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 후보 교육 공약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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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교육을 어떻게 공격했는가?
박근혜 정부는 “사회 수요 맞춤형 인력 양성”을 강조하며 기업의 필요에 맞추는 방향으로 교육을 재편해 왔다. 그 결과 교육에서도 계급 불평등이 강화되고, 대학은 더욱 시장화됐다.
박근혜는 이런 시장 지향적 교육 개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며 탄압했다. 또, 교사 간 경쟁과 갈등을 심화시켜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성과급 등 교원평가제도를 더욱 악화시켰다.
교육 재정을 긴축해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했다.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겼고, 이는 학교 비정규직 대량 해고와 학교 현장 예산의 실질적 삭감으로 이어졌다. 지방 교육재정 “효율화” 정책을 통해 농어촌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했다.
특권학교 유지, 대학 구조조정 등 노동계급 자녀들의 교육 기회를 축소하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개악들도 추진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응하려는 것일 뿐 아니라,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고졸 취업을 늘리려는 방향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정부는 대졸 실업자는 많은 반면 고졸 인력을 원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며 고등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강화해 왔다.
이런 방향에 따라 실제로 2008년에 83.8퍼센트였던 대학 진학률은 2016년 69.8퍼센트로 줄었다.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며 자살을 택한 특성화고의 기업 파견 현장실습생 사례나, 지난해 구의역에서 숨진 19살 김 군의 비극은 이런 정책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학을 가기보다는 “눈높이”를 낮춰 고졸 취업을 택하라는 정책은 젊디젊은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온 것이다.
진보진영 안에서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시도는 노동계급이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고, 계급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듯, 직업학교는 “학생들의 운명과 장래 활동이 미리 결정”돼 “사회적 차별을 영속”시킨다.
대학 구조조정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 간의 불평등은 더욱 강화됐다. 전국의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줄 세우고 경쟁시키는 방식은 대학 서열화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대학 서열로 인한 학생과 교직원들의 소외감을 더욱 높였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한 대학 구조조정 과정이 진행돼, 2003~13년 동안 인문 분야 정원은 9.8퍼센트, 수학·물리·천문·지리 등 자연과학 기초학문 분야 정원은 43.3퍼센트 감소했다. 반면 경영·경제, 공학, 의약계열은 같은 기간 3배에서 10배까지 증가했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의 문제는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을 기업 수요에 맞춰 구조조정할수록 대학 교육은 실용학과 중심으로 협소화돼 종합적인 사고 발달 훈련이 더한층 방해받고, 자유로운 학문 탐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대학에 성과 논리가 강화되면서 교수와 직원들에게는 경쟁적인 성과연봉제가 강화되고, 강사 등 대학 내 비정규직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경기 변동에 따라 바뀌는 기업 수요에 따라 학과가 생기거나 사라지면 학생들의 불안감과 경쟁 압력은 더욱 커진다.
이처럼 기업 맞춤형으로 교육을 재편해 온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 교육을 기업주들의 필요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 보는 관점이 강화돼야 한다. 원한다면 누구나 평등하게 고등교육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대학에서의 학문도 기업과 시장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의 공공적 필요를 위해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줄 세우기식 대학 구조조정은 폐기하고,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고등교육재정 비율은 1.4퍼센트인데 한국은 0.8퍼센트에 불과하다. 고등교육 재정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게다가 대학에 일괄로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선별해서 사업별로 재정을 지원한 방식은 이화여대에서 보듯 부패의 고리가 되기도 한다. 선별적인 재정지원사업을 중단하고 정부가 대학들을 공평하게 지원해야 한다.
또한, 박근혜는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지만 실제는 반값 등록금에 훨씬 못 미쳤다. 실질적 반값 등록금을 이루고 무상교육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 대부분은 교육을 친기업적, 친시장적으로 재편하려는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바른정당 후보 유승민은 일반고를 황폐화시키는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초중등 교육부터 “창업 관련 교육 의무화”를 하겠다고 한다. 심각한 청년 실업과 경제 위기는 청년들의 창업 정신과 진취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이 실패해서 벌어진 문제인데 해결책을 더욱 시장적인 방향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2012년보다 더 후퇴한 문재인의 교육 공약
문재인은 얼마 전 “정부가 해직자의 공무원·교직원 노조 가입을 금지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라며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조 합법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문재인은 교원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있지만, 이것은 민주당의 당론이 아니다. 사실 교사들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교원노조법을 만든 장본인이 민주당임을 고려한다면,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없이는 자동으로 법이 개정될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현재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교원노조법에 대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출범식에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부분적으로 철도 파업의 압력을 받은 듯하다.(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강행을 문제 삼았을 뿐, 성과연봉제 그 자체의 문제를 인정한 바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도(차등성과급 포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은 교원 승진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말조차 없다.
