운영을 위해서만 투자해야 한다’는 의료법상 ‘비영리’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병원 밖에 투자한 자본을 날리지 않고 일정한 수익을 얻으려면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의료기관에서도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해외에서 수익성이 검증된 각종 경영 기법이 국내에 도입될 것이고 장차 국내에서도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역차별’론이 제기될 것이다. 심지어 해외에서 손실을 입을 경우 국내에서 이를 메우려고 더욱 수익성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
“의료 기관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는 없다. 환자들에게 돈을 더 받던가 아니면 병원 노동자들을 쥐어짜던가. 수익성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정부가 의료를 책임져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심지어, 애초 발의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는 ‘국내 보험사의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 ‘원격 진료 허용’, ‘해외 진출 병원에 대한 금융 세제 지원’, ‘각종 의료 광고 규제 완화’ 등 국내 의료 체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이 명백한 ‘독소조항’들이 포함돼 있었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우려 한 ‘녹지그룹’의 사례처럼 해외로 진출한 의료기관이 다시 국내 영리병원 설립에 뛰어드는 편법도 허용할 여지가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등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의료 민영화 영리화 법이라고 비판하며 법률 제정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처음에는 이런 비판에 동의하는 것처럼 말하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더니 대안 법률안을 제출하고는 새누리당의 법안과 병합해 국회를 통과시켰다.
독소 조항이 아니라 독소 법안
새정치연합이 발의한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새누리당안에 비해 노골적인 의료 영리화 허용 조처가 포함돼 있지는 않았지만 의료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법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법률안과 새누리당의 법률안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독소조항’을 제거했으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부 독소 조항만이 문제가 아니라 법안 자체가 독소 법안이다.”(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새정치연합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영리 병원 설치의 교두보를 만들어 줄 수 있고, 이런 의료 영리화 조처에 재정(세금)을 쏟아붓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못 들은 체했다. 의료 민영화를 가로막을 몇가지 조항(우회 투자 금지 등)을 추가했다지만 박근혜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시행령, 시행규칙 등 편법을 통해 이를 무력화하려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법안 통과를 허용함으로써 박근혜에게 의료 영리화의 디딤돌을 하나 더 놓아줬다.
사실 새정치연합이 이를 모르고 통과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과시키는 데 협조한 까닭은 애당초 새정치연합이 의료 민영화·영리화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 민영화를 가속할 한미FTA를 추진한 것도 새정치연합 집권 시절에 시작된 일이다. (비록 비주류일지라도) 자본가 계급 일부에게 기반을 둔 당으로서 의료 ‘산업’ 활성화에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병원 영리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일부 ‘전문병원’들이 크게 성장한 것도 이 당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최근 이 병원들은 수익난을 겪고 있는데 이들의 숨통을 열어주려면 일정 수준의 영리화 조처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법하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의료민영화 문제를 ‘남양유업법’ 등 포퓰리즘적인 법안 통과와 맞바꿔치기한 것이다.
뒤통수
이 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정치연합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특히 12월 초로 예정하고 있던 파업을 뒤로 미룬 것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새정치연합에도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요 리더가 ‘독소조항을 빼고 껍데기만 통과시키겠다’는 새정치연합의 야합 시도에 단호하게 맞서지 않고 후퇴의 여지를 남긴 것도 문제였다. 한편에서는 ‘독소조항만이 문제가 아니라 독소법안’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새누리당이 독소 조항을 모두 제거할 리 없다’ 하며 일부 조항을 수정하면 별 문제 없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막아냈다’고 후퇴를 정당화할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여야 합의 직후 민주노총은 새정치민주연합에 “합의문 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새정연은 이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항의방문조차 가로막았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야합에 이어 더 강력한 의료 민영화법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보건의료’를 제외하는 조건으로 통과시키려 한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다른 문제점들은 차치하더라도 보건의료를 제외한다는 문구는 공문구가 되기 쉽다. 민간의료보험은 의료 서비스인가 금융 서비스인가, 의료관광은 의료 서비스인가 관광 서비스인가, 원격 의료는 의료 서비스인가 통신 서비스인가 등 모호한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뿐 아니라 교육, 통신, 금융, 물류 등 광범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데 악용될 수 있는 악법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보건의료’ 분야가 주된 타깃임을 숨기지 않아 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이 모든 분야에 대한 결정권을 기재부에 집중시킴으로서 재정 절감과 민영화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법이다. 따라서 어떤 조건을 달든 이 법안 통과를 허용해선 안 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 일부 개혁 법안과 거래하거나 최악은 막자며 일부 조항 삭제 등으로 대응해서도 안 된다.
민주노총은 새정치연합과 국회 일정에 끌려다니다 또 뒤통수를 맞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