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위선적인 아동학대 예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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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아버지 등에게서 학대받던 어린이가 감금 2년 만에 탈출한 일이 있었다. 올해 초에는 부천에서 한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 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라 보도됐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르자 박근혜 정부는 아동학대 근절을 외치고 있다. 경찰은 기존의 신체적·정신적 학대뿐 아니라 미취학 아동을 장기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교육적 방임’까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극 검토해 아동학대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모두 철저히 조사돼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위선적이기 짝이 없다. 누리과정 논란에서 보듯 정부는 알량한 양육 지원조차 줄이고 있다. 심지어는 피해아동 지원책조차 거의 없다.
2014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예방 종합대책’에 몇 가지 피해자 보호책이 포함됐지만, 예산 부족 때문에 대부분 시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2016년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 사업 예산은 지난해의 2백52억 4천7백만 원보다 26.5퍼센트나 삭감돼 1백85억 6천2백만 원에 그쳤다.
아동복지법이 개정돼 모든 시· 군·구(2백26곳)에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치돼야 하지만, 예산 부족 때문에 올해는 고작 1개소 늘어나 57개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들이 이용자의 40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아동·청소년 쉼터·그룹홈은 2013~14년 4백89곳에서 도리어 4백76곳으로 줄었다. 아동·청소년 쉼터·그룹홈 예산은 올해 6억 1천4백만 원 줄었고, 그룹홈 1곳당 월 운영비는 2013년부터 24만 원으로 동결된 상태다.(〈한국일보〉 2016년 1월 19일치)
쉼터 보육사 1인당 연봉은 2천1백12만 원으로 다른 사회복지시설 수준인 3천9백51만 원에 크게 못 미쳐 이직이 잦다. 보육사의 평균 근무기간은 2년가량에 불과하다.
삭감
정부와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를 매우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이를 담당할 상담원 수는 매우 적다. 전국에서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51곳의 상담원 인력은 기관당 평균 7명 수준인 3백64명에 불과하다.(‘2014년 아동학대 현황보고서’)
2013년 이후 신고가 폭증하면서 상담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2014년 상담원 1인이 관리하는 피해 사례는 하루 평균 66.5건이었으며, 17개 시·도 가운데 관리 사례 수가 가장 많은 부산은 하루에 무려 1백17.5건에 달했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상담원들은 전문성이 쌓이기도 전에 일을 그만둔다. 상담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년 8개월에 그친다.(〈한겨레〉 2016년 1월 21일치)
박근혜 정부는 아동학대 예방은커녕 이미 발생한 피해자조차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부담을 늘리며 책임을 떠넘길 뿐이다.
아동학대는 왜 일어나는가?
은폐되기 쉬운 아동학대의 정확한 규모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아동들이 신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4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집계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 7천7백89건에 이르고, 이 중 학대가 확인된 것은 9천8백23건이었다. 18살 미만 아동 1천 명당 1명이 조금 넘는데, 신고되지 않은 경우를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학대를 받은 10명 가운데 4명이 매일 학대를 당했다. 아동학대 신고는 갈수록 증가해 2014년 신고 건수가 10년 전에 견줘 갑절 이상으로 증가했다.
아동학대가 많이 벌어지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한국보다 신고가 훨씬 많은 미국에서는 2010년에 아동 1천 명당 약 9.2명이 학대당했다고 공식 집계됐다.
아동학대의 근원
최근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는 가해자들의 정서 불안과 비정함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아동학대를 단지 심리적 장애가 있는 개인들의 문제로 이해할 수는 없다. 아동학대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동학대가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같은 계급사회는 착취에 바탕을 두고 차별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다. 불평등과 차별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제도들에 스며들어 있다.
어린 아동은 무력한 존재고, 아동은 위계적 구조에서 최하위에 있다. 아동에 대한 권위주의적 취급은 가족, 학교, 복지기관 등 모든 자본주의적 제도에서 두드러진다. 온갖 미사여구가 난무하지만, 지배자들은 아동 복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아동 복지 예산은 매우 적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 전반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외를 경험하며 종종 무기력감을 느낀다.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은 구조적인 것이지만, 지배자들은 실패를 한낱 개인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좌절한 사람들은 흔히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이런 상황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심각한 질병은 모두 불평등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고, 특히 폭력범죄와 소득 불평등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평등이 답이다》, 이후, 2012).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살인율이 높고, 미국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심한 주에서 살인이 더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분노를 종종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돌린다.
이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뿐 아니라 또래 집단 아이들 사이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아이들은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종종 가난한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에게 돌리며 폭력을 가하거나 집단따돌림 대상으로 삼는다.
아동학대와 가족
아동학대는 불평등한 계급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단지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특히 가족제도의 구실이 중요하다.
아동을 학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가족 구성원들이다. 한국의 통계에서는 가해자 대부분(82.1퍼센트)이 부모로 집계됐다.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아동학대는 주로 가족 성원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아동학대 가해자 중에는 부모가 많지만 형제자매, 조부모 등도 적잖이 있다.
물론 아동학대가 단지 가족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여러 아동 복지시설 등에서도 아동학대는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아동학대가 가장 흔히 발생하는 장소로 꼽히는 곳은 가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은 가족이고, 가족은 흔히 위계적으로 구성된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든,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상적 가족 상(이미지)을 장려한다. 남자가 가장 중요하고, 여자는 그 다음이고 아이는 최하위 취급을 받는다.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현재의 노동인구뿐 아니라 미래의 노동인구를 낳고 기르며 체제 유지에 필요한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가족이 험난한 세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돼야 한다고 말하며 부모와 남편과 아내의 책임 따위를 설교한다. 이를 통해 지배자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과 노력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고, 보수적 가치관을 노동계급에 심어 주고자 한다.
가족은 매우 모순된 제도이다. 사람들은 가족을 통해 위안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독한 불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냉혹한 이윤과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유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관계 밖에서 헌신적인 돌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이 사회의 성별 규범을 받아들이며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자 애쓰는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가족은 결코 바깥 세상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족 내에 영향을 끼쳐 가족관계에 긴장과 갈등이 조성되곤 한다. 만약 가족이 ‘험난한 세상의 안식처’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분풀이를 해댄다. 학대당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나 형제자매 등 자기 가족 성원들에게 학대받는 이유다.
아동학대는 빈곤과 관련이 있다. 빈곤은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는 주요 요인이다. 물론 아동학대 발생을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부모들 대다수는 자신들의 아이를 학대하지 않으며, 아동학대 발생에는 한 요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늘 돈에 쪼들리고 형편없는 주택에 복작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부모가 좌절을 겪으면 아이들에게 불만의 화살을 돌리기 쉽다. 부모의 나이가 어리고 그들 자신이 학대를 겪은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어릴 때 학대를 받으면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 또는 마약중독에 빠지기 쉽고, 일부는 성인이 돼서 자기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연구들이 많다.
아동학대를 없애려면 가해자 비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동학대의 사회적 요인들에 맞서야 한다. 처벌이나 신고 강화 같은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들이 제시하는 대책은 사후약방문일 뿐 결코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른 경제·사회 정책과 분리해 다뤄선 안 된다. 실업과 대규모 빈곤, 열악한 주택, 높은 양육 부담 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처벌에 주력하는 아동학대 대책은 아동학대의 근원을 감추고 지배자들이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해고, 임금과 복지예산 삭감 등은 대중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가며 많은 가정을 붕괴 위기에 빠뜨린다. 이런 지배자들의 경제·사회 정책들에 맞서 노동계급이 투쟁하는 것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은 비정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하면서 아동학대도 뿌리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