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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지개 펴는 노동운동 — 쟁점과 과제

문재인 2년, 개선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처지

문재인 정부는 고용 증가와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했다. 그러나 정부의 요란한 구호는 속 빈 강정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집권 2년 동안 노동자들의 소득도, 고용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노동대중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1분위(하위 20퍼센트) 가구의 근로소득은 무려 22.6퍼센트나 감소했다. 정부는 1분위에 비취업자들이 많아서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2분위 가구도 3.2퍼센트 감소했고, 3분위와 4분위 가구의 근로소득도 거의 정체했다(각각 고작 2.1퍼센트와 2.6퍼센트 증가). 반면,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11.3퍼센트 증가했다. 그간의 추세를 보면 5분위 내에서도 상위 1퍼센트의 근로소득만이 대폭 증가했을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분배 지표 수치가 악화된 것을 보고 밤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닥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며 내놓은 최저임금 공약을 1년 전에 내던질 때 이것을 예상 못했다는 말인가. 문재인 정부의 기초연금 정책도 ‘줬다 뺏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고용률은 더 악화됐다. 문재인이 취임한 2017년 고용률은 60.8퍼센트였는데, 2019년 1월 고용률은 59.2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실업률은 2017년 3.8퍼센트에서 2019년 1월 4.5퍼센트까지 올랐다. 청년 실업률은 공식 통계로도 10퍼센트인데, 1997~1998년 경제 공황 이후 최고치다. 청년 실업뿐 아니라 40~50대 실업도 증가했다. 이것은 경기후퇴와 함께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괜찮은 일자리에서 쫓겨난 결과다.

친기업 반노동 공세로 직진하는 문재인 정부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개혁 후퇴를 반성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줬다 뺏기’는 한 번으로 부족하다는 듯이, 3월 임시국회에서 또다시 최저임금 개악이 예고되고 있다. 결정 구조를 이원화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최저임금 인상 폭을 제약하려는 것이다.

임금과 함께 노동조건의 양대 축인 노동시간 문제에서도 ‘줬다 뺏기’를 거듭하고 있다. 주52시간 상한제의 각종 유예에 이어 3월 임시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강행하려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에 이미 합의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면서도 빈부격차를 증대시킨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일련의 조처들에서도 이 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1) 규제샌드박스라는 이름의 규제 완화. 샌드박스는 모래가 채워져 있는 나무 박스로, 어린이들이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이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 없이 맘껏 돈벌이를 하도록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환경이나 안전 등의 규제를 풀어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안전성 규제 없이 원격의료 기기가 허가받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모든 정부 규제를 단두대에 올리라’던 박근혜의 정신을 사실상 실천하는 것이다. 규제샌드박스의 명분으로 흔히 미래산업 육성이 제시되는데, 문재인의 “혁신경제”는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이름만 바꾼 것이다.

(2) 대우조선 민영화(매각). 대우조선은 현재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국영(공)기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이후에만 13조 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헐값으로 매각하려 한다. 대우조선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수주 실적도 좋아졌는데 말이다. 이런 회복은 대우조선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며 쥐어짠 결과이다.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 주려고 일시 공기업화했다가 민간 대기업에 매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조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감원과 임금 삭감 등 각종 희생이 강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재인 정부는 영구 공기업화로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는커녕 이전 정부들의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3) 다시 꺼내 든 노동시장 개혁.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주요 과제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꼽는다.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고용 모델 구축”은 노동시장의 “경직”된 임금구조를 개혁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임금체계를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급 중심으로 전환”, “상생형 일자리 모델 확산” 등은 모두 임금 억제와 하락을 가리키고 있다.

정부는 올해 공공기관들에서 직무급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에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에게 직무급제(표준임금모델)를 적용해 저임금 고착화를 추진했다. 정부는 이를 “차별”이 아닌 “차등 처우”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상생형 일자리 모델은 “광주형 일자리” 같은 것을 뜻하는데, “적정임금”이라는 명분으로 반값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 이윤 보장을 위한 것일 뿐이다.

