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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판]〈민중의 소리〉 고희철 기자의 기사 비판:
제 논에 물 대기 식 평가

2판은 사소한 수정만 했다.

언론을 통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의 표명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이겠지만,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자신을 뽑아 준 기층 조합원들의 요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정책 대의원대회(정책대대)에서 ‘정치전략’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 사의 표명의 원인이라고 본다. 〈민중의 소리〉 고희철 기자가 쓴 기사가 그런 경우다.(‘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사의 표명, 집행부 전면교체 불가피할 듯’, 2016년 9월 1일치.) 〈민중의 소리〉는 친(親) 민중연합당 언론이다. 고 기자는 9월 2일로 예정돼 있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가 결정하기도 전에 한상균 집행부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고 기자는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관련 집행부 내 이견”을 사의 표명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정책대의원대회(정책대대)가 “소수의 반대와 무책임한 회의 운영”으로 “정치전략과 관련해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하고 유회”됐다고 썼다.

정책대대 파행론은 노동조합 민주주의 부정

정책대대가 파행으로 끝났다는 얘기가 많다. 고 기자도 정책대대가 “장시간 회의와 성원 부족에 따른 유회라는 민주노총의 악습을 반복했다”고 평했다.

이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평가다. 정책대대에서 가장 중요한 의결 주문안이었던 조직혁신전략 중 ‘정치전략’을 제외하고 세 가지가 통과됐다(‘전략투쟁과 의제’, ‘조직 강화: 산별운동과 지역본부 강화’, ‘조직 확대: 전략조직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전략’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정책대대에 상정된 두 개의 ‘정치전략’은 주도 세력, 속도,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두 안 모두 본질적으로 민주노총이 주도해 새 정당을 건설하는 방향이었다. 2안이 ‘민주노총은 정당 건설을 향해 돌격 앞으로!’라면, 1안은 ‘신중하게 정당 건설하자’는 것으로 2안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는 안이었다. 그래서 많은 대의원들이 1안과 2안 둘 다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중집이 두 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절충안을 마련해 왔다. 절충안의 요지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해 충분한 토론과 함께 “추진기구”를 구성하고 내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 정치세력화 방안을 의결한다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1안과 다르지 않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1안과 2안 모두 반대한 대의원들이 절충안을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혁주의적 전망과 종파주의적 태도

이 ‘정치전략’이 정책대대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점이었다. ‘정치전략’이 본질적으로 민주노총에 자민통계 정당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격렬한 논쟁이 불가피했다.

사실 ‘재벌 체제’ 문제나 노동시간 단축, 노동개악과 민영화 저지 등도 매우 중요한 정치 쟁점인데, 정책대대에서 ‘정치전략’은 순전히 합법 정당과 선거 대응 문제로 협소화돼 있었다.

자민통계는 이 ‘정치전략’을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 투쟁보다 제도권 개혁 정당 건설을 통한 선거 대응을 훨씬 중시했다. 결국 ‘정치전략’ 안은 자민통 정치전략을 민주노총에 관철시키려는 시도였다.

특히, ‘정치전략’의 핵심인 “진보대통합당” 안은 심각한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진보대통합당” 안은 실제로는 광범한 진보·좌파가 결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현재 민주노총 안에는 복수의 진보·좌파 세력이 존재한다. 정의당계, 노동당계, 급진좌파 계열, 자민통계, 녹색당계 등등. 이들의 당 건설 전망은 상이하고 그래서 각각 별도로 조직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구체적 조건을 무시하고 자민통계는 (노동조합 내 일부 개혁주의적 지도자들의 지원을 받아) 민주노총에 단일 정당을 건설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정책대대 현장에서도 ‘정치전략’ 안의 통과를 거세게 요구한 쪽은 압도적으로 자민통계 대의원들이었다.

