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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총선 결과:
주류 양당 정치가 붕괴하고 좌파가 승리를 거두다

12월 20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그간 긴축을 추진해 온 우파 여당 국민당(PP)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제1야당 사회당(PSOE)에 대한 지지가 전례 없이 추락했다. 두 당은 프랑코 군부 독재가 종식된 1977년 이후 40년 가까이 스페인 주류 정치를 지배해 왔다.

국민당은 수십 년을 통틀어 가장 적은 약 28퍼센트(약 7백20만 표)의 지지로 1백23석을 획득했는데, 이는 지난 2011년 총선에 비해 4백만 표(약 16퍼센트포인트, 의석 63석) 가까이를 잃은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적은 13퍼센트(약 3백50만 표)의 지지를 얻어 4위를 한(40석 획득) 신생 우파 정당 시우다다노스(‘시민’이라는 뜻)와 연정해도 국민당은 내각을 구성할 수 없게 됐다.

사회당은 22퍼센트(약 5백50만 표)의 지지로 90석을 얻었는데, 이는 사회당이 선거에 출마한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2008년에 1천1백만여 표를 얻고 집권했을 때에 비하면 반토막 난 수준이고, 2011년에 비해도 약 1백50만 표가 줄어든 것이다.

국민당과 사회당 두 당의 지지율 합이 70퍼센트 이하로 내려간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창당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신생 좌파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는 2위인 사회당과 1퍼센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 21퍼센트(약 5백 20만 표)의 지지로 69석을 획득했다.

"빵, 일자리, 집을 모두에게" 2013년 3월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존엄을 위한 행진"에 2백만 명이 참가했다. 이런 대중 운동이 정치적 급진화의 배경이 됐다. ⓒ사진 출처 contrafoto21

포데모스는 노동계급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특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포데모스가 주도한 선거연합이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에서 1위를 했고, 포데모스가 단독 출마한 수도 마드리드 시를 비롯해 국민당 강세 지역인 발렌시아, 갈리시아, 나바라 주, 발레아레스 제도에서도 2위를 했다.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온건 좌파 선거연합 카탈루냐공화좌파(ERC)와 민주주의와자유(DiL)도 도합 1백20만 표 가까이 득표해 17석을 얻었다. 도시 지역에 불리한 스페인 비례대표제의 특성 때문에 의석은 2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IU)도 90만 표 이상 득표했다. 이들의 득표와 포데모스의 득표를 모두 합치면 국민당이 얻은 표보다도 많아, 좌파들이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뒀음이 분명해진다.

긴축과 반긴축

이런 결과의 배경에는 경제 위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신흥공업국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리던 스페인 경제가 2008년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거의 4년 동안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공식 통계로 27퍼센트까지 올라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에서 둘째로 높았으며, 청년실업률은 51.5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사회당과 국민당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GDP 성장률이 1퍼센트대로 회복됐지만, 이는 두 당이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해고 규제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고, 복지를 삭감하는 고강도 긴축 정책을 펼친 결과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세 차례의 하루 총파업과, 반부패·반긴축 대규모 거리 항의 운동(‘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벌어졌다.

불안정이 심해지면서 주류 양당은 신생 정당들의 도전을 받았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 힘입어 등장한 포데모스는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1백만 표를 넘게 득표하며 왼쪽에서 도전했고, 스페인 국가주의를 내세운 시우다다노스는 반부패 슬로건을 내걸고 오른쪽에서 도전했다. 주류 양당과 스페인 왕실의 계속되는 부패 추문 때문에 반부패 정서가 확산된 것도 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줬다.

한편,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카탈루냐 독립 쟁점도 수면 위로 떠오르며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스페인 전체 인구의 16퍼센트가 거주하는 카탈루냐 지방은, 민족적·문화적으로는 차별받아 왔지만 경제적으로는 스페인 GDP의 20퍼센트 이상을 담당하는 지방이다.

카탈루냐 독립 지지 세력은 대중적 거리 항의 시위를 벌이고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독립 지지 여론을 키워 나갔다. 카탈루냐 독립에 우려를 느낀 국민당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지방정부 사이에 긴장이 심화됐다.

