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간섭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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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과이도 지지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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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우파의 정권 탈취 시도가 한 달째 접어들면서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월 23일 베네수엘라 우파와 일군의 무장세력들은 미국 등이 보낸 물품을 국내 반입하겠다며 콜롬비아 국경 인근에서 베네수엘라군과 충돌했다.(같은 시각 브라질과 인접한 반대편 국경에서도 물품 반입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이들은 ‘인도적’ 물품이 실렸다는 차량에 불을 질러 돌진시키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4명이 사망했다. 서방 언론과 우파는 마두로 정부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대서특필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는 이 충돌을 빌미로 마두로 정부를 흔들고 있다. 마두로 정부가 굶주린 대중에 돌아갈 물품을 총칼로 막는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한 이래 매점매석과 투기로 생필품 품귀를 부추긴 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끔찍하다. 물가인상률이 일곱 자리수일 것이라는 관측이 보편적이고, 베네수엘라인 10명 중 1명이 경제 난민이 됐다.(단순 숫자로는 내전 중인 시리아에 버금가는 규모다.) 떠나지도 못한 사람들은 배급에 의존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경제 제재로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미국과 서방의 ‘인도주의’ 운운은 위선이다. 이들이 베네수엘라 대중을 진정 걱정한다면 모든 제재를 즉각 해제하고 생필품 수입을 원활케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압박을 늦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지원 물품 반입 퍼포먼스조차 베네수엘라인들을 자극하고 외부 개입을 도모할 기회로 삼으려 한다.
베네수엘라인들을 위한다며 떠드는 과이도 자신이 압박 강화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 2월 23일 콜롬비아로 월경(越境)한 과이도는, 25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 리마그룹 회의*에 참석해 “모든 선택 사항이 테이블에 올려져야 한다”며 사실상 미국의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트위터에서 “이제 행동에 나설 때”라며 맞장구쳤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의 친서를 들고 리마그룹 회의에 참가해 힘을 실었다. 이 자리에서 펜스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베네수엘라에 강도 높은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직후 미국 재무부는 마두로 지지 베네수엘라 주지사 4명에게 추가 금융 제재를 부과했다.
정권 교체 속셈
미국은 이번 기회에 베네수엘라 정권을 교체하려 벼르고 있다. 마두로를 퇴진시키고 과이도 같은 친미 우파를 후임으로 앉히면, 2000년대 “핑크 물결” 이래 손상됐던 역내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베네수엘라와 이웃한 경제대국 브라질에서 친미 우익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지금이 그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는 듯하다. 경제 제재로 베네수엘라 정부·군부 주요 인사들을 강도 높게 압박해 사실상 쿠데타를 부추기는 것도 그래서다.
따라서 미국이 마두로 정부의 대화(평화 협상) 요청에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응한다면 꼼수와 시간 벌기용일 것이다.
미국이 2월 26일(현지 시각) 안보리 회의를 소집해, 유엔 감시 하의 대선 재선거 실시를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압박 강화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어깃장을 놓고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가 미국에 맞서 베네수엘라 정부를 일관되게 옹호할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이미 러시아의 주요 은행 가즈프롬방크는 PDVSA의 주요 외화 거래 계좌를 개설 1주일 만에 동결했다.
가즈프롬방크는 미국의 금융 제재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가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존의 마두로 지지 입장을 철회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즈프롬방크 모회사인 러시아 국영가스기업 가즈프롬이 PDVSA와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서 경쟁 관계라는 점도 그런 셈법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잇속을 따지기로는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물론, 강경한 마두로 반대 입장인 브라질 부통령 아미우통 모랑은 25일 리마그룹 회의에서 “군사적 해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나섰고, 같은 날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브라질 영토를 이용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미 군부 독재 하에서 출세한 호전적 전직 장성 모랑이 평화 때문에 이렇게 말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과의 공조 하에) 영향력을 늘리는 데에 유리한 조건을 따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셈법 안에는, 브라질 국영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세계 시장에서 PDVSA와 경쟁 관계라는 점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베네수엘라를 둘러싸고 (경제적 경쟁을 지정학적으로 비화시키는) 제국주의적 의도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사태가 이런 자들의 뜻대로 흘러간다면 베네수엘라 대중은 끔찍한 반동과 탄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제국주의 편에 서서 반동적 우파를 두 차례나 지지하고 나선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런 반동이 관철된다면, 우고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고 추진한 모든 친서민적 개혁의 잔재마저 분쇄될 것이다.
인기 영합?
우파와 기성 언론들은 그런 사회 개혁들을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 속에서 일관성 없는 인기 영합(‘포퓰리즘’) 정책일 뿐이라고 조소하지만, 이는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이 점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우파의 쿠데타 시도와 제국주의 간섭에 대한 규탄 한 마디 없이 우파와 똑같은 논리로 베네수엘라 정부를 비판한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차베스 개혁은 기업 수익을 복지에 대거 할애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반기업·친서민적 정책이었고, 그 결과 베네수엘라인 넷 중 하나 정도 되는 빈곤층의 삶을 어느 정도는 개선했다.(국제유가 고공 행진 덕을 보기도 했다.)
차베스 개혁은 또한 좌파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이었다. 비록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 위로부터 개혁을 추진한다는 뜻이었고, 기존 사회관계는 그대로 뒀다는 점에서 전혀 혁명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를 인기 영합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가 침체로 빠져들면서, 차베스의 후임인 마두로 정부는 노동자 대중의 편에 서기보다는 베네수엘라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선택을 했다. 그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신감과 사기가 올랐고, 노동자 대중은 위축되고 위기로 인한 고통을 짊어지게 됐다.
즉, 오늘날 베네수엘라 위기는 좌파 개혁주의 정부가 자본주의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하다가 잘못된 선택 속에서 실패하고 위기에 빠진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274호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사회주의 때문일까?’)
개혁의 성과를 파괴하려 드는 우파와, 이를 후원하는 제국주의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집권한 (진보적) 정부의 실패를 넘어 진정한 대안을 건설할 독립적 노동자 대중 행동을 고무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과 우파의 시도를 좌절시킬 진정한 힘은 베네수엘라 서민 대중의 단호하고 독립적인 저항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의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투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