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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 현대기아차지부의 ‘일자리연대기금’ 제안:
임금 나누기가 아니라 투쟁으로 사측을 강제해야

금속노조와 현대 · 기아차지부 등의 지도자들이 현대차 사측에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현대차 계열사 지부 17곳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체불된 통상임금 채권에서 2천5백억 원을 내놓을 테니, 사측도 같은 금액을 보태 5천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떼어 내어 1백억 원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이 돈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사용하자는 것이 제안의 취지다.

진정한 연대는 사측과의 공동 기금이 아니라 투쟁에서 나온다 '노사 공동 일자리 연대기금' 조성을 현대기아차 사측에 제안하는 6월 20일 금속노조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동자〉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자 하는 정신은 좋은 일이다. 어쩌면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도에서 일자리연대기금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규직의 임금 일부를 떼어 내어 일자리연대기금을 만들자는 구체적 제안이 과연 현실에서 어떤 효과를 낼지 따져 봐야 한다.

첫째, 일자리연대기금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재원에 한참 모자란다. 그동안 추진돼 온 사회연대기금은 비정규직의 조건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반면, 사측의 책임은 덜어 주는 효과만 냈다.(본지 205호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의 사회연대기금 논란: 기업주들이 정규직 임금으로 생색내기 하는 걸 돕는 꼴’을 보시오.)

물론 이번 기금 규모는 5천억 원으로 이전 사례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나 금속노조가 밝힌 자체 부담금 2천5백억 원 조성 계획은 공상에 가깝다. 수년째 답보 상태인 미지급 통상임금을 협상으로 해결해 그 일부를 내놓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측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몇 년째 통상임금 확대 요구를 묵살해 왔다. 그런 만큼 단호하게 투쟁해 사측을 압박해야 한다. 노조가 ‘일자리연대기금’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고 사측이 순순히 내줄 리 없는 것이다. 당장 재계는 “기금의 재원인 통상임금 소송 임금은 전혀 실체가 없는 돈”이라며 “봉이 김선달식”이라고 잘랐다.

둘째, 민주노총의 주력 조직인 금속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개선 효과도 미미한 ‘임금 나누기’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금속노조와 현대 · 기아차지부 등은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부문인 제조업 생산에 타격을 가할 강력한 힘이 있다. 이들은 조합원 대중 행동과 파업으로 자신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고, 이 힘으로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 등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 지도부의 제안은 이런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다. 투쟁으로 사측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이 사측에 양보함으로써 정몽구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는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면서 정부와 사측의 ‘정규직 책임론’만 강화할 공산이 크다.

셋째, 그러므로 문재인이 일자리연대기금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양보 압박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박근혜와 달리 노조의 “선제적 노력”에 대한 “감사”와 설득이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말이다.

문재인은 6월 21일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에서 금속노조 지도부의 제안을 반기며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다.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해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즉,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재원 마련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 방향은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할 정부와 사용자들의 부담을 덜려고 엉뚱한 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경기 불황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 살리기를 제 사명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 노동자들을 쥐어짜 이윤 회복을 꾀하려는 기업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연대기금 제안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보다, 거꾸로 노동자들을 향한 지배자들의 양보 · 희생 압박에 길을 열어 주고 힘을 실어 줄 공산이 크다.

단결에 해로운

넷째, 일자리연대기금은 노동자들의 단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로운 효과만 낼 수 있다. 정규직에게도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 정작 연대를 건설해 나가야 할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투쟁의 김만 빼는 효과를 낸다.

게다가 현대 · 기아차 노동자들은 지난 2년간 임금 총액이 3퍼센트가량 깎였다. 사측은 수익성 하락과 판매 저조 등을 이유로 올해 임금 인상 수준도 최대한 낮추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통상임금 확대분의 10퍼센트가량을 내놓자는 제안은 노동자들의 원망만 살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도 민주노총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은 “(정규직이) 내 몫을 내놓으면 노동자 연대 의식을 높이고 투쟁 참여도를 높이는 선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측은지심”은 건강하지 못한 정서이지만, 이 문제는 제쳐 놓기로 하자. 연대 의식은 건강한 정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공동의 적(착취자)에 맞서 단결해 싸울 때 발현될 수 있다. 그럴 때 사용자에 맞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지킬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일자리연대기금은 노동자 몫을 늘리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파이를 놓고 노동자들끼리 아옹다옹하게 만든다. 〈노동자 연대〉 신문이 누차 강조했듯이, 이는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 갈등과 반목만 낳는다. 대표적으로 기아차지부 김성락 집행부가 추진해 온 정규직 양보 제안(“나눔과 연대” 사업)은 일부 정규직의 보수성을 자극하고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을 오히려 약화시켰다. 당시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이 ‘아름다운 연대’라고 칭찬해 마지 않았던 바로 그 집행부가 노조 분리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수를 꽂은 것은 결코 우연적 일탈이 아니다.

금속노조의 일자리연대기금 제안보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돈’이 아니라 ‘연대 투쟁’을 통해 사측을 강제하는 것이다.(물론 투쟁 기금은 행동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임금 양보와 질적으로 다르다.)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쫓아내고 ‘연대’ 말하는 김성락 지부장의 위선

“10년 동안 한 노조 안에서 한솥밥 먹던 식구들을 그렇게 내쫓아 놓고 이제 와 비정규직을 위한다고요? 참 어이가 없네요.” 기아차지부 김성락 집행부의 일자리연대기금 제안을 두고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말이다.

김성락 집행부는 바로 얼마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와 투쟁을 비난하며 노조를 분리시켰다. 그래 놓고는 청년과 비정규직을 걱정해 ‘대공장 정규직의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조합원들에게 임금을 양보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어이 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김성락 지부장의 위선은 일자리연대기금의 효과는 물론이고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쫓아낸 ‘이기주의’로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조합원들의 임금 양보를 카드로 내세워 이를 피해 보려는 얄팍한 꼼수로 보인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임금 양보에 반발하면 비정규직 연대 외면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려는 계산도 하고 있음 직하다.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비정규직)의 등에 비수를 꽂으면서 ‘사회적 연대’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김성락 집행부의 노조 분리 추진을 비판했던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한겨레〉 등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일자리연대기금 제안을 두둔하는 것은 단순히 그에게 면죄부만 줄 뿐이다.

선진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나눔과 연대”라는 허울 좋은 미사여구로 정규직 양보론을 폈던 김성락 집행부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신하게 된 과정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그것이 원하청 단결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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