이 긴장 때문에 독립 지지 여부를 묻는 카탈루냐 지방 주민투표는 2014년 11월에 비공식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전체 주민의 40퍼센트 가까이 참여한 이 투표에서 독립 지지가 80퍼센트에 이르렀다. 한편 2015년 11월 카탈루냐 지방의회에서는 ‘2017년까지 독립’ 결의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포데모스

포데모스는 개혁의 염원을 정치적 대안으로 표출하고자 했던 (주로 사회당 지지층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며 성장했다.

명성이 드높은 청년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이끄는 포데모스는 국가부채 탕감, 은행 재국유화, 기본소득 제공, 연금 삭감 없는 정년 단축 등 여러 급진적 공약을 내세우며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2014년 11월 여론조사에서는 28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비롯한 ‘지역 서클’ 운동과 좌파 단체들이 포데모스에 참여했다.

스페인에서 오랜 양당 구도를 깨뜨리며 성장한 포데모스. ⓒ사진 출처 Adolfo Lujan(플리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포데모스와 여러 좌파들은,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한 스페인 5대 도시 중 4개 도시에서 지방정부에 입성하고 전국적으로 지방의회 의원을 1백33명 배출하는 등 중요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카탈루냐에서는 급진적 반자본주의 선거연합 민중연합(CUP)이 9월 지방선거에서 10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전 몇 달간 포데모스의 행보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좌우 대립은 구시대적 기준이고 “카스트(정치 엘리트) 대 민중” 사이의 대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포퓰리즘 정치에 따라 포데모스 지도부는 오른쪽 지지층을 늘려 “판의 중심을 장악”(이글레시아스)하려 했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애초에 내걸었던 급진적 경제 공약을 대거 수정·삭감하고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공약을 도입했다. 스페인 국가주의 지지자를 포용하기 위해 리비아 공습을 지지한 육군 장성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당 내에서 좌파들이 이런 우경적 동요에 반대하는 의견을 펼까 봐 이를 어렵게 만들려고 매우 중앙집권적인 정당 구조를 도입했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심각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동요 때문에 포데모스는 반부패를 표방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시우다다노스의 도전에 취약함을 드러냈고, 한때 사회당을 뛰어넘었던 지지율이 추월당하기도 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당의 중요한 기반인 ‘지역 서클’ 운동과 사실상 분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데모스는 10월 이후 개혁을 염원하는 청중들 사이에서 지지율을 (지난해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반등시킬 수 있었다. 이는 첫째, 주34시간 노동제 도입, 공공부문 임금 대폭 인상 등 그간 주장하기 삼갔던 개혁 과제 중 일부를 다시 공약으로 부각한 덕이었다.

둘째, 카탈루냐·발렌시아·갈리시아 등 포데모스가 높은 성적을 거둔 몇몇 지방에서 포데모스는 다른 좌파 세력들과 함께 선거연합을 구성해서 출마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민중연합(CUP)이 총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좌파적 표가 포데모스로 몰린 것도 영향을 줬다.

셋째, 포데모스의 거리 유세는 진정한 변화에 대한 열망을 한껏 표현하는 거리 행진으로 진행됐는데, 이런 집회들은 개혁 염원 정서가 여전히 포데모스를 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불안정성

국민당이 제1당이 됐지만, 사회당을 비롯한 왼쪽 세력들이 국민당·시우다다노스 등 오른쪽 세력들보다 표를 더 많이 얻어 연정 구성에 난항이 예상된다.

포데모스는 선거 기간 내내 사회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개헌을 위해 (연정이 아닌) 조건부 협력을 할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연합은 카탈루냐 독립 쟁점을 두고 홍역을 치를 수 있다. 사회당은 강경한 스페인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반면, 포데모스는 전국 정당 중 유일하게 카탈루냐 독립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은 정당이다(그렇다고 독립 지지를 당론으로 정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 연합으로 정부를 운영하려면 카탈루냐 독립 지지 선거연합 세력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사회당의 스페인 국가주의 때문에 여기서도 긴장이 빚어질 수 있다.

스페인 헌법은 총선 후 새 정부 구성 시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모호한 상황은 한동안 유지될 수 있다. 일부 서방 언론들은 연정 구성에 완전히 실패해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게 되든 혹은 사회당 주도로 어찌어찌 연정이 구성되든 스페인 정치의 불안정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포데모스 등 좌파의 약진으로 표현된 변화 염원이 제도 정치 내에서 소모되지 않고 진정한 저항으로 발전하게 하려면, 급진좌파들은 포데모스의 선거 승리를 환영하면서도 독립적 정치에 기초해 운동을 전진시키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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