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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월드 투쟁:
자회사 막지 못하고 아쉽게 막을 내리다. 왜?

자회사를 거부하고 직고용 쟁취를 요구하며 놀라운 투지를 보여 준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난 11월 30일 자회사를 수용하는 합의안을 받아들이면서 아쉽게 끝났다. 전면 파업 43일, 청와대 농성 38일, 경기지청 농성 36일, 청와대 앞 집단 단식농성 10일 만이었다.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놀라운 투지를 보여 줬다는 것은 의례적인 표현이거나 수사가 결코 아니다. 구호 외치기도 낯설어 하던 투쟁 경험 없는 이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을 43일간 단호하게, 정말이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투쟁을 통해서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에 맞서는 단연 빛나는 전투 부대가 됐다.

그럼에도 한국잡월드의 자회사 추진을 철회시키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은 결국 내년 1월 1일부터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즈 소속이 된다. 조건도 거의 개선되지 않는, 용역회사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자회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노동자들은 정말이지 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물론 노동자들은 마지막에 해고 위협을 막았고 자회사 전원 채용을 전제로 이후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 잡월드 노동자들이 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사전 결의대회에 참가해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촉구하고 있다 ⓒ조승진

그러나 한국잡월드 투쟁이 자회사 수용으로 귀결된 것은 결코 필연적인 게 아니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한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의 투쟁을 응원하며 지켜본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이 투쟁이 왜 자회사 수용으로 막을 내렸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싸워 봤자 소용없다’는 잘못된 교훈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판돈이 큰 투쟁

자회사 방안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핵심 쟁점의 하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 방안에 반대해 투쟁에 나섰다.

올해 10월 초경에는 한국잡월드 노동자 투쟁이 자회사 저지 투쟁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투쟁의 성패가 다른 공공기관에 파장을 미칠 것임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판돈이 커진 것이다.

그런 만큼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투쟁을 확대해 정부에 맞선 일반화된 투쟁으로 이끌어야 했다.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는 투쟁들을 연결해 투쟁이 파편화된 형태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고,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차원으로 투쟁을 확대해야 했다. 그랬다면 자회사 추진에 제동을 걸거나 적어도 훨씬 나은 합의안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11월 30일 보도자료에서 “한국잡월드 자회사는 2020년까지 노사가 재논의하여 재판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2020년에 고용과 처우 개선을 포함한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합의안을 두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재논의한다는 합의를 이렇게 치켜세우는 것은 과도하다. 상생발전협의회는 노동자 3인, 사측 3인, 노사정이 추천하는 공익위원 3인으로 구성된다. 자회사 추진이 정부의 의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태생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다. 이 합의가 다른 공공기관들에 미칠 부정적 효과도 봐야 한다. 당장, 산업은행이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또, 합의안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빠진 것도 우려점이다. 사측은 민형사상 소송을 분회를 공격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자회사 방안은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이기 때문에 한국잡월드에서 자회사를 철회시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처음에 한국잡월드가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에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의 비민주적인 진행 과정을 알리면 정부가 개입해 직고용 요구를 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갔고, 노동자들은 이내 자신들의 생각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잡월드에서 자회사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 다른 공공기관에도 파급 효과를 낼까 봐 매우 단호하게 나왔다. 한국잡월드 사측이 그토록 강경하게 자회사 입장을 고수한 것도 정부가 버팀목이 돼 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회사 방안을 철회시키려면 노동자 측도 만만치 않게 투쟁해야 했다. 한국잡월드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는 부족했다. 공공기관별로 이미 노동자들이 자회사 추진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 투쟁이 각개 전개되지 않도록 연대를 확대해 함께 싸우면서 투쟁을 키워야 했다. 정부의 자회사 방침을 정조준하면서 말이다.

거듭된 중재 시도와 거부, 그리고 다시 중재

그러나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파업 초기부터 정부의 중재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있고,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를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상당수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투쟁 확대보다 정부와의 대화를 우선시했다. 이것은 자회사 방안에 단호하게 반대하기보다 자회사를 전제로 (좋은 자회사가 되기 위한) 운영 방식을 논의할 수 있다는 노조 지도자들의 견해와도 관련이 있다.

10월 19일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들어가자 고용노동부가 즉시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기껏해야 채용 공고를 한 달 연기하고, 노동자들의 운명을 노사전문가협의체 산하 소위원회에 맡기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이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노동자들이 완강하게 투쟁하고 있고 사기와 자신감이 좋은 상황이었는데도 그런 중재안을 받고 투쟁을 마무리하려 했던 것이다. 이 중재 시도가 무산된 것은 사측의 반발 때문이었다.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이어 청와대 앞 집단 노숙 농성(10월 24일)까지 돌입했는데도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을 확대할 계획을 내놓지 않자 정당한 불만을 제기했다. 박영희 한국잡월드 분회장은 10월 24일 열린 공공운수노조 비상대표자회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20만 공공운수노조를 믿고 투쟁을 시작했고 민주노총을 믿고 가입했는데,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조합원들이 의문을 가진다.”

