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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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의 ‘젠더 갈등’ 문제가 여러 정치인들과 언론을 통해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언론과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루며 저마다 ‘해법’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치인들과 언론이 말하는 ‘젠더 갈등’은 흔히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프레임으로 제기된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성별 격차를 곧 젠더 갈등으로 주목하는 것이다.
올해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투표 차이를 우파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들이 그렇게 해석했다. 20대 남성 다수가 우파인 오세훈에게 표를 던지고, 20대 여성 사이에서는 오세훈보다 민주당 박영선에게 표를 던진 수가 약간 더 많았는데, 이를 ‘안티 페미니즘 대 친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청년층 남성들이 문재인에게 분노한 핵심적인 이유가 그의 개혁 배신이 아니라 페미니즘 때문인 것처럼 왜곡한 것이었다. 청년층 남성 중에는 페미니즘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어도, 청년의 다수가 안티 페미니즘인 것은 아니다. 여성 차별의 현실 자체를 부정하며 여성 차별을 변호하는 안티 페미니즘은 청년 남성 중 소수에 불과하다.
‘시민의식 조사자료’(한국민주주의연구소·한국리서치) 등을 토대로 한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최종숙, 2020년) 논문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3040세대 남성보다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20대 남녀의 성평등 의식 격차도 다른 세대 남녀에 비해 크다고 하긴 어렵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 등 우파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을 보수 세력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젠더 갈등 프레임을 이용해 왔다. 젠더 갈등의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친페미니즘 정책으로 돌리며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여경 무용론 등을 주장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도 당 경선 과정에서 그런 공약을 내걸었다.
이런 주장은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무시하고, 청년 남성의 삶도 악화된 이유를 호도하며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실업, 양질의 일자리 부족, 주택난, 빈곤 등 청년 대중이 크게 고통받는 문제는 여가부의 성평등 정책(주무부처라는 위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된 게 아니다.
성폭력 무고가 많다는 주장도 과장이다. 국내외 연구를 보면, 성폭력 무고는 드물다. 현재 무고죄 처벌이 약하다고 볼 수도 없다.(물론 여성의 무고 문제가 아예 없는 양 말하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오류이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데 젠더 갈등 프레임을 사용하는 쪽이 우파만은 아니다. 2019년 초에 젠더 갈등의 심각성을 부각한 쪽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쪽이었다. 2018년 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20대 지지율이 하락하자 문재인 정부는 그 이유를 젠더 갈등 탓으로 돌렸다.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이라는 정부 보고서는 “20대 여성은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로 부상했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가 ‘친여성 정책’을 시행하면서 20대 남성은 역차별과 박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 직전에 정부와 여당 측은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20대 남성의 낮은 의식 탓으로 돌렸었다. 이 보고서에서도 20대 남성은 “사회적 배려심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하고 매도한다.(관련 기사: 〈노동자 연대〉 278호, ‘문재인 정부의 20대 남녀 이간질: 지금까지 이런 남 탓은 없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뻔뻔한 책임 전가이자 성별 이간질이었다. 정부 초기에는 20대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정부 지지율이 매우 높았지만, 기대가 차츰 무너지며 환멸과 분노로 바뀌었다. 20대의 정부 지지율은 격차가 있어도 동반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은 실질적 개혁은 거의 없는 생색내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청년층 여성을 포함해 많은 여성이 불만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국가기관에 진출한 극소수 페미니스트들은 큰 혜택을 봤지만,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남성 역차별론과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
물론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을 말했지만 정작 여성의 처지는 개선하지도 않았고, 보통의 애먼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나 취급하며 책임을 회피해 온 것에 대한 정당한 불만이 있다. 이런 불만을 경청하려는 자세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청년층의 불만을 성평등을 위한 사상과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또는 성평등 정책 탓으로 돌리는 주장에 이재명이 타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과 남성을 이간질하는 논리를 강화할 뿐이다. 평범한 남녀 청년들의 삶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더 과감한 대책을 내놓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젠더 갈등의 근원
정치인과 언론들이 사태의 본질을 종종 ‘젠더 갈등’으로 호도하지만, 젠더 갈등이 실제로는 없고 모두 허구적 담론인 것은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단일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은 아니다. 그러므로 남성 일반과 여성 일반이 대립하며 갈등한다는 의미에서 ‘젠더 갈등’은 엄청난 과장이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일부 개인들 사이의 갈등은 존재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층은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비중이 다른 세대보다 현격히 높다. 여기에는 언론이 최근 몇 년 새 청년층의 젠더 갈등 문제를 많이 다룬 영향이 있을 것이다. 또, 오늘날 청년층에서 불평등과 차별 문제가 가장 민감하게 여겨지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젠더 하나인 것은 아니다. 젠더 차별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관계, 즉 계급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자본주의는 노동과 인간의 소외를 낳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 경쟁 원리는 교육, 노동시장 등 자본주의 시스템 곳곳에서 작용한다. 일자리와 지위 등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사람들을 원자화시키며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성, 인종, 성지향 등을 이유로 한 각종 차별은 대중의 무력감과 좌절의 근원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있는 양 호도한다.
