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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노동운동과 좌파 전체의 강화를 위한 한 제언

올해 상반기 노·사, 노·정 관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더 악화, 더 불안한 상황임이 명백하다. 문재인의 배신으로 촛불 투쟁이 마치 죽 쑤어 개 준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고 있는데도 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 때와는 달리 환멸감으로 사기 저하되기보다 저항에 나서고 있다. 사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래 왔다.

한편으로 이것은 노동개악 추진을 둘러싼 ‘노정갈등’에서 잘 드러난다.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 계류 중이고, 이 중 일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합의나 공익위원안 형식으로 추진됐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매우 크다. 4월 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이 다시 올라오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4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결과가 대중 정서를 의식한 집행부가 경사노위 참여 재추진을 스스로 포기한 싱거운 게임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임시대의원대회 이틀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내 경사노위 참여파 산별연맹 위원장들은 현장발의안 제출 여부를 심사숙고했다. 그 며칠 전에는 사실상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압박하는 (경사노위 여성·비정규직·청년 계층별 위원들과 참여연대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다른 한편, 좌파공조 운동(경사노위 참여 반대 캠페인)은 임시대의원대회 몇 주 전부터 공동성명을 발표해 경사노위 참여파 논리를 반박했고, 대회 나흘 전부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만약 임시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이 상정됐다면 좌파들은 두 달 전보다 큰 차이로 승리했을 것이다. 좌파들이 경고한 경사노위의 구실이 1월 대의원대회 이후(특히 탄력근로제 개악 과정에서) 입증됐기 때문이다. 김명환 집행부의 기대(노사정위와 다르다거나 의결구조가 공정하다는 등의 기대)는 헛된 것임이 드러났다. 좌파공조 운동은 그 의미를 분명히 하면서 2차전을 할 태세가 돼 있었다. 그래서 4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지난 1월 좌파공조 운동이 옳았고 승리했음을 확인해 준 대회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경사노위 참가가 거부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이미진

그러나 노동운동의 일각에는 이런 점들을 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뒤늦게나마 앞장서 투쟁에 나섰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 덕분에 분위기가 바뀌어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주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좌파공조 운동이 벌인 경사노위 참여 반대 캠페인의 효과를 보아넘기려 애쓰는 반면,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해 온 김명환 집행부를 오히려 사주고 있다.(“뒤늦게나마”라는 부사어를 통해, 아쉬운 대로 접어주는 마음을 표현했어도 말이다.)

단순히 인상에 불과한 이런 견해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과 투쟁 증대, 좌파공조 운동의 효과적 대응 등 때문에 김명환 집행부를 포함한 경사노위 참여파들의 처지가 시간이 갈수록 군색해졌음을 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임시대의원대회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된 4월 10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해 또다시 대화 참여를 강조했다.

5월에도 노동개악 추진과 이에 맞선 투쟁은 계속될 것

다른 한편, 노동자 저항의 양상은 기층에서 크고 작은 노동자 투쟁(항의뿐 아니라 때때로 파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문재인 정부를 관망하다가 이제는 스스로 개선을 위해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여전히 일말의 기대를 가지면서도).

이런 노동자들 가운데는 새로 노조를 만들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성공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기대감과 함께 자신감을 얻어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들이 수개월 동안 교섭과 이런저런 항의를 하다가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해 파업에 나선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처지가 나아지기를 기대했다가 제자리걸음이거나 도리어 후퇴한 것에 불만을 갖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조건이 개선되지 않은 노동자들이나, 문재인의 최저임금·노동시간단축 ‘줬다 뺏기’ 신공으로 더 고통스러워진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청호나이스 수리노동자, KT 하청업체 노동자, 한국자산관리공사 콜센터 노동자, CCTV 관제사 노동자, 돌봄노동자 등이 위에 언급된 두 부류 노동자들의 사례다.

