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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추악한 본질이 계속 드러나다

최근 이명박 시절 국정원이 저지른 대선 개입 등 정치공작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연신 폭로되고 있다. 8월 28일에는 검찰이 ‘국가정보원 댓글부대' 의혹 수사와 관련해 세 번째 압수수색이 있었다. 국정원의 공작 활동에 이명박의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된 사실도 드러났다.

〈노동자 연대〉

8월 3일 〈한겨레〉는 국정원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 30여 개를 운영했고, 2012년 한 해에 지급한 돈만 30억 원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팀들 말고도 심리전단과 별도 온라인 여론 조작팀을 운영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광범하게 규모로 이뤄진 것이다.

국정원이 이를 전쟁의 일종인 심리전이라 부른 것은 시사적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로 탄생한 이래 진보적 저항 일체를 짓밟는 데 가장 앞에 선 억압기관다운 발상이고 표현이다.

여론 조작팀들은 온라인에서 이명박 정권 초기 비판적 사회 여론과 진보·좌파 단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를 위해 국정원은 게시글의 조회수와 찬성수를 조작하는 프로그램도 전수했다. 또, 국정원이 해당 팀들에게 실적 압박을 가했다는 내부 폭로도 이어졌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8월 24일)에 제출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95년 선거 때도 본인들이 원해서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들은 없고 국정원에서 다 이렇게 나가라 해서 한 것”이라며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후보들] 교통 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에는 여러 가지 챙겨줘요”라고도 하는데, 국정원이 정당 공천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녹취록에서는 국정원이 현대차노조와 같은 노조 선거 일정까지 파악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노골적으로 “곧 민주노총 집회가 있는데 주도자들을 잘 감시하라”,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교조 중에서 전교조가 가장 나쁘다. 교육청에 얘기해 교사들이 징계되도록 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다. 지배계급이 특히 노동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세훈은 “온라인, 오프라인 대처에서, 직원들 전체가 아이티(IT)라든가 이쪽에 관계되는 부서만 보는 게 아니고 전 직원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신경을 쓰라]”고 지시했다. 즉, 국정원이 단지 온라인상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우익 단체들의 결성을 지원하고 밀접하게 연관맺고 사실상 한 팀처럼 현안들에 개입해 온 정황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예컨대 국정원은 용산 참사 항의 집회 등에 민간인들을 동원해 ‘폭력’ 현장을 채증하면 건당 10~2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느슨한 온라인 모임에 불과했던 ‘한국자유연합’ 따위를 법인으로 만들어 진보적 인사나 단체 비판, 각종 시위에 좀 더 조직적으로 동원하려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설립된 우익 단체들의 등기부 등본 등을 보면, 정식 설립일이 모두 2008년 촛불 집회 이후에 집중돼 있다. (※2008년 촛불 집회 노동자연대(당시 다함께)를 ‘경찰의 프락치’로 모는 황당한 음해가 온라인상에 조직적으로 유포된 것, 촛불 직후 경찰이 단체 사무실에 들이닥치고 사무실과 활동가들을 감시한 것도 그런 작전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또한, 2012년 MBC 파업에서부터 시작된 방송 3사 공동 파업 당시, 국정원이 파업 파괴에 개입한 정황도 자세하게 드러났다. 국정원 직원들은 ‘안티MBC카페’를 개설해 “제작비로만 몰래 20억 횡령해 놓고 파업하고 있는 귀족노조 MBC!”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파업을 매도하고 부정적 여론을 만들려 했다.

원세훈은 “불법 집회나 불법노조에 [대해] 등한시한 부분이 있는데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정상화해야 하며 특히 일부 언론의 편향된 정권 비판, 좌파 옹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기사 나가는 것을 미리 알고 기사를 못 하나게 하든지 안 그러면 기사 잘 못 쓴 매체를 없애 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국정원 직원이 할 일”이라고도 했다.

이런 일들은 9월 4일에 전면 파업을 선포한 MBC와 KBS의 언론 노동자들의 쌓인 설움과 분노가 얼마나 클지 짐작케 한다.