오늘날 여성 차별의 근원은 자본주의 가족제도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능에서 비롯한다.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을 저렴하게 재생산하고, 성별 고정관념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 국가기관, 기업, 대중매체 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제도가 가족제도의 이런 구실을 지탱하며 여성 차별을 유지·강화한다.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이자 수호자들인 지배계급이 젠더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거짓과 위선에 불과하다. 그들은 빈곤과 소외, 차별을 낳는 체제를 지탱하면서 저항을 이간시키려고 젠더 간 반목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정치·사회적 위기가 심화된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윤을 보호하고 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하고자 노동계급의 조건을 악화시킨다. 이를 위해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자 성, 성적 지향, 인종 등의 차이를 부각시켜 이간질을 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노동계급의 조건이 나빠지면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조건 악화로 노동계급 내에서 성별 갈등이 증가하는 게 예정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이 없어서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약화되거나, 남녀 노동자들이 여성 차별에 맞서지 않는다면, 그런 갈등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조건 악화나 여성 차별에 맞서 단결해 싸운다면, 노동계급 내에서 성별 갈등은 약화될 수 있다. 여기서 지배계급의 이간질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단결이 얼마나 크고 효과적인지가 중요하다.
차별은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그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단결하고 투쟁할 능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단결과 연대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급진 페미니즘과 좌파의 약점
젠더 갈등의 주된 책임은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이자 수호자들인 지배계급에 있다. 하지만 여성 차별에 맞서는 운동 세력이 그 표적을 잘못 맞추면 여성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운동을 건설하지 못하고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기 쉽다.
여성단체들과 젊은 여성 활동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급진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권력 관계로 규정하며 암묵적·명시적으로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 여성 일반을 피해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폭력이나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인 양 주장하고, 남성 개인들과 여성 개인들 사이의 갈등을 모두 ‘여성 혐오’로 치부하며 남성을 도매금으로 매도해 왔다. 이런 주장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와 그 뒤 몇 년 간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진보주의 언론을 통해 사회 전체에 널리 확산됐다.
급진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이자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보는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다수 평범한 남성들은 반발하기 쉽다.
2018년 젠더 갈등을 촉발한 사례로 꼽히는 ‘이수역 폭행 사건’이 한 예다. 이 사건은 2018년 11월 서울 이수역 근처의 한 술집에서 여성 둘과 남성 셋 사이에 시비가 붙어 일어난 폭행 사건이었다.
개인들 사이의 다툼이 사회적 쟁점이 된 것은 여성 측의 주장이 온라인 게시판과 여러 언론의 보도로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다. 여성 측은 자신이 ‘머리가 짧고 화장을 안 했다는 이유로 메갈X라는 말을 듣고 남성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주장했다. 그 여성을 폭행한 남성들을 처벌하라는 청원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하루 만에 30만여 명이 동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상은 여성 측의 주장과는 상당히 달랐다. 해당 여성이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게 아니고, 여성이 먼저 욕설을 하며 신체 접촉을 해서 싸움을 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쌍방 폭행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성과 남성 측 모두 재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남성 1명이 모욕 및 상해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여성 1명은 모욕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여성의 모욕적인 발언으로 이 사건이 유발됐다는 점을 고려해 남성보다 더 높은 벌금형을 내렸다.
이 사건은 언론들의 선정성과 함께, 성별 이분법적 페미니즘의 약점도 드러냈다. 여러 유명 페미니스트들이 해당 여성 측의 주장을 진실로 단정하며 이 사건을 ‘여성 혐오’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젠더 갈등을 주제로 다룬 여러 토론회에 페미니즘 측 패널로 나간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도 한 사례다. 당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었던 신지예 씨는 이수역 사건을 ‘여성 혐오’ 사건이고 한국이 ‘여성 혐오 사회’라고 주장했다.
