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책대대:
‘진보대통합당’ 안이 통과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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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23일 열린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는 처음 열리는 ‘정책’ 대대였다. 민주노총의 주요한 전망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였는데, 그중에서도 정치전략 안(案)에 뜨거운 관심이 집중돼 사실상 “정치방침 대대”라는 얘기도 있었다.
‘정치전략’은 2개의 안이 제출됐다. 이것은 이미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부터 벌어진 논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안과 2안은 주도 세력, 시기, 방식 등에서 차이도 있지만, 두 안 모두 기본적으로 민주노총 주도 새 정당 건설 안이었다. 2안은 해석의 여지없이 민주노총이 주도해 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이라면, 1안은 신중한 논의를 거쳐 “새로운 진보 정당의 건설”을 포함한 “정치 방침을 2017 대대에 제출한다”는 것이었다. 가리키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했다.(자세한 내용은 ‘단결이 아니라 분열을 낳을 ‘진보대통합당’ 안(案) 반대한다 — 1안과 2안 모두 폐기돼야 한다’를 참조하시오.)
그래서 2안을 지지한 사람들은 1안과 2안이 “공통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봤다. 1안을 밀어 2 안을 막자고 생각한 1안 지지 쪽은 제 꾀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1안이 2안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었다. 2안 지지자들은 2안을 최대한 밀어보고, 안 되면 1안이라도 통과시켜 ‘진보대통합당’ 건설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을 원한다. 투쟁에서만이 아니라 선거에서도 진보·좌파가 단결해 대응하기를 바란다. 진보·좌파의 분열로 다른 기성 정당들이 득을 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대통합당’ 안은 그 표방과는 달리 ‘단결’을 보장하지도 않고 ‘대통합’도 아니다.
자민통계가 추진하고자 하는 ‘민주노총 주도 새 정당’은 사실상 정의당이나 다른 좌파 정치 세력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 그래서 ‘도로 통진당’을 만들고자 하는 방안이었다. 민주노총에게 특정 정치 세력의 정당을 건설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논쟁
몇 차례의 정회를 해 가며 격론이 벌어졌다.
2안 지지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 현장에서 매우 거세게 자신들의 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이들은 “현장 대의원 일동”이라는 명의로 2안을 지지하는 유인물을 나눠 줬다. 대의원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도 마치 자신들이 ‘현장 대의원’을 대표하는 양 처신했다. 한 대의원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바로 이 점이 ‘진보대통합당’ 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2안 지지 대의원들은 ‘단결’을 반복하며 ‘진보대통합당’ 안에 반대하면 곧 분열주의인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누가 단결을 반대하는가. 문제는 단결의 기초이고 단결의 방식이다. 즉, 어떻게 단결할 것인가가 진정한 쟁점이었다. 2안 지지 대의원들은 단일한 정당을 통한 단결만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대의원들은 새로운 단일 정당이 과거 두 번의 분열을 재현할까 봐 크게 우려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과거 민주노동당과 통진당이 왜 분열했는지 말하지 않고 하나같이 단결을 위해 새로운 단일 정당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좌파 대의원들 그리고 정의당 지지 대의원들은 1안과 2안이 본질적으로 같으므로 둘 다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특히 2안 지지 대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주노총이 특정 정치 경향만의 정치세력화 수단이 되면 노동조합이 분열할 수 있다는 점, 정치적 다원성을 무시한 패권주의적 통합 강요가 낳을 문제점, 지난 분열의 경험에 대한 분석, 정의당을 사실상 배제하는 자민통계의 종파주의 등을 지적하며 두 개의 정치전략 안 모두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집의 새 절충안
결국 중집이 두 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절충안을 마련해 만장일치 통과를 주문했다. 절충안의 요지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해 충분한 토론과 함께 “추진기구”를 구성하고 내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 정치세력화 방안을 의결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도로 통진당’을 추진할 수 있는 불씨를 살려두고 싶어 한 2안 지지자들과 정책 대대가 무산되기를 원하지 않는 지도부의 이해관계가 기묘하게 맞물렸다.
2안 지지자들은 재빨리 절충안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1안을 2안의 차선책으로 봤듯이, 절충안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노동자연대 회원인 대의원들은 절충안이 1안과 다를 바 없다며 반대했다. 절충안은 2안 지지자들이 내년 대의원대회에서 또다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위험성이 있었다.
일부 대의원들은 절충안의 핵심인 추진기구 구성과 내년 1월 대의원대회 의결 항목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냈다. 어떤 정치전략도 결정하지 못하면 현 집행부의 지도력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런 수정안은 2안 지지자들이 받지 않을 것이었다.
1안과 2안을 모두 폐기하자고 주장했던 대의원들은 막판에 절충안을 놓고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집과 2안 지지자들은 정책대대에서 뭐라도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문제는 그 결정이 나쁜 결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원 확인을 요청했다. 정책대대가 무산될 수도 있는 요청이었지만, 분열과 혼란을 가져올 진보대통합당 안을 열어두는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다음에 정치전략을 다시 다루는 데서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고심 끝에 나온 요청이었다.
또다시 정회가 있었다. 중집은 최종 정치전략 안을 모두 철회하고, 나머지 조직혁신전략 안만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달라는 안을 제시했다. 마침내 1안과 2안이 모두 폐기됐다.
정말이지 뜨거운 논쟁이었다. 일각에서는 정치전략을 채택하지 못했다며 정책대대가 파행으로 끝났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형식주의적 접근이다. 정치적 핵심은 자민통계가 민주노총에 ‘도로 통진당’ 건설을 강요하는 것을 저지했다는 점이다. 즉, 자민통계의 종파주의를 일단 제지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안이 통과됐다면 민주노총은 커다란 내홍과 갈등을 겪을 것이고, 그리 되면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편, 정치전략이 워낙 부각돼 아쉽게도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주제들도 있었다. 재벌 체제 극복, 사회적 총파업(실제로는 총파업이 아님), 대정부 교섭 등이 담긴 전략투쟁 의제가 그것이다. 이것은 현 집행부가 민중주의적 전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각해지고 정치의 문제가 급부상하자 자민통계가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정당 문제를 제기한 반면, 현 집행부는 정당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다른 문제에서는 민중주의적 전망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전망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정치적 해결’ 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연대 측 대의원들은 이런 문제 의식을 담아 ‘재벌 체제 극복’을 ‘재벌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으로 수정하고, ‘사회적 총파업’을 ‘실질적 총파업’으로 대체하며, 대정부 교섭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아쉽게도 이 쟁점들에서는 지지를 많이 받지 못했다. 이번 민주노총 정책대대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이 쟁점들을 더 연마하고 꾸준히 주장하며 토론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