잡월드 본사에서 점거 농성하는 노동자들 ⓒ조승진
청와대 앞 집단 단식 농성을 벌인 잡월드 노동자들 ⓒ조승진

공공운수노조 비상대표자회의에서 투쟁 계획을 촉구하는 발언이 나왔음에도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다음 날인 10월 25일 경사노위를 찾아가 중재를 요청했다. 10월 29일 나온 경사노위 권고안은 채용 공고를 고작 일주일 연기하고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전문가 중재안에 최종 결정을 맡기자는, 노동부 중재안보다 더 못한 내용이었다. 경사노위 권고안 역시 사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렇듯 공공운수노조 지도자들이 중재에 매달리느라 투쟁을 확대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자회사 전환 채용 공고 일정이 다가왔다.

11월 2일부터 9일까지 강사 직군을 대상으로 한 자회사 전환 채용 공고는 한국잡월드 투쟁의 중요 고비였다. 사측은 자회사 전환 채용에 응하지 않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공개 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자회사로 들어오지 않으면 집단 해고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140여 명이 자회사 채용을 거부했다. 그리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1월 7일 한국잡월드 이사장실 앞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노동자들은 “정규직 사원증 받지 않으면 복귀하지 않겠다”며 기세 좋게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그런데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투지를 받아서 투쟁을 확대할 계획을 내놓기보다 또다시 형편없는 청와대 중재안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수용할지 여부를 조합원 토론에 부쳤다. 청와대 중재안의 내용은 자회사 채용에 응하고(전원 채용 보장하지 않음), 향후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처우 개선 등을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11월 9일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은 청와대 중재안을 거부하고 투쟁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노동자들의 의사는 분명했다. 자회사를 철회시킬 때까지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11월 10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와 11월 21일 민주노총 파업이 예고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이 확대되기를 기대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노동 개악을 강행하는 문재인 정부에 맞서 배신감과 실망감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세력 관계가 불리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전국노동자대회는 노동자 6만 명이 모여 정부에 대한 높은 불만과 분노를 보여 줬다. 11월 21일에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염원 배신에 파업으로 항의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향후 투쟁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는 꺼리는 형국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도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잡월드 문제에 대한 경사노위의 중재에 기댔다.

결국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다시금 경사노위 중재안을 가지고 와 조합원 총회에 부쳤다. 경사노위 중재안의 내용은 자회사에 채용된 후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고용과 처우 개선 등 발전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국잡월드 노동자 누구도 이 안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중재안과 비교해서 조금은 낫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노동자들이 원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안은 조합원 총회에서 표결 없이 통과됐다.

노동자들은 11월 21일 이후 투쟁이 더 확대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12월 1일 사측이 공개채용을 강행하려 하자 자회사 전환 채용 방식으로라도 전원 고용을 보장 받고 향후에 투쟁을 지속하는 방안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실, 청와대 중재안과 비교해 조금이라도 나은 안이 나왔던 것은 11월 21일 이후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도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이 필사적으로 투쟁한 덕분이었다.

투쟁이 남긴 것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회사를 막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구 성취의 측면만 본 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단련되고, 정치 의식이 높아지고, 조직을 구축한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잡월드 투쟁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자회사 전성시대를 연 문재인 정부의 본질을 드러냈다. “자회사는 용역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며 자회사의 본질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무기한 전면 파업에, 청와대 농성에 집단 단식까지 노동운동에 막 입문한 노동자들이 사측과 정부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한 것은 노동운동에 자극이 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문재인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드러냈다. 청와대 앞 집단 단식 농성에 돌입하는 11월 21일 박영희 한국잡월드 분회장은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피눈물 나게 만들 수 있느냐”고 규탄했다. 노동자들은 여성들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으로 쓰러져 가는데도 차갑게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를 경험하면서, 투쟁 초기에 가졌던 기대를 버리고 쓰라린 배신감과 분노를 쏟아냈다. “이명박, 박근혜랑 뭐가 다르냐. 문재인의 공약은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투쟁을 통해 거듭난 노동자들은 더는 이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측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우겠다는 의지도 밝히고 있다. 향후 직고용 전환과 노동조건 개선 여부는 상생발전협의회 안에서의 논의 결과가 아니라 전반적인 세력 관계와 노동자들의 투쟁에 달려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측에 맞서 투쟁을 지속하고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에 맞선 투쟁이 발전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12월 7일 청와대 앞 단식농성을 진행한 조합원들이 현장 복귀 전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경기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