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스스로 목숨 끊은 집배원:
문재인 정부는 지금 당장 인력을 대폭 확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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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9월 5일 서광주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故) 이길연 씨가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지난 7월 6일 오전 안양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故) 원영호 씨가 안양우체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사망한 지 2달 만이다.(관련 기사: ‘안양우체국 집배원 분신 사망: 연이은 사망을 막으려면 노동시간 단축, 인력 대폭 확충이 필요하다’)
고(故) 이길연 씨는 8월 11일 오토바이로 배달 근무 중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출동하는 사고를 당해 병가를 내고 치료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족에 의하면, 해당 우체국 관리자는 고인의 몸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계속 우체국으로 출근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우체국 관리자가 안전 무사고 1천 일 달성을 앞두고 사고로 다친 고인에게 출근을 강요했다’는 고인 동료들의 증언이 나왔다. 이러한 정황과 고인이 받았을 압박감이 유서에 담겨 있다.
그런데 서광주우체국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기사를 낸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편의를 많이 봐줬다. 개인의 기량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망발을 쏟아내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한다. 이에 유가족들이 매우 분노해 출근을 종용한 관리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9월 7일 오후 2시 서광주우체국 앞에서 전국집배노조, 전국우체국노조,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광주지역시민사회노동단체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 고인의 유가족들도 함께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할 것,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당장 순직 처리할 것, 재발방지 대책을 당장 수립할 것 등을 요구했다. 고인을 잃은 비통함 속에서도, 용기 있게 기자회견에 참가한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일하는 기계
이번 비극은 그동안 우정사업본부와 그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대우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노동자들은 고인처럼 관리자들로부터 아파도 나와서 일을 하라는 종용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입을 모은다. “다친 상태에도 부족한 일손 때문에 빨리 나오라는 재촉을 받으니 다쳐도 일을 하는 악순환이 생기고 이번 사망사고 같은 비극 또한 일어나는 것이다.”(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우체국시설관리단지부‧전국별정우체국지부, 공공노총 전국우체국노조 공동 성명)
최근에도 창원우체국에서 만성사구체 신염 3기를 진단받고 치료와 업무를 병행하고 있는 집배노조 조합원에게, 본인의 동의도 없이 강제로 구역변경을 명령했던 일이 있었다. 사측이 강제로 변경 명령을 내린 구역은 시외구역으로써, 업무와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이 큰 데도 말이다. 그래서 해당 노동자는 창원우체국에 명령을 철회해달라고 수 차례 요구하고 호소하였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이에 집배노조와 지역 민주노총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쳐 규탄 기자회견과 시위 등을 지속하여, 결국 시외구역으로의 강제 변경 철회를 받아냈다.
한 마디로 우정사업본부는 노동자들을 사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쓰다 버리는 부품 취급을 해온 것이다.
이렇게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태와 노동자 사망이 반복되는 데에는 인력 부족과 그에 따른 장시간-중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밑바탕에 있다. 근본에서는 효율화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을 추구해 온 역대 정부들과 우정사업본부의 경영 방침이 아로새겨져 있다.
집배원들의 연 노동시간은 2천9백여 시간에 이를 정도로 극도로 길다. 노동강도와 대민 서비스(감정노동)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도 매우 높다. 최근에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연합이 부산‧경남지역 13개 우체국 집배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심박 지수, 에너지 소비량, 열사병 지수 등을 측정한 결과 집배원이 다른 업종 노동자보다 작업강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마디로 “인력부족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노동강도가 강화돼 사고위험이 증가하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연합 김병훈 사무처장은 “17년 간 마산창원거제지역 제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왔는데도 이 정도 수준으로 나온 기업체는 없었다”며 “우정사업본부는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로 보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결국 이번 죽음도 정부와 우정사업본부의 노동자 쥐어짜기가 낳은 참극이다.
이번 부산‧경남지역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노동자들이 최우선 순위로 요구한 사항은 인력 대폭 충원이었다. 집배노조는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을 한국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으로 낮추려면 약 4천5백 명의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었다.
지금 당장
그런데 9월 4일 우정사업본부와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 우정노조는 긴급 노사협의회를 열어 집배인력 2백82명 증원을 합의했다. 우정노조가 그간 필요한 증원 인력이라고 밝힌 3천6백 명에도 턱 없이 모자란다. 이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추가 인력 충원 관련,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얼마 전 출범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정부와 노-사, 외부전문가들로 구성, 올해 12월말까지 활동하며 2개월 연장 할 수 있음. 이하 추진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장 막기 위해선, 최소 4개월 이상 걸릴 추진단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올해에만 벌써 15명의 우정노동자들(그 중 11명이 집배원)이 안타깝게도 과로사와 과로자살, 사고사로 사망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꾀죄죄한 수이나 2백82명 증원과 추진단 구성에 동의한 것에서 보듯, 사실 연이은 집배원 사망 문제의 원인은 부족한 인력이며, 해결책은 대폭적인 인력 충원이 답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또 다른 죽음이 발생되지 않도록 문재인 정부는 지금 당장 인력을 대폭 확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