그런데 국정원의 악행은 박근혜 시절로도 이어진다. 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 뒷조사 및 방해 공작 Δ 전교조 법외노조화 Δ 통합진보당 해산 Δ 문화·언론 블랙리스트 작성 Δ 유우성씨 간첩사건 조작 Δ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 Δ 가짜뉴스 유포 등.

국정원은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다. 가령,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공제회인 양우회와 양우회 자회사가 보유한 자산규모가 2천12억 4천만 원을 넘고 사모펀드 등 영리 목적 사업에 최소 1천885억 9천만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것이 폭로됐다. 이런 국정원 비자금 마련 의혹이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 이 문제는 제주해군기지 철근 운송에 세월호가 깊이 개입된 것이 국정원의 국정 사업 지원 활동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진다.

국정원의 ‘일탈’?

그러므로 이러한 국정원의 행태는 〈한겨레〉의 논조처럼 단지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일시적 일탈”이나 본질에서의 “퇴행”은 아니다. (지난 9년 동안 더 대놓고 악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겨레〉 등은 문재인의 ‘국정원 개혁’을 계속 헤드라인으로 띄우면서 국정원 개혁이 몇몇 조치로 가능하다는 환상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지배 질서를 유지하려고 저항을 억누르고 억압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고, 그 한가운데에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다. 국정원의 존재 이유는 ‘내부의 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태생과 지난 58여 년간의 역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의 공약이기도 했던 ‘국정원 개혁’(국내 정보 수집 폐지, 해외 안보정보원으로 개편, 대공수사권 이양 등)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 ‘영남 독식’ 인사 시정, 1급 간부 전원 교체, 최초의 여성 부장 임명 등도 국정원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시절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노무현 시절 3년간 활동했던 ‘국정원과거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이하 진실규명위)의 성과는 별 볼 일 없었다. 당시 보고서의 ‘김대중 납치 사건’ 평가 부분은 김대중 자신조차 보고서가 ‘우유부단한 평가’라고 할 정도로 어정쩡했다. 국정원이 자신에게 치명적일 알짜배기 정보를 민간위원에 제공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아님 말고’ 식 간첩 수사가 노무현 때도 여전했다는 대표 사례가 2004년 송두율 교수의 ‘간첩’ 혐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노무현은 2004년 송두율 교수 ‘간첩’ 만들기를 통해 당시 반전 운동으로 표현된 청년층의 급진화를 차단하려 했지만 환멸만 커질 뿐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 한나라당도 송두율 교수를 “건국 이후 최고위급 거물 간첩”이라며 마녀사냥했고, 법무부 장관 강금실도 “[검찰의 의견과] 다를 게 뭐 있겠냐”며 동조했다.

그러므로 친문세력의 기억 재구성과는 달리 노무현 정권에서도 국정원의 ‘국내 파트’ 예산은 오히려 증액되었었고, ‘일심회’ 사건에서 봤듯이 진보진영에 대한 사찰이 중단된 적도 없었다. 국정원은 ‘6·15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며 이른바 ‘일심회’ 사건도 터뜨렸지만, 결국 법원에서 간첩단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와 경찰 등의 특수활동비를 감사하고, 이를 예산에서 대폭 삭감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보안을 이유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 공작 등에서 다른 정부 기관들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 온 점에 비춰 보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손대지 않고서 경찰의 특수활동비만 삭감하는 게 개선일 수 없다는 말이다.

국정원은 해체돼야 하고, 이는 오로지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스스로 권력을 창출하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

2013년 6월 ‘국정원 규탄, 민주주의 수호’ 촛불집회 ⓒ이윤선

그나마 최근처럼 국정원의 행보가 더 구체적으로 탄로 날 수 있었던 것도 거대한 박근혜 퇴진 운동이 국정원도 규탄의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제스처일지라도 아래로부터의 개혁 압력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를 취하는 배경이다.

우익 정권 시절 국정원이 벌인 악행들을 분명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나마 국가기구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억압하는 데 눈치를 보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국정원 자체의 적폐청산 티에프(TF)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고 믿기는 힘들다. 문재인도 벌써 촛불의 염원을 대변하지 않고 세월호 문제 등에서 후퇴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 같은 억압기관을 약화시키거나 없애려면 어느 정권이든 정권에 기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권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분석이 올바른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