당시 〈노동자 연대〉는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예단하며 ‘여혐’, ‘남혐’으로 규정하는 주장과 그런 구도로 몰아가는 언론들의 선정적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낸 바 있다(〈노동자 연대〉 267호, ‘이수역 주점 사건’ 논란이 간과하고 있는 것).
남성 개인(들)과 여성 개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때, 진상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사건인데도 무조건 여성 편을 들며 남성을 비난하는 경향이 페미니즘 내에 여전히 많다.
이런 성별 이분법과 도덕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해당 여성의 말이 허위이거나 과장이라면 억울한 피해가 생기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다. 또, 페미니즘에 대한 신뢰가 실추되며 페미니즘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보수 우파가 이를 이용하기가 쉬워진다(이준석, 하태경 등등).
도덕주의
남성 일반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등 급진 페미니즘 일각의 과도한 주장과 실천은 평범한 청년 남성 상당수의 반발을 낳았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이 낳은 환멸과 결합돼 우파에게 득이 되어 왔다.
여성 차별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및 작동 방식과 분리시키고 남성 일반을 여성 차별의 원인으로 보는 급진 페미니즘은 차별에 반대해 흔히 도덕주의적 대응을 한다.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한편, 여성에게는 무조건적인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주장과 실천을 비판하면, 그것의 근본 문제의식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백래시(안티 페미니즘)으로 몰아세운다. 이런 태도는 운동의 발전에 꼭 필요한 토론과 논쟁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편, 중간계급 지향적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성평등을 추구하며 기층 남녀 대중의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는 대개 무관심하다. 대신 국가기구를 활용하는 상층에서의 개혁을 추구한다. 이런 개혁주의 전략에 따라 많은 여성운동 지도자들은 민주당과 협조해 국가기구와 의회로 진출해 왔다.
성별 이분법적 노선은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한 국가기구와 기업의 요직, 또 노동조합 기구에 여성 몫을 늘리는 데는 유용하다. 그러나 사회의 상층부에 여성의 진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대다수 보통 여성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이젠 잘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 이래 국가기구에 진출한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타협하면서, 더 온건해지며 평범한 여성들의 기대를 배신해 왔다.
주요 여성단체의 지도자들은 운동의 목표를 국가기구(공직) 진출에 두면서 여성운동을 노동운동이나 기층 사회운동과 분리시키며 여성운동을 협소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이끌어 왔다.
문제는 좌파들(온건파, 급진파 모두)도 급진 페미니즘의 개념들을 대폭 수용하며 주류 여성운동을 추수하고, 노동운동에 분열을 야기하는 분열주의를 추수하거나 추동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좌파들은 성 관련 분쟁을 이용해 경쟁 좌파나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에게 ‘성폭력 가해’ 낙인을 찍으며 배척하고 연대 파괴에 골몰한다.
이런 분열주의는 가뜩이나 분열된 좌파를 더욱 분열하게 만들어 노동운동을 약화시킨다. 성평등을 전진시킬 수 있는 단결된 노동계급 운동을 건설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으로 대중의 환멸이 커졌지만, 정부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확대되며 전진하지 못한 결과, 세력 균형이 좌파에게 불리해졌다. 노동운동의 주요 지도부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상당 기간 동안 삼가며 급진적인 대중 투쟁 건설을 회피한 것과 좌파들의 분열주의가 모두 좌파의 열세에 일조했다.
진정한 해결책
젠더 갈등을 해소하려면, 평범한 여성과 남성을 분리시키는 자본주의와 이를 지키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들에 맞서야 한다.
노동계급을 성별로 갈라놓는 주장을 반박하며 폭넓고 비종파적 방식으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투쟁하면서 얻는 자신감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사상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여성 차별에도 효과적으로 맞서야 한다. 성폭력 중심으로 활동하며 남성 개개인을 규탄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초점이 되는 경향은 극복돼야 한다. 투쟁의 초점을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지배계급 권력에 맞추는 것이 운동의 방향이 돼야 한다.
여성 해방 투쟁은 여성만의 투쟁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참가하는 대중 운동이 돼야 한다.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은 계급투쟁과 별개가 아니어야 하고, 계급투쟁과 통합적으로 연결될 때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백래시에 맞설 수 있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여성 해방은 착취받고 천대받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과 분리될 수 없고, 여성 차별에 맞선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하는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12월 2일(목)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젠더 갈등, 어떻게 볼 것인가?
– 발제: 정진희(〈노동자 연대〉 기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엮음)
○ 토론회 영상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