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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임박:
올림픽은 세계평화를 위한 축제인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 상징으로 알려진다. 문재인 정부와 주류 언론들은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이라고 홍보하기 바쁘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것 등을 보면 올림픽이 정말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완전한 중단이 아니라 일시적 연기일 뿐이다.)

올림픽은 무엇을 위해 탄생했나

하지만 올림픽은 철저히 정치적인 성격의 행사다. 올림픽은 자본주의 국가들 간 경쟁의 산물일 뿐이다.

올림픽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탄생과 역사를 보면 올림픽이 “세계 평화의 장”이라는 말은 허울일 뿐이다. 본래 모습은 다국적기업들이 경제적 이권을 노리고 뛰어드는 “세계 규모의 브랜드”이자, 국내 정치와 국가들끼리의 경쟁이 깊숙이 반영된 정치적 경쟁의 각축장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무려 29년 동안이나 IOC 위원장이었던 쿠베르탱은 처음부터 민족주의적 목적으로 올림픽을 조직했다. 쿠베르탱은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백인의 힘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해서, 올림픽에 초청한 (백인이 아닌) ‘미개 종족’의 패배를 조롱했다. 또한 그는 여성차별주의자였다. 여성은 초창기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는데, 쿠베르탱은 “아들이 스포츠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게 여성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출신인 쿠베르탱은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이유가 군인들의 체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한 체력에서 나오는 건강한 정신”만이 프랑스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출처 IOC

1900년 첫 올림픽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개최됐다. 터키 지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리스는 국민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즈음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제국주의 국면으로 발전하면서 세계 각 지역의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국가 수립 또는 강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고취할 필요가 있었다. 올림픽은 이런 필요에 부합했다. 그 덕분에 올림픽은 확대될 수 있었다.

올림픽은 각국의 민족주의 고취와 체제 선전의 각축장으로 기능한다. “인류 평화” 도모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대표적 사례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히틀러는 올림픽을 나치 체제를 선전하고,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활용했다. 냉전 시절에 미국과 소련도 각자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경쟁의 장으로 올림픽을 활용했다. 1980년에 미국의 주도로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핑계 삼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4년 뒤에는 반대로 소련의 주도로 동구권 국가들은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빌미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올림픽 개최에 담긴 지배자들의 필요 때문에 올림픽은 오히려 국내 억압을 강화하는 것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가령, 1968년 멕시코 지배자들은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아프가니스탄 침략 직후에 열린 미국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는 테러 대비랍시고 군대·경찰 1만 5000명과 블랙호크 헬기까지 동원됐다. 미국의 침략 전쟁과 올림픽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금지됐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발생한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독립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공안(경찰) 발포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G2 등극’에 유용한 구실을 하길 원했다.

서울 올림픽

한국의 지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당시 “한국 군사정권이 스스로 잔혹한 이미지를 덮어 감추고 매우 활력 있게 발전하고 있다고 발표되던 국가 경제를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을 목적이었다.” 즉, 전두환·노태우 등 군부 지배자들이 1980년 광주 학살을 감추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는 “한국의 올림픽 개최 입찰 시에도 선두에 섰고, 계속하여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도맡으며, 노동자·민중 운동을 꺾기 위해 올림픽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됐다.

1986년부터 2005년까지 IOC 위원이었던 ‘한국 스포츠계의 거물’이자, 그 자신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뇌물 스캔들의 당사자였던 김운용은 박정희의 경호실 출신이었다. 김운용은 민족주의 의식 고취라는 목적을 위해 서울 올림픽에 태권도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게 했다.

이런 사례들은 올림픽의 민낯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들일 뿐이다. IOC는 개최국이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협력해 왔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인권 탄압과 폭력을 자행해도 IOC는 대체로 개최국의 이해관계를 지지했다.(물론 미국 중심의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입김이 훨씬 더 우세하다.) 가령 IOC는 2008년에 중국 지배자들의 유혈 진압을 외면했다.

심지어 IOC는 히틀러가 파시즘을 선전하는 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이용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했다. 당시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른바 ‘붉은 러시아’의 유럽 진출에 대한 방패막으로 나치 독일의 호전성을 용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 중립’이나, ‘정치 배제’는 허울일 뿐이다.

러시아 국가대표의 도핑 조작 스캔들이 폭로돼 IOC가 이번 평창 올림픽에 러시아가 국가 차원으로는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이 표출된 것이다.

부패와 상업주의 - IOC라는 검은 사슬

이미 오래 전부터 “올림픽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상품의 하나가 됐다.”