지난 4월 13일 특수고용노동자 집회에 건설 노동자, 화물연대 노동자 등이 대규모로 모인 것은 기층 분위기를 보여 주는 사례의 하나였다. 그 집회에 참가한 한 건설노조 지회장은 조합원들의 집회 참가를 조직하면서 “노동자들의 호응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본부와 민주일반연맹이 공동 투쟁에 나선 것도 기층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직접고용 쟁취를 바라는 공공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 염원 때문에 상이한 상급 노조/연맹들이 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공공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월 21일 공동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한 의료연대본부 지부장은 “기층 분위기가 몇 년 전과 달라졌고 오랜만에 밝고 신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투쟁하는 부문이다. 이들은 7월 초 공동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공공부문 노동자들뿐 아니라 민간 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의 투쟁도 두드러지게 늘었다.

그동안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던 화학·섬유·식품 부문 노동자들과 IT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일부 사업장에서도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4월 20일 보건의료노조, 의료연대본부, 민주일반연맹의 공동 투쟁 집회 세 노조의 공동 투쟁은 기층의 분위기 고양을 보여 준다 ⓒ이미진

정의당 후보의 창원성산 보선 승리

최근 재보선에서 정의당이 승리한 것도 이런 계급 세력균형의 변화를 보여 준 것이다. 또, 최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과 제주 영리병원 취소도 노동자와 여성 운동의 힘이 강화됐음을 보여 준다.

민주당의 배신으로 비록 공식 정치 영역에서는 한국당이 반사이익을 더 보고 있지만, 창원 보선은 민주당 왼쪽의 지지 증가도 확인해 준다. 만약 창원에서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됐다면 참패했을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을 지지했던 창원성산 노동자들은 국가기구 운영권을 쥐고 있는 집권 여당과 진보 야당의 차이, 정의당과 민주당의 계급 기반의 차이를 알기 때문이다.(물론 개념·원리를 통해 안다기보다는 정치인들의 실천을 경험해서 아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이런 정치적 차이를 간과하고 일각에서 정의당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여권연대”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초좌파적인 태도이다. 선거연합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승리를 폄훼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정의당에 투표한 그들과 소통하는 자세가 아니다. 특히, 이런 자세는 새로 운동 속으로 이끌려 들어와 지금 변하기 시작하는 훨씬 광범한 노동자들과 연관 맺기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계급 세력균형 변화를 보여 주는 정의당의 승리 ⓒ출처 여영국 캠프

노동운동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더 강력하게 내야 할 때

자칫 공식 정치 영역만 쳐다보면 우파의 부상만이 크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위에서 살펴봤듯이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배계급은 분열해 있고, 노동운동은 만만찮은 활력을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당과 민주당의 갈등을 지배계급 내의 분열로 보지 않고, 보수 대 ‘진보’, 또는 적폐 세력 대 ‘민주주의’ 세력, 우파 대 ‘좌파’의 분열로 본다. 그러면서 기가 살아나고 있는 우파에 맞서 진보·민주주의 진영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운동 안에도 이런 생각이 적잖이 퍼져 있다.

그러나 우파의 회생을 막아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를 절반쯤 지지하면서, 단호하게 맞서기를 주저한다면 우파가 반사이익을 가져가도록 돕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파의 기를 살려 준 것은 문재인 정부 자신이다. 우파의 기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우파에 반대하면서도 좌파의 진정한 실세로서 독자적 목소리를 더 강력하게 내야 한다.

지금은 노동운동이 더 단호하게 투쟁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상황이다. 주말마다 도심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한국당과 우파의 섟을 죽일 수 있는 세력은 현재의 구체적 조건 하에서 노동운동밖에 없다.

이런 때 민주노총 집행부가 메이데이를 수도 집중이 아니라 권역별 집회로 치르기로 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수도 중심부에 민주노총 노동자 10만 명이 집결해 청와대를 향해 격노한 항의를 할까 봐,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줄까 봐 집행부의 다수가 우려한 결과인 듯하다.

좌파 노조활동가들은 사업장 안팎으로 움직여야

위에서 언급했듯이, 문재인의 배신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지금 당혹해 하면서도, 개혁을 스스로 얻으려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좌파 노조활동가들은 자기가 속한 사업장이나 부문의 협소한 관심사에 머물러선 안 되고, 노동계급 전체와 기존 국가(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경찰, 군부, 지방자치단체, 복지국가 등을 아우르는 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런 정치적 관점에서 활동해야 한다.

