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의료 영리화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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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7월 9일 이재용을 만난 데 이어 같은 달 19일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이하 ‘의료기기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의료기기 인·허가에 필요한 절차를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답게 쇼도 빠뜨리지 않았다.
문재인은 발표 현장에 김미영 씨와 그의 아들을 초대했다. 김미영 씨는 소아당뇨를 앓는 아들을 위해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구매하고 앱을 개발해 배포하다가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바 있다. 문재인은 규제가 이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면서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가들이 이처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기기를 개발·수입하지 않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미영 씨처럼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는 의료기기를 활용하려 하는 경우, 필요한 것은 정부가 그 안전성을 신속히 확인해 주는 것이지 검증 절차를 건너뛰는 게 아니다.
많은 경우 규제 당국이 안전성 검증 과정을 신속히 하지 않는 것은 규제 자체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 정부가 후발 주자인 한국 자본가들의 경쟁력을 고려해 수입 절차를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입·판매 업체가 없을 경우 개인이 절차를 밟기는 더 어렵다.
문재인은 규제를 완화하면 투자를 고무해 필요한 의료기기가 잘 보급될 것처럼 말하지만, 자본가들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의 필요보다 이윤에 있다. 따라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김미영 씨 사례처럼 수요가 적은 의료기기 개발·보급이 수월해질지는 불확실하다. 그나마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처럼 안전성을 희생시킨 위험한 개발을 부추길 공산도 크다.
매우 효과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정부가 책임지고 직접 공공병원 확충, 공공제약 개발, 공공의료기기 개발을 하는 것이다. ‘착한 적자’를 감수할 수 있는 정부 지출만이 수요가 작을지라도 꼭 필요한 의약품, 의료기기, 치료를 책임질 수 있다.
원격의료 허용
문재인 정부는 ‘체외진단기기’는 안전성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특히 이 분야에서 규제 완화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체외진단기기란 체온계·혈압계·혈당계 등 사람 몸에 상처를 내는 과정 없이 진단을 돕는 기구를 뜻한다.
그러나 “안전성 문제란, 기기 자체의 안전성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 혈당 검사라면, 혈당이 낮은데 낮지 않다고 하거나 높은데 높지 않다고 하는 등 측정을 잘못해서 처치를 거꾸로 할 경우 소아 환자는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문재인이 체외진단기기를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하다. 복지부장관 박능후는 문재인의 발표가 있던 날 원격의료 허용 방침을 밝혔는데, 체외진단기기는 원격의료의 핵심 장비이기 때문이다. 원격진료의 핵심은 진단에 있고(치료는 대개 만나야 한다), 진단 기기를 대량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 원격의료 추진의 핵심 동기이다.
박근혜식 의료민영화의 상징이던 원격의료 도입 방침에 반발이 거세자 며칠 만에 꼬리를 내렸지만, 정부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들에게 환자 건강정보 제공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각 병원들과 특히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축적돼 있는 수천만 명의 건강정보(빅데이터)를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활용 분야의 하나는 민간 보험사들이 그 정보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보험 상품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조처로 이익을 얻을 것은 보험사이지 개인 가입자들이 아니다. 보험사들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큰 사람들의 보험료를 올릴 것이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을 찾기도 쉬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발과 법 개정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추진이 지연되자, 정부는 원격의료기기(체외진단기기)를 활용해 그 데이터를 민간 기업들이 직접 축적·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물론 개인 건강 정보를 축적·활용하는 것은 질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그 일을 하지 않고 기업들에게 맡기려 할까?
보건복지부는 3월 30일 ‘2018년 제약, 의료기기, 화장품 산업 육성지원 시행계획’도 확정·발표했다. ‘첨단 바이오’ 의약품 허가·심사를 신속히 처리해 시판 후 안전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신약의 경우 식약처의 승인 없이도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예외를 늘려 나간다고 한다. 필요한 비용은 건강보험에서 지원된다. 즉, 아직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품을 쓰도록 해 주고, 그 결과에 대한 데이터는 정부가 모아서 가져다주니(빅데이터) 그야말로 전 국민 대상 임상시험이라 할 수 있다. 8월 6일에는 경제 부총리 김동연이 이재용을 만나 바로 이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가격을 올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도 답했다.
요컨대, 개인 질병 정보 활용의 주체는 당사자가 아니라 제약·의료기기·보험회사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실험 대상이자 판매처로 여기는 게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영리병원 개원 문제 침묵
문재인 정부 의료기기 규제완화 방안의 마지막 부분은 대형 병원들이 ‘산업·병원협력단’을 만들고 그 아래 의료기기 개발·판매를 할 수 있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영리 자회사 설립 방안과 비슷하다. 당시 많은 이들이 영리 자회사가 병원을 더욱 이윤에 따라 움직이도록 할 것이라고 우려해 반대했다.
이처럼 문재인의 의료기기 규제완화 방안은 박근혜의 ‘투자활성화’ 정책을 이름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은 제주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국제녹지병원) 개원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무책임하게도 제주도는 영리병원 개원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회부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민영화법 추진
마지막으로 민주당은 최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제조업과 광공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사천리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적 의료민영화 법안으로 지목돼 왔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없애려 한 규제들을 일일히 나열한 법으로 그 효과는 비슷할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공교롭게도 문재인의 발표가 있은 지 나흘 뒤에 JTBC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라이프〉는 이런 정책들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 꼬집는다. 이 드라마를 보면, 대형 대학병원에 부임한 신임 사장은 병원의 수익성 증대를 위해 환자들의 의료정보(빅데이터)를 보험사에 팔아넘기려 하고, 제약 자회사를 설립해 이윤을 늘리려 한다. 이 자는 수익성이 낮지만 필수적인 진료과를 구조조정하려 하는데, 박근혜 정부 하에서 홍준표가 추진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나 영리병원 설립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신임 사장은 병원의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진료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논리다.
〈라이프〉는 2011~2012년 삼성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주요 소재로 삼은 듯하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정책을 입안한 것으로 알려진 4차 산업혁명위원회 헬스케어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삼성유전체연구소 소장 박웅양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지체
한편, 목표가 너무 낮다는 비판을 받아 온 문재인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문재인 케어)은 그 낮은 목표조차 달성 여부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3600개가 넘는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기기 규제 완화’와 삼성의 약값 인상 요구 등을 들어주겠다니, 목표 달성은 더욱 어려울 듯하다.
비정규직, 최저임금, 일자리 공약 등에서 배신을 거듭해 온 문재인은 이제 의료민영화 등 더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이런 조처들은 문재인이 추진한 다른 쥐꼬리만 한 ‘개혁’ 조처들조차 빛이 바래도록 할 것이다. 이를 단순한 실수로 여기는 것은 순진함을 가장한 문재인 편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장하준 교수는 의료산업이 그렇게 크지 않다며 차라리 제조업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래로 의료산업이 자본가들에게 각광을 받아온 이유 중 하나가 제조업에서의 이윤율 하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나마나한 얘기다. 문재인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이 잘못된 정책을 내놓아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명백한 현실을 못 본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의 의료 영리화를 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