초기부터 올림픽 후원사인 아디다스의 회장이었던 호스트 다슬러는 IOC 창립 멤버였다. 아디다스는 “모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자사 제품을 사게 하기 위해 경기 우승자가 반드시 아디다스를 신고 있는 모습이 보이도록 공작했다.” IOC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상업 스폰서와 스포츠를 결합시켜 결국은 아디다스의 이익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축구선수는 “아디다스 운동화와 아디다스 볼과 금·은·동 세 종류로 된, 잎사귀 세 개에 줄이 세 개 그어진 상표를 본 딴 상을 받는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인 코카콜라는 “세계 최대의,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올림픽 스폰서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량음료와 국제 스포츠라는 멋진 신세계는 서로 도와가는 사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세계적으로 기업을 홍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광고판이다. 이를 위한 온갖 로비와 뒷거래가 쉴 새 없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경기장은 ‘깨끗하게’ 해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관람객들의 경기 관람보다 “스폰서의 간판을 경기장 주위에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 시각도 해당 스포츠의 특성이 아니라, 스폰서들의 이익에 맞게 짜인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수영과 육상 경기는 밤 10시에 열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서머타임제가 시행됐고,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녀 싱글 경기는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미국 방송 시청의 황금 시간대인 동부 기준 오후 8시에 맞추기 위해서다. IOC가 후원을 가장 많이 하는 미국 방송사의 시청률, 광고 수익을 위해 경기 시각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수익성

‘2016 IOC 마케팅 보고서’에 따르면 올림픽 5대 수입원 중에서도 방송중계권 판매가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 수입의 절반에 해당한다. 예컨대 미국 방송사 NBC는 2014년 소치, 2016년 리우, 2018년 평창, 2020년 도쿄 올림픽의 미국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화로 약 4조 700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IOC 7대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가 올림픽을 수익성 좋은 상품으로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사마란치는 21년이나 IOC 위원장이었는데, 거대 기업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이고 TV 중계권을 거액에 판매하며 “올림픽의 교황”으로 군림했다. 사마란치는 악독한 스페인 프랑코 정권 하에서 장관을 지냈고, 프랑코의 집권당이자 파시스트 당인 팔랑헤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IOC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줄인다며 1999년부터 위원장의 임기를 최대 12년으로 단축했지만, 검은 사슬은 끊긴 적이 없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은 아예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부터 검은 돈이 오갔고, 그 결과 IOC 위원이 6명이나 해임돼야 했다. 한국 군사정권의 후원 덕에 IOC 위원이 됐던 김운용도 스캔들에 휘말렸으나 사마란치의 오른팔 역할을 한 덕분에 겨우 무마됐다.

IOC의 한 위원은 2014년 소치 올림픽의 총비용 중 3분의 1이 부패와 관련됐다고 인정했다. 소치 올림픽의 시설 건설 중 큰 계약들은 대부분 푸틴의 고향친구 회사 등 정부에 끈이 있는 회사들에 돌아갔다.

끊이지 않는 부정 시비

도핑의 역사는 올림픽의 역사만큼 오래된 관행이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와도 관련 있다. 무조건 일등이 되는 것, 상대방을 이기는 것, 새로운 기록을 세워 경쟁 상대보다 앞서는 것을 뜻하는 활동이 자본주의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훈련은 갈수록 비인간적인 것이 됐다. 선수들은 매우 엄격한 규율과 힘든 훈련을 감내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몸을 망가뜨릴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올림픽에서는 개인 간 경쟁뿐만이 아니라 국가 간 경쟁이 주요한 탓에 종종 자연적·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약물 사용이 관행이 됐던 것이다. 번번이 올림픽에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은 이유다.

올림픽 때마다 오심과 약물 추문이 불거졌다. 매번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반복된다. 오노 스캔들로 많은 한국인이 기억하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는 인종차별주의까지 겹쳐 내내 판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고, 약물로 자격이 박탈된 선수가 16명에 달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은 결국 사후에 러시아 국가대표팀 자체가 약물에 연루됐다는 게 드러났고, 이번 올림픽에 국가대표팀을 못 보내게 됐다.(물론 이 결정에는 경쟁자를 약화시키려는 미국 등의 입김이 친서방적인 IOC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평창은 어떨까?

올림픽은 각국 지배자들이 자국의 위상과 국내 통치 정당성을 높이는 수단, 다국적기업들의 이윤 경쟁을 위한 부패·부정의 ‘축제’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졌다시피, 평창 올림픽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중요한 먹잇감이었다. 장시호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하고, 최순실이 세운 여러 법인은 평창 올림픽 이권을 따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차은택의 페이퍼컴퍼니인 머큐리포스트는 평창올림픽의 공연용 LED 조명 기술 개발을 명목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45억 원을 받아갔다. 또 박근혜가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누슬리 시설 공사 수주 건 3000억 원을 최순실의 더블루K가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국무총리 이낙연은,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 고리였던 전경련이 주관한 행사에서 기업들에게 평창 올림픽을 후원해줄 것을 간청했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며 남북 대화를 재개했다. 올림픽의 성공과 남북 대화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평창 올림픽이 문재인 정부 초기의 치적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년 만에 성사된 남북 대화의 효과는 매우 일시적일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남북 대화는 더디지만 불만이 커져가는 노동운동 내 일부를 포퓰리즘적으로 붙잡아두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윤리 헌장’에는 건설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근로기준법, 최소임금기준 및 최소 근로시간 등의 준수를 통해 근로자의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을 위한 도로와 인프라 건설 현장에서만 벌써 노동자 4명이 산재로 사망했고, 정부가 발주한 평창 올림픽 관련 공사에서 건설노동자 2500여 명에게 70억 원에 달하는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하지만 ‘노동 존중’ 한다던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올림픽의 귀족들》(바이브 심슨, 앤드류 제닝스, 나라출판사, 1992)을 많이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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