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구의역 사고 후속 대책 발표:
진전은 있으나 인력 충원과 제대로 된 정규직화 등 핵심 대책은 여전히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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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들어오는 열차에 치어 사망한 이후, 그간 공공부문에서 경영효율화를 우선시 하며 추진해 왔던 민영화와 외주화, 인력 감축에 대한 비판과 정책 전환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과 규제 완환 중심의 정부 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수익성과 비용편익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경영평가지표와 인건비 통제 정책 등은 공공부문에 민간위탁이나 외주용역, 비정규직 확대를 부추겨 왔다. 단적인 예로, ‘지방공기업 예산편성기준’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배치되는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비핵심 업무 아웃소싱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구의역 사고 이후 이러한 독소조항의 삭제 및 경영평가지표 개선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되려 정부는 철도와 전력, 가스 민영화 추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국토교통부는 안전사고 시 기관사 개인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철도안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것은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6월 16일에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와 전동차 정비 등 지하철 안전업무 7개 분야의 직영화 발표[‘제대로 된 정규직화와 인력 충원이 돼야 한다’ 기사를 참조하시오]에 이어, 6월 30일에는 구의역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대책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가격은 높지만 스크린도어 센서를 외부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고 유지·보수에 용이한 레이저센서로 교체, 전 역사의 스크린도어 고정문을 (선로에서 열고 나올 수 있는)비상문으로 교체, 서울의료원 지역응급의료센터 의료구급차 등 위험업무 직영화 추진(3개) 등이다.
그리고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고용 및 처우 개선도 함께 발표했다. 민간위탁(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승계 의무화와 상시·지속업무 무기계약직 전환, 생활임금 적용 확대, 외주업체 소속의 청소·시설관리 등 단순 노무용역에 대해 시중노임단가 적용 등이다. 이 밖에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승진제도·복리후생 확대·휴게공간 개선·호봉제 등도 적극 도입하겠다고 한다.
중앙정부가 공공안전 강화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중앙정부는 현재까지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책 하나 내놓은 게 없다)에서, 서울시의 대책은 분명 비교가 된다. 물론,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3번의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 사망사고와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사고 등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제대로 된 안전대책이 나왔으면 좋았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서울시 대책에서 부족한 부분이 없진 않다. 무엇보다 인력 확충 계획이 여전히 미진하며, 직접고용 방식도 온전한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전환(안전업무직 신설)에 그치고 있다.
인력 충원 및 온전한 정규직화
지하철 노동자들은 줄기차게 현장 인력 충원을 요구해 왔다. 공공운수노조가 성명에서 지적했듯, “아무리 정규직이라도 일할 사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안전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이 7월 1일에 성수역, 강남역, 구의역에서 진행한 현장조사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현장 인터뷰에서 근무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 발생 시 대처에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주요한 고충으로 털어놨다.
그리고 서울시가 말하는 정규직화 대책이 무기계약직에 머물러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렇게 “별도의 직군을 두게 되면 또 다른 차별을 낳게 되고, 이는 내부적 갈등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유성권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직지부장) 구의역 사고에서 확인했듯, 안전 업무들은 다른 노동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데 별도 직군으로 두면 내부의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협업에 지장을 초래한다.
그리고 서울시가 말한 처우 개선 대책과 관련, 실제 적용될 구체적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어서 얼마만큼의 처우 개선이 되는 지 두고 봐야 한다. 다만, 서울시가 내놓은 처우 개선 대책 중 다음의 사항들은 최소한의 과제로 꼭 지켜져야 할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전환 시 처우 하락이 없어야 하고, 민간위탁까지 생활임금 적용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시중노임단가 적용도 서울시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로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서울시의 생활임금이 총액기준으로 최저임금의 130퍼센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인상도 필요하다.
한편, 최근 서울메트로 이사회는 신설되는 안전업무직의 인력 산정과 채용 원칙을 결정했는데 기존 외주업체 직원 수보다 적은 인력을 정원으로 책정하고, 고용 승계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등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경정비 외주업무를 담당해 왔던 프로종합관리에서 현재 1백4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 업무 직영화 기준을 1백22명으로 축소했다. 근거는 어이없게도 2008년 외주화 당시 정원이 1백22명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8년간 전동차 노후화로 20년 이상의 연령을 넘긴 전동차가 50퍼센트를 넘는 상황에서, 검사와 정비업무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함에도 오히려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전동차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모터카 및 철도장비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중 많은 노동자들이 모터카 면허증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조건에서 이미 탈락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은 지금껏 수년간 모터카 면허가 없음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업무를 수행해왔고 그 업무에 숙련된 노동자들이다. 자격이 필요하다면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주어 고용과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메피아’ 논란은 책임 회피
그리고 외주화 과정의 또 다른 피해자인 전적한 노동자들을 ‘메피아’라고 비난하며 직영전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인 김기덕 변호사의 지적처럼, “메피아가 서울메트로의 권력을 쥐고서 약한 을들에게 갑질을 하는 자라고 한다면, 전적자들을 메피아라 할 수 없다. 서울메트로에서 사용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과 서울메트로의 명령에 따라 은성PSD 등 외주업체에서 사용자로서 소속 노동자들을 부리는 자들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용자가 아닌 근로자에 지나지 않은 전적자들을 메피아라 부르며 배제하고자 하는 직영 전환이라면, 그것은 아직은 외주화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메트로에서 전적한 대다수 노동자를 속죄양 삼을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광범한 외주화를 금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시민대책위는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한 인력 충원과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안전 예산 확충 등의 요구를 담은 ‘구의역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이 서명은 8월 초 진상조사단의 1차 보고를 앞두고 서울시에 전달할 계획이다. 6월 28일부터 7월 26일까지 매주 1회 서울시 주요 10개 역사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데, 서명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다. 일부 역에서는 1시간 30분만에 4백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시민대책위가 제시하는 지하철 안전 강화를 위한 요구사항들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서명은 온라인에서도 할 수 있다.[온라인 서명 바로가기])
이는 지금까지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들이 지하철 안전 강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가 정부에게 부당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제도가 바뀔 때까지 계속 협의만하고 있어선 안 된다. 구의역 사고에서 보듯, 안전사고는 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는 당장은 약간의 불이익과 정부 통제에 맞서며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과 인력 충원을 해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열강 간 각축 심화로 인해, 개혁주의 정치인인 박원순 시장의 운신의 폭이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서울시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도록 강제할 아래로부터의 힘이 필요하다. 이는 지하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및 연대 세력들이 박원순 시장과는 독립적인 태도로 투쟁과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