그러나 정의당계, 노동당계, 급진좌파 계열 등 대부분의 진보·좌파 세력들은 이 안을 반대했다. 고희철 기자가 “소수”만이 반대했다고 쓴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 중 정의당만 하더라도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의 41.7퍼센트가 투표한 정당이다.(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실시한 ‘20대 총선 관련 조합원 투표성향 및 인식 조사 결과’)

자민통계는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 주도 진보 단일 정당 건설이 “조합원의 요구”라고 강변했다. 주된 근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치전략 수립을 위한 조합원 설문조사 보고서’(2016년 8월 16일)였다. 이 설문조사에서 35.5퍼센트가 ‘민주노총 주도 노농빈 정당 건설’을 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 4월 4일 발표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민주노총 가맹·산하조직 대의원 의식조사 결과’에서도 39.7퍼센트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찬성했다. 따지고 보면 2016년 결과는 2013년보다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이다.

사실 정치세력화 방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지지 정당 순위가 극적으로 뒤바뀐 것이다. 2013년 보고서에서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24.9퍼센트인 데 반해 정의당은 8.8퍼센트밖에 안 됐다. 이 관계가 완전히 역전돼 올해 총선에서 조합원의 41.7퍼센트가 정의당에 투표한 반면, 민중연합당에 투표한 조합원은 15.3퍼센트였다.(‘20대 총선 관련 조합원 투표성향 및 인식 조사 결과’)

진보 단일 정당 건설론은 바로 진보·좌파 정치 내에서 정의당의 지지와 위상이 크게 올라간 것에 대한 자민통계의 경쟁심과 조바심의 발로인 것이다. 총선 전에 민중연합당을 서둘러 창당한 것도 진보적 유권자의 표가 정의당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자민통계가 정의당(과 급진좌파)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정당 건설 프로젝트를 민주노총에 계속 강요하면 커다란 분열을 낳을 것이다.(〈민중의 소리〉에서는 정의당을 진보 정당으로 보지 않거나 노동당을 존재하지 않는 정당으로 여기는 기사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분열만이 아니라 전체 진보 정치 운동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민통계가 민주노총을 지배하려 들면서 다른 세력들로부터 커다란 반발과 원한을 살 것이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은 마음 편하게 노동조합 투쟁과 거리를 두며 개혁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미 2008년 민주노동당과 2012년 진보당 분열 이후 진보 정치 세력들이 온건화 경쟁을 한 바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안에서 자신들의 정당 건설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자민통계가 “패권주의”를 반성하고 있다는 말은 빈말인 것 같다. 꼭 2011년 민주노동당의 경기동부 계열 당권파가 선거주의에 눈이 멀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막가파’처럼 밀어붙였던 것이 떠오른다.

지금 민주노총 안에는 “진보대통합당” 신중론이 많다. 민주노총 내에 존재하는 매우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섣부르게 추진하다 실패하면 그 부작용이 치명적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대대에서는 특정 정치세력화 방안을 표결하지 말고 토론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자민통계와 일부 산별 지도자들이 정책대대 며칠 전에 “진보대통합당” 안을 성안(成案)해 상정했다.

고희철 기자가 최종진 직무대행의 “무책임한 회의 운영” 탓에 “몇 개월간 준비된 논의”가 “무산”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흐리는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시간을 갖고 폭넓은 동의 속에서 최대 단결을 이룰 연합 정당을 논의하기보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치 프로젝트를 정책대대에서 관철시키려 한 자민통계의 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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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정책대대에서 ‘정치전략’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파행”으로 보는 것은 관료주의적 접근일 뿐이다. 한상균 집행부의 지도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특정 정치 세력의 자기 중심적 평가일 뿐이다.

‘정치전략’이 통과되지 않은 것의 진정한 정치적 의미는 자민통계가 민주노총에 자신들의 고유한 어젠다를 강요하는 것을 저지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 안이 통과됐다면 민주노총은 커다란 내홍과 갈등을 겪었을 것이고, 그리 되면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의원대회에서 나타난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정치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반기 일전을 앞둔 지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지도부가 사퇴를 철회하고 “투쟁 지도부”로서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