(4) 단체행동 등 노동조합 운동의 제약.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존중”의 핵심은 노동기본권 실현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전혀 진척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겠다면서도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개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사용자 측의 요구는 점거파업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찬반투표 유효기간 설정,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등으로, 노동기본권을 대폭 제약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3월 초 경사노위에서 노동기본권 개악이 합의될 우려도 크다.

기지개 펴는 노동자 투쟁

이처럼 친기업 반노동 공세가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태세는 어떨까?

지난해 노동자 투쟁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 줬다.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을 처음에 주도해 우파 정권을 무너뜨린 경험 덕분에 노동자들은 문재인의 배신에도 사기 저하되지 않고 다시금 저항에 나섰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배신으로 환멸감이 증대하고 사기 저하했던(그래서 2008년 촛불 운동에 참가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이전 경험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지난해 많은 노동자들이 항의에 나섰다. 노동자 집회가 무려 3만 2275건이나 있었다. 이것은 그 전해보다 73퍼센트나 증가한 것으로, 매일 88건의 노동자 집회가 열린 것이다. 항의뿐 아니라 파업도 늘어났다. 파업 건수는 지난해 123건으로(11월 말 기준), 그 전해보다 91건 늘었다.

노동운동이 오랫만에 활력을 얻고 있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성장으로도 확인된다. 노조 조직률은 촛불투쟁 이후 본격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의 증가가 두드러진다(그래프). 민주노총은 2016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2년 동안 조합원 수가 무려 26만 명이 증가해, 현재 조합원이 100만 명에 육박한다(민주노총 자체 집계). 10년 넘게 정체돼 있다가 오랫만에 성장세를 맞은 것이다.

2018년에는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두드러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전환 제외와 자회사 방안 등으로 누더기가 되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진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민간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 불법파견 문제로 투쟁에 나섰다.

새로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보건의료 부문의 을지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노동자 등, 금속 부문의 현대모비스와 포스코 노동자 등, IT 부문의 오라클노조 등등이 그런 사례다.

반면, 전통적으로 조직이 강력한 부문인 금속과 공공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별로 두드러진 투쟁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와 조선업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불만과 고통이 매우 컸고 일부는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의 양보로 마무리된 곳이 많았다.

이처럼 지난해 노동자 투쟁은 (부문별로 불균등하기는 했지만)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됐고, 특히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증대한 하반기 이후 노동자들의 정서가 빠르게 변했다. 투지가 높아진 것이다.

이런 정서는 올해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된 것으로도 잘 드러났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인정했듯이, 대의원대회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기업 편향적인 정책 행보에 따른 현장의 분노”를 보여 줬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여야 한다. 올해에도 이런 정서를 좌파들이 잘 모아 내면 어떤 결실을 거둘 수 있는지도 잘 보여 줬다는 점 말이다.

2019년 노동 쟁점 — 개혁 후퇴 더하기 새로운 공세

올해는 정부·사용자 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한층 증폭될 것이다. 노동자 투쟁이 기지개를 펴는 상황과 경제 위기 속 친기업·반노동 공세 강화가 맞물리면서, 올해 노동자 투쟁이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갈등을 키웠던 쟁점들이 계속될 전망인 한편, 만만치 않은 갈등을 불러올 새로운 쟁점들이 추가될 것이다.

가령 올해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주목할 만하게 계속될 것이다. 기존 갈등 쟁점(전환 제외와 자회사로의 전환 등)이 지속되는 한편, 새로운 쟁점들이 더해질 것이다. 전환자 처우 개선 문제가 그중 하나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처우가 개선되지 않은 것에 불만이 크다. 올해 초 점거파업을 벌여 승리한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점거파업을 벌여 승리한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 ⓒ제공 서울일반노조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3단계’로 예고했던 민간위탁 정규직화에 대해 최근 사실상 포기 선언을 한 것도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표방했던 “효율성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공공부문] 경영혁신”을 내던지고, 공공부문에서 민간 위탁(외주화)과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임금 문제도 기존 불만에 새로운 쟁점이 더해지는 양상으로 갈등이 더 첨예하게 벌어질 것이다.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파기하고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 핵심 문제다. 이를 위한 공세가 계속될 것인데,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이원화하기로 한 것도 최저임금 인상 억제가 목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올해 또 다른 임금 억제 정책인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려 한다. 이것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정책으로, 큰 불만을 자아낼 것이다. 민간부문에서도 임금체계 개편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대차 사용자 측은 이미 지난해 직무·성과에 따른 임금체계 개악안을 제시한 바 있다.