문재인은 박근혜 정권의 핵심 교육재정 긴축 정책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당이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집권당과 야합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은 고등학교 의무 교육화 등 일부 교육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위해 국가 부담 공교육비 비중을 OECD 평균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후보였을 때 강조했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은 사라졌다.
특히 국공립 유치원 확충 등 유아교육과 보육 시설의 열악한 환경 개선 정책은 없고, 누리과정 예산만 언급하고 있다. 공교육비 국가부담률을 끌어올릴 재원 마련 방안도 없다.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인한 기업주들의 수익성 악화 압력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문재인은 올해 1월에 출간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만들고,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공영형 사립대학을 통합 네트워크에 포함시켜 대학 서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위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근본적으로 대학 서열을 없앨 수는 없다 할지라도 대학 서열을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지지할 만한 공약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문재인은 더는 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말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이 이전에 비해 후퇴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수능을 자격고사로 바꾸고, 명목상 반값으로 등록금을 낮추고, 교육재정 확대를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도입하겠다고도 했지만 이런 약속도 더는 하지 않고 있다.(이 기사가 나간 이후 12일에 김상곤 문재인후보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집권도 하기 전부터 말을 바꾸며 공약을 후퇴시키는 문재인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안철수의 학제개편안
계급 불평등 심화시킬 중등 직업교육 강화 방안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는 학제개편안을 들고 나왔다. 현재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돼 있는 학제를 만 5세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5년, 중학교 5년, 진로탐색형 학교나 직업학교 2년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 방식에 따르면 현행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진로탐색형 학교와 직업학교 중에서 진로탐색형 학교에서만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다. 학생들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대학에 진학할지 기술 교육을 받을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계급 구조가 안착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대학 진학 교육과 직업 교육의 분화가 빠른 편인데, 이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계급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입학 연령을 1년 당기는 이유도 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더욱 빨리 하게 하기 위해서다.
결국 안철수의 학제개편안은 고등학교의 취업기관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고졸 취업을 늘려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겠다던 박근혜식 교육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상정, 진보적이지만 아쉬움도 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유아 3년의 공교육화를 바탕으로 한 유보통합, OECD상위 수준의 학급 당 학생 수 20명, 작은 학교 살리기, 특권학교 폐지, 고교 무상교육, 무상급식, 전교조 합법화, 교원의 노동3권 보장 등 진보적 정책을 내놓았다.(성과급을 폐지하겠다는 말이 없어 ‘능력개발 수당 지급’이란 말이 모호하다.)
또 국공립 대학 무상교육, 사립대 반값 등록금, 대학 서열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제시한 점 등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낫다.
그런데 직업계고(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비중을 현 19퍼센트에서 47퍼센트로 확대해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차별 없이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약의 의도라고는 하지만, ‘전면적 인간 발달’이라는 교육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녹색당이 “10대 중후반에 학문/직업 구분?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학생들을 가르지 말라” 하고 논평을 낸 것처럼 부적절한 공약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 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최적화된 교육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주장한다. 각계각층 교육전문가, 정치집단, 행정관료가 참여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10년 단위로 장기적 교육정책을 세우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해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적절한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전교조를 위시한 진보 교육운동 진영도 중시하는 개혁안이다.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강력하게 교육을 통제하며 교사,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교육 공무원, 학생들을 옥죄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초당파적이고 초정권적인 중립적 교육 기구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꽤 크다.
이런 정서를 의식해 안철수, 심상정 등은 교육부 축소 또는 무용론을 펼치며 대안으로서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정치적 중립성을 띠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고 공약했다. 심상정은 ‘교육미래위원회’란 이름을 사용한다.
문재인도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기념회에서 독립적 국가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고, 교육부 기능을 축소해 초중등교육업무를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고, 대학 관련 업무는 교육부가 맡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22일에 발표한 교육 공약은 이와 달라졌다. 국가교육위원회를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설치하고, 대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서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독립적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자문기구로 위상을 축소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는 가능할까? 당장 교육계는 정치적으로 매우 대립적인 입장과 세력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을 찬성하는 쪽과 이에 반대하거나 완화하자는 쪽이 극명하게 대립한다. 과연 사회적 합의에 근거해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
더 근본에서는 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있는 계급이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와 권력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이 교육 정책도 통제해 왔다. 설사 국가교육위원회에 일부 진보 인사들의 참가 기회가 열린다 하더라도 계급 사회 유지에 이바지하는 국가의 교육 정책 자체를 근본에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진보적 교육 개혁을 위해서라면 국가기구 밖에서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모델로 흔히 거론되는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인권 친화적 기구라고 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 시절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료들의 반발로 출발부터 누더기가 돼 독립적 수사권이나 조사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우파 정권 9년 동안에는 정권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차기 정권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므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되거나 심지어 전에 양보한 개혁을 회수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공격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국가기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개혁의 수준과 폭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