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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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 ‘아동학대와 자본주의’(영상보기)에서 이 글을 처음 발표했다.
아동학대의 정의에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까지 들어간다. 아동학대는 은폐되기 쉽기에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아동이 여러 형태의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동학대가 많이 벌어지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해 6월 중순 유엔(UN)·세계보건기구(WHO)·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국제기구가 보고서를 냈는데, 전 세계 아동의 절반인 약 10억 명이 학대로 장애와 사망 등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보고서는 2018∼2019년 155개국 정책 전문가 1천명가량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기초해 작성됐다). 2017년에만 4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학대로 사망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아동의 처지가 가장 열악한 곳은 빈곤층 인구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런 나라에서 극심한 폭력과 학대를 겪는 아동이 많지만, 미국과 유럽 등의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아동학대가 많이 일어난다.
아동학대의 근원
주류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는 가해자들의 잔인함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지만, 아동학대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들의 심리나 의식의 문제로 축소할 수는 없다. 아동학대가 세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동학대가 자본주의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소수의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노동을 착취하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에는 엄청난 빈부격차가 있고 이윤이 우선되는 사회이다. 경찰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부유한 권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무시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이유다.
착취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 전반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외를 경험한다. 인간의 본성인 노동은 시장의 힘에 따라 사고팔리고 시장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이런 과정은 인간의 삶과 경험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경쟁이 부추겨지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얄팍해지고 사람들의 공감 능력은 크게 떨어지기 쉽다.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은 구조적이지만, 지배자들은 실패를 한낱 개인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좌절한 사람들은 흔히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이것은 종종 폭력으로 나타난다.
서구 학자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이 불평등의 영향을 다룬 책을 2010년에 발표했다[2012년 《평등이 답이다》(이후)로 번역돼 나왔다]. 그들은 국가별 비교 연구를 위해 소득 불평등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를 보면, 불안 장애, 충동 조절 장애, 심각한 질병이 모두 불평등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폭력 범죄와 소득 불평등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살인율이 높고, 미국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심한 주에서 살인이 더 자주 발생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고 아동의 피해가 커진다. 나라별 아동학대 정의가 달라서 국가별 비교 연구는 어렵지만, 아동학대 사망률을 중심으로 비교 연구한 것을 보면, 경제적 불평등과 아동학대의 긴밀한 관계가 나타난다.
OECD 국가의 아동학대 사망률을 분석한 연구[1]를 보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고 아동 빈곤율이 높은 나라들일수록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다. 2000년대 중엽 ‘고의적 아동사망률’(학대로 인한 사망과 살해)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2005년)과 멕시코(2007년)이다. 한국(2006년)은 29개국 중 3위를 차지했다.
가족제도의 구실
아동학대는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고, 특히 가족제도가 체제에서 하는 구실이 아동학대를 낳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아동을 학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부모이다. 한국의 통계(2019년)에서 가해자 대부분(75.6퍼센트)은 부모이다.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아동학대 가해자 중에는 부모가 많지만 형제자매, 조부모, 친척도 적잖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은 가족이고, 양육은 개별 가정에 내맡겨져 있다. 그리고 가족은 흔히 위계적으로 구성된다. 남자가 가장 중요하고, 여자는 그 다음이고 아이는 최하위 취급을 받는다.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현재의 노동인구뿐 아니라 미래의 노동인구를 낳고 기르며 체제 유지에 필요한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가족이 험난한 세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돼야 한다고 말하며 부모와 남편과 아내의 책임 따위를 설교한다. 이를 통해 지배자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과 노력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고, 보수적 가치관을 노동계급에 심어 주고자 한다.
가족은 매우 모순적인 제도이다. 사람들은 가족을 통해 위안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독한 불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든,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상적 가족 상(이미지)을 장려한다.
그러나 대다수 가족은 그런 이상대로 살 수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의 삶은 계급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부유한 가정과 노동계급 가족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다.
냉혹한 이윤과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유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관계 밖에서 헌신적인 돌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이 사회의 성별 규범을 받아들이며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자 애쓰는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의 이상에 집착하는 것은 가족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겪는 착취와 소외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냉혹한 현실은 흔히 그런 기대를 깨뜨린다. 가족은 결코 바깥 세상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족 내에 영향을 끼쳐 가족관계에 긴장과 갈등이 조성되곤 한다.
만약 가족이 ‘험난한 세상의 안식처’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분풀이를 해댄다. 학대당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나 다른 양육자에게서 학대당하는 이유다.
신체적 학대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은 드물게 일어난다. 아동학대 신고가 한국보다 높은 나라들의 통계를 보면, 가장 흔한 형태가 방임이다.
아동학대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빈곤이다. 빈곤은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요 요인이다. 늘 돈에 쪼들리고 형편없는 주택에 복작거리며 사는 사람들은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멸시받고 좌절을 겪으면 일부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한다.
부모 자신이 어릴 때 아동학대를 겪으면, 커서 자신의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릴 때 학대를 받으면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또는 마약 중독에 빠지기 쉽고, 일부는 성인이 돼서 자기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연구가 많다.
아동학대가 주로 가정에서 일어나지만, 아동학대는 어린이집·유치원·아동 복지시설·교회 등지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불평등과 차별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제도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복지기관 등 자본주의에서 아동을 돌보는 기관은 모두 관료적으로 운영되고, 아동은 대개 통제의 대상이 된다.
진정한 해결책
아동학대를 줄이려면 가해자 처벌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대책이 가장 필요하다. 처벌이나 신고 강화 같은 조처는 사후약방문일 뿐 결코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앞서 봤듯이, 아동학대 처벌 수위가 높은 미국은 고의적 아동사망률이 2005년 OECD 1위다. 인구 10만 명당 2명 이상이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미국은 온갖 폭력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처벌 강화가 아동학대를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지배계급은 ‘아동학대 근절’을 외치지만 그럴 수 없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요란한 말잔치를 할 뿐 아동 복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정부의 아동학대 대책은 다른 경제·사회 정책과 분리돼서 다뤄진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서민층 아동의 삶은 자본주의 경제 상황과 더 폭넓은 국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실업과 빈곤, 열악한 주택, 높은 양육 부담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지만, 지배자들은 이런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다.
지배자들은 아동학대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많은 아동의 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지배자들은 불황이 깊어지자 노동계급에게 개혁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기업들에게는 막대한 돈을 퍼 주면서 노동계급과 서민층을 위한 지원에는 인색하다. 지배자들은 개혁을 제공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고, 복지를 줄이려 들고 있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 착취를 강화하며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 등 각종 차별도 계속 부추긴다.
해고, 임금과 복지예산 삭감 등은 대중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가며 많은 가정을 붕괴 위기에 빠뜨린다. 노동계급과 서민층 아동의 처지를 개선하려면 노동계급이 일자리, 임금 인상, 복지 확충 등을 위해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게 중요하다. 여성·성소수자·이주민 등 차별에 맞선 투쟁도 중요하다. 집단적 투쟁은 대중이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고 자신감과 의식을 높이는 길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서 아동학대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심화돼 혁명으로 발전한다면 자본주의를 제거하고 대중의 필요가 중심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양육이 개별 가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 되고 노동계급이 사회 전반을 통제할 때 아동학대도 뿌리 뽑을 수 있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삶을 악화시키는 지배자들의 공격에 맞서면서 아동학대의 근원인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1] 김선숙·유민상 2012, “OECD 국가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아동학대 발생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아동과 권리》 제16권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