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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는 분석과 전략을 제시하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국제적으로 부흥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서구에서는 성차별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성장해 왔고, 페미니즘 출판물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올해 그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주디스 오어 지음, 이장원 옮김, 책갈피, 440쪽, 16,000원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영국에서 출판된 주디스 오어의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이 한국에 비교적 빠르게 번역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주디스 오어는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중앙위원으로, 여성 차별의 현실을 분석하며 차별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데 앞장서 왔다. 올해 한국의 맑시즘에 연사로 초청된 오어는 맑시즘에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의 청중과 토론할 것이다.

오어는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유행한 ‘포스트페미니즘’ 담론, 즉 여성은 이미 평등을 성취했고 성차별은 과거지사가 됐다는 주장을 거부하며 시작한다. 오어는 여전히 만연한 여성 차별의 현실을 들어 ‘포스트페미니즘’ 주장이 대다수 여성들의 삶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드러낸다.

오어는 생동감 있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 역자도 오어의 글을 한국어 독자가 읽기 쉽게 번역을 잘 했다 ─ 여성들이 겪는 실질적인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드러내지만, 단지 이런 고통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는 않는다. 이 책은 왜 여성이 여전히 불평등과 억압에 직면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밝히고, 차별에 맞서 어떻게 싸울 수 있는지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다.

이 책은 오늘날 페미니즘이 새롭게 부흥하는 배경을 살펴보면서 최근의 논쟁에서 제기되는 이론적 쟁점들도 다룬다. 오어는 여성해방운동이 쇠퇴한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이론적 발전을 살펴보면서 ‘제3물결 페미니즘’에서 많이 논의되는 교차성 이론과 특권 이론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여성 억압의 원인

오늘날 페미니즘에서는 여성 억압을 단지 억압받는 개인이나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으로 묘사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오어는 억압의 원인과 기능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사회를 전체적으로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들 간의 억압적 관계는 억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억압의 원인은 아니다.

오어는 페미니즘에서 많이 제기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도전을 다루며 마르크스주의를 경제 또는 계급 환원론으로 보는 것이 왜 잘못인지 설명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억압을 경제로 환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주의는 억압이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억압의 전반적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억압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다른 계급의 여성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억압이 사회의 계급관계와 무관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여성 억압은 인간 본성의 산물이 아니라 계급사회의 산물이다. 오어는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펼친 이 주장을 최신 인류학과 고고학의 연구 성과를 풍부하게 이용해 다시 입증한다.

오어는 또한 자본주의에서 여성 억압이 지속되는 이유도 설명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적 토대는 착취이고, 억압은 자본주의적 축적을 추동하는 핵심 과정의 일부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억압은 자본주의적 착취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고 억압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착취를 용이하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계급사회에서 여성 억압을 형성하는 핵심 제도는 가족이고, 가족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언제나 그들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형성됐다. 오어는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가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통해서 자본축적이라는 목표에 기여한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 준다.

성적 자유를 둘러싼 논쟁

1970년대에 성 해방을 위한 투쟁은 여성해방운동의 핵심적 일부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상품화한다. 1970년대 이후 성 상품화가 더욱 발전하면서 성 해방의 의미가 협소해지고 왜곡됐다. 성적 자유와 해방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페미니즘 내에서 커다란 이견이 있고 때때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다.

오어는 오늘날 페미니즘에서 가장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섹슈얼리티 쟁점을 한 장을 할애해 다룬다. 포르노를 둘러싼 논쟁의 지형은 1970년대와는 상당히 달라졌는데, 오어는 포르노를 성 해방으로 간주하는 페미니즘 조류를 비판하는 한편, 국가의 힘을 빌어 포르노에 맞서려는 시도도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도 다룬다.

여성들은 이집트 혁명에서도 중요한 일부였다. 여성과 남성이 투쟁 속에서 단결할 때 의식의 변화가 광범하게 벌어질 수 있다. ⓒ사진 출처 Moud Barthez(플리커)

1970년대 이후 성 상품화가 더욱 발전하면서 여성 신체의 대상화가 더 많이 일어나자 성적 자유가 단지 남성의 자유만 증대시켰고 여성들에게는 해만 끼쳤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나왔다. 여성을 단지 남성의 희생자로만 간주하는 이런 견해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는 시각을 강화하기 쉬운데, 오어는 성적 자유가 여성에게도 중요함을 밝히며 자본주의가 변혁될 때 성 해방의 가능성이 활짝 열릴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성해방의 전략

여성 억압의 원인에 관한 이론적 분석은 여성해방을 위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실천적 문제와 연결된다. 오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벌어진 ‘제1물결 여성운동’과 1960년대 말 부흥한 ‘제2물결 여성운동’ 시기에 벌어진 치열한 논쟁과 최근의 쟁점을 소개하며 여성해방을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제시한다.

오늘날 여성 차별 이론들은 대개 노동계급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는데, 오어는 여성해방에서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계급을 그저 여러 차별 중 하나로 여기는 시각이 많지만, 계급은 단지 또 하나의 차별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계급을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의 척도로만 보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집단적 힘의 원천으로 이해한다.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여성이 노동계급의 핵심적 일부라는 점이 종종 간과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전 세계 노동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도 40퍼센트이고, 성인 여성의 적어도 55퍼센트가 임금노동에 종사한다(세계은행 조사). 한국에서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이중의 부담을 안겨 주지만, 오어는 여성이 노동계급의 일부가 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무덤을 팔 수 있는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어는 계급이 어떻게 집단적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자본주의 착취 과정에서 생겨나는 노동계급의 객관적 이해관계와 힘을 설명하고, 투쟁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단결하고 의식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성취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혁명적 변화가 해방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오어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36년 스페인 혁명을 통해 설명한다. 또한 자신이 일부 목격하기도 한 2011년 이집트 혁명의 경험을 예로 들어 혁명 과정에서 대중의 자신감 상승과 의식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

오어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여성들이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은 여성들이 쟁취한 모든 성과가 지배계급이 결코 기꺼이 내 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우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모든 개선책을 위해 날마다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어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 내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개혁주의 전략의 한계와 위험성도 경고한다. 1980년대에 많은 페미니스트가 노동당에 들어가서 노동당이 여성의 권리를 다루게 하려고 투쟁했지만, 노동당 지도부는 정치적 한계를 거듭 드러냈다. 노동당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며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했다.

국가나 지배계급의 권력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여성의 평등을 달성하려는 전략은 결국 평범한 남성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득을 얻으려는 방식으로 빠질 수 있다. 1980년대에 영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탄광, 항만, 인쇄업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을 페미니즘의 성과로 묘사했다. 그 이유는 이런 직종에 주로 남성이 종사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은 오늘날 광범한 여성 차별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분석과 역사적 교훈을 제공한다. 현대 여성들의 조건을 분석하고 여성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며, 운동 내에서 제기된 논쟁점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다룬 오어의 책은 한국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사상을 분석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 책은 새롭게 급진화하는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여성 억압 이론과 투쟁 전략을 이해하고 차별에 맞선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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