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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 첫 파업에서 승리하다

[개정판에 부쳐] 이 기사는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이 첫 파업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다”를 개정한 것이다. 지난 기사에서 투쟁으로 거둔 성과와 그 의의를 충분히 다루지 못해 이를 대폭 보완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가대분회)가 낮은 임금과 온갖 천대에 맞서 파업을 시작한 지 39일 만인 9월 1일, 병원 측과 잠정합의를 했다. 노동자들은 9월 5~7일에 진행된 찬반투표에서 이 합의안에 압도적인 지지를 표명했다.(투표율 81.9퍼센트, 찬성율 93.8퍼센트)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은 병원 설립 38년 만에 노조를 만들고 첫 파업에 들어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은 한 달 넘게 흔들림 없이 싸워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조승진

노동자들은 핵심적인 불만의 하나였던 시차근무를 폐지했다. 시차근무는 유연근무제의 하나로, 병원은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평일 노동시간을 한두 시간씩 줄여 토요일에 그만큼 일을 시켰다. 그러고는 전체 노동시간이 늘지 않았다며 시간외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고 벼르는 상황에서 이미 시행되던 시차근무를 폐지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성과다.

주5일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병원 측은 2020년에 가서야 도입하겠다고 버텼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내년 3월로 앞당겼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은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사학연금 적용) 육아휴직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러나 이번 투쟁 결과 오래 전부터 노동조합이 있던 다른 대학병원들처럼 수당 지급을 약속받았다. 임산부 야간노동 투입도 금지했다. 젊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병원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성과들은 임금 인상의 효과도 낼 것이다. 예컨대 사측은 시차근무를 이용해 연장근무와 토요일 근무를 시키면서도 연장근무 수당을 떼먹을 수 있었다.

부족했던 인력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다. 이번 합의로 일반 병동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10~12명을 유지하도록 했다. 당장 인력이 크게 늘지는 않을지라도 인력 기준이 마련된 것은 중요한 성과다. 이후 인력 충원을 요구할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환자 수 대비 간호사 수 법제화’를 요구해 왔다. 인력 문제는 전국 모든 병원 노동자들의 매우 중요한 염원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법파견 논란이 있던 노동자 70여 명은 즉시 직고용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앞으로 2년 내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동시에 정규직 업무의 비정규직화를 금지하기로 명문화해서 사측의 비정규직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임금도 10퍼센트가량 인상했다. 인상분의 일부는 연말 특별 상여금을 기본급화 한 것인데 이는 당장 올해에는 같은 액수로 반영되겠지만, 앞으로 임금이 조금 더 인상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기본급을 기준으로 각종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폭에 다소 아쉬움도 표했다. 애초 요구인 20퍼센트 인상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길어지면서 정부와 사용자들이 어떻게든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성과다. 병원 측은 악착같이 임금 양보를 최소화하려고 버텼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경우 생길 파급 효과를 우려했을 것이다. 다른 가톨릭 대교구와 병원 사용자들도 대구가톨릭대병원의 파업 결과를 주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 파업

이렇게 악랄한 병원 측을 상대로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투쟁했다. 병원 측은 파업 노동자들이 병원을 “악마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적반하장 격으로 비난하면서 한동안 교섭까지 거부할 정도로 강경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파업 39일 동안 이탈자가 거의 없었다.

첫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이토록 단호하고 용기 있게 싸운 것은 감동적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에 노조를 처음 결성했고 반년 만에 첫 파업에 나섰다. 반면 대구대교구는 오랜 역사 동안 그 보수성과 악랄함이 악명 높다. 이런 사측을 상대로 노동자들은 굽힘 없이 싸웠고, 결국 병원 측을 무릎 꿇게 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톨릭이 처한 위기와 맞물려 성과를 낸 측면도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의 사용자인 가톨릭 대구대교구는 지난 몇 해 사이에 온갖 비리가 폭로돼 내부에 쇄신위원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복지 시설과 병원 등 사업체가 과연 가톨릭 정신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가톨릭 안팎의 불신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이 병원의 ‘갑질’을 폭로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에 돌입하자 대구대교구 측은 큰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은 서울에 있는 교황청 대사관을 방문해 위로의 말도 받아 냈다.

자화자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노동자 연대〉 같은 언론이 이 문제를 수차례 부각해서 다루면서 대구대교구를 비판하고 노동자들을 지지한 것도 압력이 됐을 것이다.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업 막바지에는 서울성모병원 조합원들이 수십만 원을 모금하고 응원 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대구대교구의 위기는 세계적 차원에서 가톨릭이 겪고 있는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가톨릭은 아동 성추행 폭로 등으로 10년 넘게 위기를 겪어 왔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정치가 우경화하면서 바티칸 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사임 요구가 나오는 등 수백 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저항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큰 아일랜드에서도 여성들이 투쟁해 낙태 합법화를 쟁취했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낙태권 반대 100만 서명을 받는 등 보수적 태도로 일관해 낙태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자신감

가톨릭의 위기와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의 승리는 가톨릭이 소유한 다른 병원 노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톨릭의 위기 상황에서 병원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운다면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동안 가톨릭 소유 병원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섰다가 악랄한 탄압에 직면해 좌절한 경험이 있었는데 말이다.

가톨릭이 소유한 병원들의 노동자들은 상대적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의 승리는 이런 노동자들에게 저항할 용기를 줄 것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이 승리하고 얼마 뒤 강동성심병원 노동자들도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타결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으로 자신감과 조직을 크게 발전시켰다. 노동자들은 수십 일간의 뜨거웠던 파업을 통해 변했다.

“전에는 부당한 걸 당해도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생겼어요.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서로를 위해 투쟁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이 이번 투쟁으로 얻은 자신감과 조직을 기초로 노동조건 개선을 포함한 여러 투쟁들에서 계속 전진하기를 바란다.

노조 설립 반년 만에 큰 한걸음을 내딛은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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