특히, 새로 조직된 노동자층과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가령 자기가 속한 연맹에서 새로 조직된 부문이 투쟁에 나선다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려고 애써야 한다. 또, 자기 사업장이 다소 사기가 떨어져 있더라도 그와 동일시하지 말고(그러면 사기 저하되기 십상이다), 다른 사업장이나 다른 연맹의 활동적 노동자층과 연대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는 좌파 활동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실체를 들춰 내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강조점을 약간 바꿔, 개혁을 위해 스스로 싸우는 노동자들과 접촉하면서 효과적인 전술들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최근에는 좌파의 손에 닿지 않는 투쟁이 꽤 있는 듯하다. 투쟁이 정리될 즈음에야 소식을 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개혁을 위해 스스로 싸우는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임을 깨닫고 이런 활동에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좌파는 중요한 투쟁에 관여해 성과를 낼 기회를 놓칠 것이다.

개혁주의 부상에 대처하기

노동운동이 성장하면 개혁주의도 성장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개혁주의는 단지 개혁주의 정당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 운동 지도층과 개혁주의 정치 좌파 모두를 뜻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됐고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지금보다 더 정의당의 부상과 그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좌파 활동가들은 투쟁적이면서도 개혁주의적인 “모순된 의식”(그람시)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현 상황을 ‘타협적 지도자’ 대(對) ‘비타협적 현장노동자’ 식으로 일면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많은 노동자들은 지금 스스로 투쟁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회사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종종 주저하거나 국회나 정치권과의 협상(또는 이를 전담하는 개혁주의 정당)에 의존하는 등 개혁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좌파 활동가들은 개혁을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면서 현실 투쟁과 반자본주의 좌파 정치를 서로 연결시켜, 온건 중도파 활동가들보다 더 효과적인 전술을 제시하려 노력해야 한다. 좌파는 혁명적 노동운동의 역사적·국제적 경험에서 배움으로써(특히,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를 통해) 이런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에서 배우기: 배우는 자만이 가르칠 수 있다

종파는 자신이 모름지기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고 그것을 계급에 가르쳐야 한다는 가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막상 ‘가르칠’ 내용이 별로 없거나 잘못 가르쳤을 때, 이런 가정은 자신의 무능이나 오류를 가리고 숨기기 위해 나쁜 수단들(특히, 남 탓하기나 비방, 험담 등)을 발전시키게 만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자세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 자기 한계를 알며 겸손해야 하고 언제나 배우려 해야 한다. 새로운 문제에는 새로운 탐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계급에게서 배워야 한다. 아래와 같은 정립을 통해 마르크스는 배우는 자만이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환경 변화시키기나 양육에 관한 유물론적[포이어바흐 류의 기계적 유물론을 가리킴] 원칙은 환경이 사람들에 의해 변하고 교육자 자신을 교육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잊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유물론적) 원칙은 사회를 두 부분으로 나눠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다고 본다.”(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중 셋째 테제)

지금까지 보았듯이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은 맥락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세한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고 묘사하는 데 그친 채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종합해서 설명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어떤 추세가 발전하고 있거나 심지어 국면이 바뀌어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가령 어떤 공장에서 매일 2시간 부분파업을 한다고 치자. 주문량이 밀려 있어 사측이 애가 타는 공장에서 벌어진 2시간 부분파업과 물량이 줄어 그렇잖아도 하루 2시간 조업단축을 하려던 공장에서 벌어진 2시간 부분파업은 전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또, 투쟁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이 투쟁 수위를 올리는 추세 속에서 돌입하는 2시간 파업과 조직력이 강한 노조가 형식적으로 하는 2시간 파업이 같을 수도 없다.

이렇게 맥락을 고려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좌파 노조활동가들과 좌파 정치단체가 서로 접촉을 늘리고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둘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

2월 20일 현대중공업과 울산·부산의 좌파 활동가들이 대우조선 앞에서 가판을 진행했다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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