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의 정치 ― 평화 올림픽에 못 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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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순수한 스포츠 제전이라고 포장되지만, 실상 강대국 간 경쟁과 다국적기업들의 이윤 몰이로 점철돼 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함께 가장 부패한 국제 스포츠 기구로 악명이 높다.
평창 동계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최대 특징은 러시아의 부재다. 도핑 스캔들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러시아 대표팀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막아 버렸다.
러시아 정부는 조직적으로 러시아 선수의 도핑에 개입했던 듯하다. 올림픽 성적이 국가 위상 과시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은 푸틴 정부가 소련 붕괴 이후 ‘위대한 러시아’가 부활했음을 과시한 기회였다.
물론 도핑 문제는 러시아뿐 아니라 국제 스포츠계에 만연한 일이다. 예컨대 2015년에 유출된 국제육상연맹(IAAF) 보고서는 육상선수 800여 명의 도핑 테스트 결과가 비정상적이었으며, 이 선수들이 2001~2012년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리만 문제냐 하고 반발하는 까닭이다.
러시아의 올림픽 참가 금지 문제는 러시아와 서방(특히 미국)의 점증하는 갈등과 얽혀 있다. 이제 미국은 러시아를 공공연히 경쟁자로 지목한다. 나토와 러시아는 유럽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무력 시위를 벌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러시아의 올림픽 참가를 막는 과감한 조처를 내린 데는 서방 지배자들의 러시아 히스테리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신냉전이 절정으로 치닫자, 그 영향으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각각 서구와 동구 진영 나라들이 불참한 반쪽 올림픽이 된 바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도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이 악화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 같다.
평양 올림픽이라고?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홍보한다. 남북 대화가 재개되며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가 해빙될 가능성이 열렸다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선수단 외에도 고위급 대표단, 예술단, 응원단 등이 내려온다. 논란이 있었지만,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도 구성된다. 최근 통일부는 업무보고에서 올림픽을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본격 추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1월 16일 ‘한반도 안보 및 안정에 관한 밴쿠버 외교장관회의’(밴쿠버 회의)는 한국의 제안으로 공동의장 성명에 남북 대화 지지를 밝혔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는 올림픽에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살리려고 신경 쓴다.
물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 화해 시도가 매우 못마땅하다. 홍준표 등은 평창 올림픽이 “평양 올림픽”이 됐다고 성화다. 무엇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 경제의 숨통을 죄는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남북 관계 진전이 국제 대북 압박 공조를 약화시킨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장제원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깨질 평화이고 약속들이라면 빨리 깨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저주와 악담은 우익 야당 정치인들 입에서 연일 쏟아진다.
우익들이 ‘평양 올림픽’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식 억지다. 남북 스포츠 교류는 오랫동안 남북 교류·협력 사업으로 여러 번 실시된 바 있다. 노태우 정부 하에서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열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은 물론, 북한 권부의 실세인 최룡해까지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이 내려온 바 있다.
국제 대북 제재 강화는 북한 인민의 삶에 큰 고통을 안겨 준다. “제재로 대외무역이 대폭 축소되고, ‘부족의 경제’와 ‘결핍의 경제’가 강화되면 결국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은 악화된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할 수 있는 ‘스마트한 제재’는 존재하기 어려우며, 일반적으로 제재는 인도주의와 충돌한다.”[1]
특히, 대북 제재는 대북 군사 압박 강화와 결합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공공연히 대북 예방 공격과 선제 타격을 거론하는 가운데, 우익들이 국제 대북 압박 공조를 중시하자며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특수부대와 항공모함
진정한 문제는 지금의 남북 화해·협력 시도로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현하는 데 미흡하다는 데 있다. 한반도 주변의 제국주의 갈등 악화가 문재인 정부의 운신의 폭을 제약한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의 결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이런 이유들로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리라 기대하기가 안타깝게도 힘들다.
올림픽 기간에 한미연합훈련이 열리지는 않지만, 이는 연기된 것일 뿐이다.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는 훈련이 재개될 것이다. 일각에서 ‘평창 이후 전쟁위기설’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미국이 현 남북 대화를 마뜩잖게 여긴다는 점은 군사 행동으로도 드러난다. 올림픽 개막 즈음에 미국 항공모함들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 추가 배치될 것이다. 북한 수뇌부 제거 작전(소위 ‘참수작전’)이 가능한 미군 특수부대도 한국에 들어와 전쟁 대비 훈련을 한다. 남북 단일팀과 미군 참수부대가 한국에 함께 있고, 미군 항공모함 추가 배치와 북한 건군절 열병식이 나란히 벌어지는 형국이다.
그리고 사실, 앞서 언급한 ‘밴쿠버 회의’가 남북 대화 지지만 밝힌 게 아니다. 미국 주도의 공동 의장성명은 기존 유엔 결의를 넘어서는 일방적 대북 제재를 강화할 필요성도 확인했다. 사실 전체적으로 밴쿠버 회의의 성명은 대화보다는 대북 압박 강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기조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워낙 강화돼 있어, 스키 선수들을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 보내려 비행기를 띄우려 해도 정부가 미국의 동의를 구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도 지금의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의 진전과 연계돼 있음을, 따라서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금 진전된 게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문재인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제재 조처 해제 등을 모두 유엔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 참가와 남북 대화를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길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평창이 “북한과 미국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평창에서 미국과 북한이 진지하게 대화할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1월 31일 트럼프는 국정연설에서 북한 정권을 맹비난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설사 향후 북·미 공식 대화가 열려도 그 앞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격언대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커서, 협상과 합의, 합의 이행 과정에서 온갖 걸림돌이 수시로 튀어나올 것이다. 냉전 해체 이후 30년 가까이 우리는 북·미 대화가 파탄나고 다시 긴장이 치솟는 경험을 수도 없이 겪었다.
따라서 평창의 평화는 항구적 평화 정착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의 줄타기식 대처는 이 상황을 근본에서 바꾸지 못할 것이다. 오직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을 창출해서 건설(확대)하는 것만이 진정한 대안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강대국들
남북 대화로 진정한 해빙 국면이 열리기 어려운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관계가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에서 더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경쟁이 가장 격심한 곳이고, 앞으로 이 경쟁은 장기적으로 더 악화할 것 같다. 한반도는 이 경쟁에 깊숙이 얽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갈등 속에 어느 한쪽에 급격히 쏠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노력은 일관되지 못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틀을 넘지 못한다. 예컨대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지지를 천명하는 것을 꺼림에도 최근 국방부 업무보고는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과 우리의 아태지역 국방외교 간 가능한 협력을 모색”할 것임을 밝혔다.
1월 22일 “미친 개” 미국 국방장관 매티스는 이제 미국 국가안보의 최우선 초점이 테러리즘이 아니라 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과의 경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중국이 약탈적 경제력을 사용해 이웃 국가를 협박한다고 비난했다.
미친 개
매티스의 선언은 제국주의의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이 더한층 악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트럼프가 31일 국정연설에서 밝혔듯이, 이는 핵군비 경쟁까지 수반한다.
그러다 보니 동아시아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더 커지고 있고, 한반도에서 긴장이 누적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해 나아간다면, 예기치 않은 사건이 한반도에서 위기를 급격히 증폭시킬 가능성도 커진다. 얼마 전 하와이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경보가 잘못 울린 사건은 앞으로 더 위험한 형태로 전개될지 모른다.
또한 미국 권력층 내에서 패권을 위해 대북 무력 행사를 선택해야 한다고 여기는 자들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 운동 건설이 필요하다. 그래야 위기가 임박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1]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김연철, 창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