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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장점이 돋보이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김민재·이지완·황정규 지음, 해방, 220쪽, 15000원

오랜만에 추천할 만한 여성해방 책이 나왔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재부흥 속에서 여성 차별을 다룬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책이 다수였다. 최근 출판된 책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의 글은 대부분 《사회주의자》라는 잡지에 실린 글들을 다듬은 것이다. 저자 김민재와 이지완은 이 잡지의 기자이고, 황정규는 편집국장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차별을 분석하며 사회주의를 통한 여성해방의 전망을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여성 차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오해가 많고 이러저러한 페미니즘이 각광받는 시대에 당당하게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면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제시한 책이 나온 것은 무척 반갑다.

1부에 저자들의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담겨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해방과 동의어가 아니라며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제시한다. 1960년대 말~1970년대의 서구 여성해방운동에서 등장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흔히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절충했는데, 저자들은 이런 절충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따라 여성 억압이 초역사적 현상이 아니라 계급 사회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고 밝힌다. 김민재는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 억압의 기원을 계급사회의 등장과 관련시킨 것을 옹호하며 이를 현대의 연구 결과로 뒷받침한 엘리너 버크 리콕과 크리스 하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 여성 억압의 기원 문제를 무시하는데(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도 흔히 그런다), 이 논의는 여성해방의 전망과 연결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이 여성 억압의 기원을 중요하게 다룬 게 올바른 이유다. 김민재는 이 논의가 “여성억압이 어디까지나 사회적·역사적 산물임을 인식하기 위해서” 중요하고, “여성억압의 문제는 생산력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화 속에서, 계급 문제와 함께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74쪽).

3.8 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글도 있다. 1917년 2월 혁명 때 여성 노동자와 사회주의자의 기여 등을 다룬다. 여성의 날에 대한 주류적 서술이 미국 사회당,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을 축소한 것을 비판하는데, 이것은 여성운동이 애초부터 하나가 아니었고 그 운동 안에 대립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여성 억압이 계급사회 등장과 동시에 일어났고 계급 억압과 여성 억압이 상호작용하며 서로 강화했다고 본다. 자본주의에서 여성 억압이 지속되거나 강화되는 한편, 여성해방의 물질적 기초가 마련됐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억압하는 동시에 생산력을 발전시켜 여성이 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35쪽) 저자는 이 두 가지를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쓴다.

이런 변증법적인 접근법은 옳다.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진 여성 해방의 잠재력과 이의 온전한 실현을 가로막는 체제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함께 봐야 한다.

다만,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이유를 설명할 때 가족제도의 구실을 조명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 같은 성별 규범은 가족제도에 물질적 기초를 두고 있기에 여성 차별을 이해할 때 가족제도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하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이해하는 게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지배계급의 가족은 부와 특권을 물려주는 수단이지만, 노동계급의 가족은 자본주의 체제에 필요한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핵심적인 구실이다. 개별 가족에서 주로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특히 양육)을 맡는다는 사실이 노동계급 여성이 겪는 소외와 차별의 기초가 된다.

지배계급에게 가족제도는 노동력을 저렴하게 재생산할 수 있고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고 통제하기 쉽다는 데서 유용하다. 산업화 초기와 달리,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국가 개입이 크게 늘어났고 그 일부로서 가족에 대한 정치적 논쟁도 많이 일어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이런 쟁점을 다루는 글이 앞으로 늘어나기를 바란다.

한편,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계급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을 대거 사회적 생산에 참가시키지만 여성을 열등한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이 이윤이고 노동자들이 생산을 통제할 수 없기에 여성 노동자가 여러 차별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올바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됐다는 지적이 몇 차례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는 여성 고용에 대한 오해를 낳기 쉬운 과도한 일반화로 보인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남성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것은 맞지만, 여성들이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서만 일하지는 않는다. 자본가들이 여성보다 남성을 고용하기를 더 선호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상이한 계급들과 사회 집단이 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여성 고용의 양상은 단순하지 않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의 필요에 따른 여성의 임금노동 참가 증대, 교육 기회의 확대, 노둥운동과 여성운동의 압력 등으로 일터의 성별 분업과 가족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페미니즘이 흔히 간과하는 여성들 간의 차이와 노동계급 여성들의 전반적 생활 조건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앞으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더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다.

