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20대 남녀 이간질:
지금까지 이런 남 탓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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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20대 남성의 낮은 문재인 지지율을 20대 여성 탓으로 돌리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의 싱크탱크 구실을 하는 정책기획위가 작성한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분석했다. “20대 여성은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로 부상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친여성정책을 펼치면서 20대 남성은 역차별과 박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혜화역 규탄 시위 이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됐다고 지적한다.
20대 여성을 ‘집단이기주의’라고 싸잡아 비하한 것도 문제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친여성정책’을 펼쳤다는 건 더욱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 폐지, 최저임금 개악, 보육 지원 등 어느 모로 보나 진정한 친여성 정책을 펼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청년 여성들이 정부 보고서에 분개하고 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정부 보고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친여성 정책을 폈다면 왜 20대 여성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행동에까지 나섰으며, 만약 그 이유가 “집단 이기주의”라면 왜 청년 여성들이 또래 남성보다 문재인을 더 지지한다는 것인지 도통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다른 모순된 주장을 한다. 20대 남성이 “사회적 배려심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는 둥 여전히 문재인 지지율 하락을 20대 남성의 낮은 의식 탓으로도 돌리는 것이다.
최근 설훈, 홍익표 등 여권의 중진의원들이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는 남 탓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우파 정부 하의 교육 탓을 했지만, 결국 잘못된 교육을 받아 20대의 의식 수준이 낮은 게 문제라는 것이니 말이다.
20대 청년의 낮은 의식을 탓하는 건 지배계급 정당들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하고 이명박이 당선하자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진영 일각까지도 20대가 ‘보수화’됐다며 비난했던 것도 한 사례다. 우파는 비슷한 처지일 때 전교조 탓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고전적 수법에다 ‘남 대 여’ 프레임을 버무려 이간질을 강화하며 자신들의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남 대 여’ 갈등 구도 위에 처음엔 20대 남성들의 ‘배려심’ 부족 탓으로, 이제는 20대 여성들의 ‘이기주의’ 탓으로 돌린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결론적으로 20대 남녀 모두를 탓한다는 점이다. 20대 전체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사실을 교묘한 분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이 지적해 왔듯이, 문재인 지지율 하락을 젠더 갈등 탓으로 돌리는 건 근거가 빈약하다. 그동안 20대 여성과 남성은 거의 유사한 지지율 등락을 보여 왔다. 젠더 문제가 핵심이라면 성별에 따라 지지율 등락이 상반돼야 할 텐데 말이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지지율은 20대 남녀 모두에서 10퍼센트씩 하락했다(갤럽 2월 3주차 조사).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보수 언론들도 이런 ‘남 대 여’ 프레임을 가져다가 20대 남성을 비난해 왔다. 그런데 같은 프레임을 고스란히 20대 여성을 비난하는데 쓰자, 이젠 급진적 페미니스트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 보고서의 모순은 ‘남 대 여’, 즉 젠더 갈등 프레임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남녀 어디를 비난할 때나 다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젠더 프레임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여전히 그들 스스로 ‘남 대 여’ 프레임을 강화하는 데 일조해 온 책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현 사회가 남성이 여성을 위계적으로 지배하는 체제(가부장제의 다른 이름인 여성혐오 사회)라는 관점 속에서 남성 거의 전부를 편견쟁이나 여성 차별의 수혜자로 바라봐 왔다.
문재인 정부 각료와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배출한 여성단체연합 역시 이러한 급진적 페미니즘을 공유해 왔다. 여성단체연합은 이번 보고서를 “왜곡된 내용”이라고 비판하지만 자신들이 그런 ‘남 대 여’ 프레임을 제공해 왔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 왔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녹색당은 정부 보고서를 “기득권 남성 권력의 백래시”라 규정했다. 노동당도 “20대 남성 지지율만 신경 쓰는 남성우월주의”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문재인의 배신을 또다시 남성 일반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평범한 남성들의 삶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남성 일반이 기득권이라며 비난하는 건 반발을 낳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에 대한 실망이 커지는 상황에서 문재인과 동일시돼 온 페미니즘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일부 청년들은 우파들 쪽으로 이끌릴 수도 있다.
우파 언론과 정당들도 ‘남 대 여’ 갈등 프레임을 이용해 문재인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자신들 쪽으로 아전인수하려 애쓰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워마드를 비난하면서 남성 청년을 대변하는 척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지배계급이 위선적으로 젠더 갈등 프레임을 강화해서 남녀 이간질을 하는 것이 계급 문제를 은폐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취업, 주거, 정치에 공통된 불만을 가진 청년들을 단결된 저항으로 이끌기보다 서로간의 갈등과 분열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 연대〉 신문은 ‘남 대 여’ 프레임을 거부하고 대신에 계급 프레임을 고수해 왔다.
진보개혁 배신으로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삶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문제가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지는 핵심 이유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적 경험이 적은 20대가 기대가 더 컸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 그만큼 더 크기 때문에 이탈 속도가 좀 더 빠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여성 인권 치중/성갈등”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1퍼센트밖에 안 됐다. 20대 남성이 문재인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한 항목은 고용노동 정책 부분이었다(부정 평가 72퍼센트). 20대 여성 절반도 같은 의견이었다.(갤럽 2월 4주차)
같은 조사에서 압도 다수는 “경제/민생문제 해결 부족”(40퍼센트)을 문재인 부정 평가 이유로 꼽았다. 물론 문항이 모호해서 이 항목엔 좌우 모두의 불만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고 조직도 거의 돼 있지 않은 20대들은 진보·좌파가 부진할 때 우파로 끌릴 수도 있다. 진정한 위험은 여기에 있다.
진보·좌파는 문재인의 촛불 배신을 분명히 비판하면서 왼쪽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안은 여성과 남성이 좌파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