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우체국 집배원 분신 사망:
연이은 사망을 막으려면 노동시간 단축, 인력 대폭 확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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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일터’ 우체국에서 안타까운 일이 또 벌어졌다. 7월 6일 오전에 안양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故) 원영호 씨가 안양우체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을 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이틀 뒤인 8일에 숨을 거두었다. 올해만 벌써 우체국에서 과로,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2명이다. 이 중 집배원이 9명이고 택배만 전담 배달하는 위탁택배원도 1명이다.
계속되는 우체국 노동자 사망의 핵심 원인은 인력 부족과 장시간-중노동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다.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 캠페인단이 지난 4월 27일 진행한 ‘최악의 살인 기업’ 선정식에서 우정사업본부장 김기덕이 특별상 대상으로 선정됐다. “노동자들을 극단적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아 과로사 등이 연이어 발생”한 책임을 물어서였다.
2016년 집배노조와 노동자운동연구소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연 평균 2천8백88시간을 일한다. OECD 소속 국가들 중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우리 나라 노동자 평균 시간보다 6백 시간 이상 많다. 1년에 무려 약 78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그래서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는 우리 나라 노동자 평균 근로시간에 맞추려면, 집배원 4천5백 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6월 12일 국회 추경 연설에서 집배원 과로사를 언급하며 고작 집배원 1백 명 증원 계획을 내놓았을 뿐이다.
유서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분신 사망한 고인도 인력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고인이 근무한 경기도 안양은 재개발로 인한 대규모 신규 아파트단지 신설 등으로 세대 수가 증가해 온 지역이다. 그래서 안양우체국 집배부하량(1일 집배 평균 배달량)은 전국에서 높은 곳 중 하나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집배노조에 따르면 집배인력증원 계획에 안양우체국은 없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 재개발 등으로 배달구역이 조정돼 21년차 집배원인 고인도 새로 맡은 배달구역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컸다고 한다. 6월 26일부터 새벽 5시에 출근하고 밤 10시 30분에 퇴근하는 일상이 연속이었다고 한다. 고인의 동료들도 ‘최근 담당구역 조정에 따라 구역이 바뀌면서 근무에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고인은 최근 부인에게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정사업본부와 안양우체국 측은 고인의 분신이 ‘업무와 연관이 없다’며 냉혹하게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경영효율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 외주화, 비정규직 증가 등을 추진해 온 우정사업본부가 잇따른 노동자 사망에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고인에게 산재를 적용해야 한다.
죽음의 일터
한편, 이번 분신 사망은 문재인이 내놓은 집배원 1백 명 증원(2018년까지) 대책은 집배원의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완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시행 시기도 너무 늦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정도 수준의 대책은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연이은 사망을 막으려면 지금 당장 집배노조의 요구대로 4천5백 명 증원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을 받고 있는 우체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즉각 이뤄져야 한다.
전국집배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우체국 비정규직노조) 등 노동조합과 노동자연대, 한국진보연대, 사회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7월 9일 오전에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 계속되는 우체국 노동자 사망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인력 충원,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주최 단체들은 가칭 ‘집배노동자 사망 대책 마련 시민사회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하고 뜻을 함께 하는 더 많은 단체들에 대책위 참여를 제안하기로 했다. 집배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더 널리 알리고 사용자인 정부가 즉각적인 노동조건 개선(핵심으로는 인력 확충과 노동시간 단축)을 마련·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