페미니즘에 대한 도전

이 책이 역사유물론의 관점을 따른다는 점은 페미니즘의 개념과 분석에 도전하는 2부와 3부의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2부에서 가부장제, 정체성 정치,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같은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3부에서는 《페미니즘의 도전》,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등 유명한 페미니즘 책을 비판적으로 서평한 글을 실었다.

“가부장제 개념,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글은 1970년대 미국에서 부상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 나온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하는 글이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 ‘가부장제’ 개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특정 가족구조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는데, 이와 달리 페미니즘에서 사용하는 ‘가부장제’ 개념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 왔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저자 김민재는 이런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여성 억압의 기원과 물적 토대를 옳게 규명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 억압에 초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여성억압을 생산의 문제와 분리된 독자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이 가부장제 이론의 한계이고, 가부장제 개념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계급투쟁과 분리시키고, 다른 계급에 속한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단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나아가”(102쪽)게 한다고 비판한다.

김민재는 미셸 바렛 등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19세기 영국 등지에서 등장한 가족임금제를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가 공모한 결과로 설명하는 것도 반박한다.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글도 있다. “정체성 정치, 왜 비판받는가”라는 글에서 저자 이지완은 ‘정체성 정치’를 “성별, 종교, 인종 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나뉜 집단이 각 집단의 권리를 요구하는 데 주력하는 정치”(118쪽)로 정의 내리고, 그 핵심을 ‘비슷한 억압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끼리 연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라 규정한다. 그 결과, 정체성 정치가 “계급 문제를 생략·은폐”(124쪽)하고, 1970년대 “민권운동 시기의 급진성을 잃고 체제순응적 운동으로 귀결되었다”(122쪽)고 비판하며 사회주의를 정체성 정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지완은 다른 글에서 상호교차성 개념의 한계도 지적한다. 여성, 성소수자 등이 각자 자기 정체성에 근거해서 자기가 받는 억압에 맞서 싸우면 된다는 ‘정체성 정치’에 비교하면 상호교차성 개념이 진일보한 인식이지만, 여러 억압들을 기계적으로 결합시킬 뿐 여러 억압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제공하진 못했다고 옳게 지적한다. 또 계급을 경시한다는 실천적 한계 때문에 지배계급의 수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샌더스의 문제제기를 회피하기 위해 상호교차성 용어를 사용했음을 꼬집는다.

3부에는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저), 《캘리번와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저)에 대한 비판적 서평 네 편이 실렸다. 앞의 두 책은 베스트셀러로 한국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책이고, 뒤의 두 책은 좌파이거나 좌파 출신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편이다(페데리치의 글은 《워커스》, 〈참세상〉 등에 번역돼 실리기도 했다).

자율주의 경향의 페미니스트들이 쓴 뒤의 두 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글이 흥미롭다. 김민재가 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서평은 미즈가 자본주의의 핵심을 착취가 아니라 ‘약탈’로 보고, 자급자족 경제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 과거회귀적이고 공상적인 대안임을 잘 짚었다. 황정규가 쓴 《캘리번와 마녀》 서평은 페데리치가 마르크스주의를 자주 왜곡하는 것을 꼼꼼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페데리치가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을 페미니즘적으로 확장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고 자본주의에서의 여성 종속을 과장하면서 봉건제를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봉건제 사회가 계급사회이고 여성이 열악한 처지에서 고통 받던 사회라는 점은 간과한 채 봉건귀족만 없으면 당시 공동체적 사회 운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213쪽) 페데리치의 주장이 “상품, 화폐, 자본이 없는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가 없는 자본주의를 주장한 프루동을 연상시킨다”(213쪽)는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따라 여성 차별을 설명하려는 진지한 시도다. 여성 차별을 사회의 물질적 발전과 분리시켜 남성의 본성으로 치부하는 페미니즘의 접근법으로는 여성해방이 어떻게 가능한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은 정말 맞다.

여성해방을 위해서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 책의 대안은 옳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남녀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자본주의를 전복할 힘은 노동계급에게 있기에 착취와 차별 모두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발전시키는 게 여성해방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각국의 지배계급은 위기의 부담을 노동계급과 서민들에게 혹독하게 떠넘겨 왔다. 착취율을 높이고자 지배계급이 노동계급 내부를 이간질하는 시도가 강화되고 있으므로, 계급 착취와 여성 차별 모두에 맞서는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이 성장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계급적 관점과 반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여성해방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유물론적 분석의 장점을 보여 주며 진정으로 급진적인 여성해방의 전망을 논하는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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