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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의 사회연대기금 논란:
기업주들이 정규직 임금으로 생색내기 하는 걸 돕는 꼴

최근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지부는 올해 임단협 요구안의 하나로 “노사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채택했다. 사회연대기금은 임금협상 타결금의 일정액을 출연해, 중소부품업체 지원, 청년일자리 창출, 중장년일자리 창출 등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액수와 용처가 정해진 것은 아닌데, 이와 관련된 세부 방안은 ‘노사공동 사회공헌위원회’를 설치해 논의·추진하자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않아 이 글에서는 전에 추진된 연대기금의 경험을 돌아보고 연대기금안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면, 그 내용에 대한 기사를 싣도록 하겠다.

사회연대기금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2004년 무렵부터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들에서 여러 차례 제안돼 실행된 바 있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의 ‘임금공유제’ 합의, 2016년 김성락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의 ‘나눔과 연대기금’ 제안 등이 그 최근 사례다. 2007년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자금으로 쓰도록 사측과 합의한 경험도 재조명되고 있다.

사회연대기금은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투쟁·조직화 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사측에게 강제하고자 벌이는 ‘투쟁’의 기금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끌어다 쓰는 정규직의 '양보'라는 게 핵심 차이점이다.

SK하이닉스는 임금인상액의 10퍼센트를 노동자들이 내고 사측도 그에 상응하는 재원을 출연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 개선에 썼다. 지난해 기아차지부는 정규직 성과급 중 일부를 모아 5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이 돈으로 원하청 노동자 격차를 줄이는 데 쓰겠다고 했다. 2007년 보건의료노조는 산별협약 임금인상분의 3분의 1가량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비용으로 사용해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2천4백여 명이 정규직화됐다.

한편 사회연대기금은 사회공헌기금과도 다르다. 사회공헌기금은 지역 빈곤층 등을 대상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데 사용해 온 기금으로 그동안 노조 측의 요구로 사측이 출연해 운영해 왔다.

차별 해소에 실질적 도움 안 돼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겠다는 정신은 좋다. 그럼에도 사회연대기금은 차별 해소에 실질적 도움은 못 되면서 사측의 책임은 덜어 주는 엉뚱한 효과를 낸다는 점을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사회연대기금은 대개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66억 원을 10개 하청기업 4천7백여 명에게 지급했는데 1인당 월 평균 10만 원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정규직의] 50∼60퍼센트 수준”(SK하이닉스)인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를 제대로 개선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1차 하청기업만 50여 개에 이른다. 더군다나 이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달랑 10만 원 주고 끝낼 일이 아니라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노동자들이라는 얘기다.

기아차지부의 ‘나눔과 연대기금’은 2015년 말 사측이 비정규직 성과급을 삭감한 일에서 시작됐다. 기아차지부 집행부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요구가 포함된 2~4시간 파업을 며칠 하다가 사측이 다른 요구(현대차 수준의 임금 인상)를 수용하자 투쟁을 접고 임금협상을 타결해 버렸다. 이에 비판이 제기되자 정규직 임금 일부를 내서 비정규직 성과급 삭감분을 벌충하자고 한 것이 '나눔과 연대기금'이다. 그러나 기아차지부가 목표로 삼은 50억 원을 다 모아도 비정규직 성과급 삭감분에 못 미친다.

보건의료노조의 2007년 경험은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런데 2년 뒤인 2009년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50여 개 지부의 실태조사서를 분석한 결과 … 총직원수 대비 비정규직의 비율은 약 21.5퍼센트로 2007년 5월 당시의 비정규직 비율이 20퍼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높아”졌다. “병원 사용자들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줄이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임금은 보건의료노조 산하 조합원의 약 53.3퍼센트 … 최저임금 위반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산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및 의견조사 결과보고서’)

이처럼 사회연대기금은 진정한 차별 해소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한편, 기업주들에게는 푼돈 수준의 재원으로 생색내기를 하기에 유용한 수단이 되곤 한다. 물론 이조차 순순히 내놓으려는 기업은 거의 없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칭찬도 받고 이미지 제고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정규직 책임론만 강화

사회연대기금은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기업주에게 유리한 효과를 내기 쉽다. 더구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정부와 사측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2015년 노사정위는 SK하이닉스의 임금공유제를 부각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촉구했다.

사회연대기금 제안자들은 정규직 책임론에 대처하려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책임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양보를 하면 정부와 기업주들을 압박할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박유기 현대차지부장은 “귀족노조의 프레임에서 탈피하기 위해” 사회연대기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기업노조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라고도 한다. 김성락 기아차지부장도 '나눔과 연대기금'을 제안할 당시 "기금 사업을 통해 노조보다 더 큰 책임을 가진 자본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정규직 책임론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것은 투쟁의 명분이 되기는커녕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갉아먹는 효과를 낸다. 기업주들이 가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고, 정규직은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종의 특혜를 누려 온 존재임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성락 기아차지부장은 '나눔과 연대기금'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산업 성장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이제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나눠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통계 등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 간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 갔다”는 사실이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

따라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개선할 재원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통장이 아니라 대기업 금고에서 찾아야 한다. “10대 대기업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연봉을 1천만 원 올린다면 4조 3천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10대 대기업 사내유보금(522조 원, 2013년)의 0.8퍼센트에 불과하다.”(김하영, 《임금, 임금격차, 연대》, 노동자연대)

정부와 기업주들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정말 관심이 있어서 정규직 책임론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 중 비교적 처지가 낫고 잘 조직된 부분을 공격해 전체 노동자 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하려는 의도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고립됐다고 느끼면 저항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벌 총수들에게 수백억 원씩 받아먹은 박근혜가 공무원연금을 개악하고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공격하던 상황에서 정규직 책임론을 일부 수용하자는 노동운동 내 일각의 제안은 공무원 연금 개악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주요 언론들이 SK하이닉스의 노사합의를 거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당시에 메르스 사태로 여론의 비난을 받던 정부의 숨통을 일부 틔우는 효과를 냈다.

투쟁 회피의 명분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나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바라는 소박하고 건전한 바람으로 사회연대기금을 지지할지도 모른다.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지가 비교적 열악한 다른 노동자들의 이익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마음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연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울 때 연대를 제공하고, 바람직하기로는 공동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은 정몽구를 압박해 정규직의 노동 조건을 지키면서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사측의 양보를 이끌어 낼 힘이 충분히 있다.

이 점에서 현대기아차 지부가 투쟁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사회연대기금 같은 요구를 채택하는 것은 유감이다. 특히 김성락 기아차지부장은 비정규직 신규채용 안에 합의하는 등 비정규직을 외면하더니,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며 심지어 1사1노조 분리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노조에서 내쫓자면서 정규직의 임금을 걷어서 비정규직을 돕자고 하니,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쟁으로 당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구속시킨 지금,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연대기금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에 앞장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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