노동시간, 구조조정, 노동기본권 문제 등도 불만을 증폭시킬 쟁점들이 추가되면서 올해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불만 증폭

애초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의 개혁 추진(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상한제, 노사관계 안정화, 또한 북한과의 해빙 무드 조성)을 지렛대로 조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얻어 낸다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 정지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급제 도입 등 노동자들의 반감을 살 정책들을 일정에 올리게 됐다. 기대를 모았던 개혁 정책들이 큰 실망만 자아낸 채 속도 조절에 들어감과 동시에, 본격적인 노동조건 공격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잘 조직된 노동자 부문의 저항을 자극할 수 있다. ‘사전 정지 작업’이 그럭저럭 됐다면 먹혔을 수도 있을 ‘귀족 노조’ 비난의 약발이 떨어진 것은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진보 염원 대중은 개혁 후퇴가 노동자들의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자신의 배신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민주노총 ‘국민밉상’론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국민’은 실제로는 지배계급과 상층 중간계급을 가리키는 모호한 말이다.)

민주노총을 경사노위에 참여시키려던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 무산된 것도 올해 노정관계,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증대시킬 수 있는 요인의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통해 개혁 후퇴 또는 개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의 반발을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자들도 변형된 형태로나마 ‘사회적 대화’ 참여와 교섭 구조 안정화에 계속 힘쓸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일정 기간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의원대회가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를 보여 준 동시에, 그 결과가 노동자들의 사기를 더욱 높여 줬다는 것이다.

잠재력과 약점

이처럼 올해 노동자 투쟁은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실로 오랫만에 노동자들이 활기를 회복하면서 노동조합이 성장하고 있다. 지금 같은 변화 국면에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계급 세력관계(힘의 균형)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전투를 벌이며 조금씩 전진해야 할 상황에서 참호에만 머물러 있으려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투사들과 좌파들은 현 상황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적잖은 노동조합 투사들과 좌파들이 패배의 경험과, 조직 노동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 속에서 위축감과 사기 저하를 겪어 왔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둔감하기 쉽다. 특히, 자기 사업장이나 소속 노동조합 부문에만 관심을 갖는 협소한 시야로는 전체 노동계급 운동의 잠재력을 보기 어렵다. 그러면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소심하게 투쟁을 제한하면서, ‘노동운동은 투쟁할 실력이 없다’는 (책임 전가성) 말을 전처럼 되풀이할 때, 다른 (급진적) 전망 속에서 투쟁을 확대할 수 있는 대안을 자신 있게 제시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비현실적인 도약을 기대했다가 급 실망하는 조급함도 경계해야 한다. 일부 좌파는 박근혜 퇴진 운동의 승리 이후 1987년 7~8월 같은 노동자 대투쟁의 분출을 기대했다가 사태가 그렇게 전개되지 않자 좌절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서 개혁주의적 노동조합 지도층과 개혁주의 정당이 강화된 상황을 깨닫지 못한 탓에 그릇된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경제 위기, 부르주아 민주주의, 노동조합 지도층 그리고 개혁주의 정당의 구실 등을 알아야 현 상황의 잠재력과 제약 요인을 다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제한적 전술

노동자 투쟁이 회복되고 있지만, 잠재력을 제약할 약점도 적잖다. 지난해 투쟁을 돌아보면,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의 자기 제한적 전술 때문에 개별 투쟁들이 광범한 전반적 저항으로 발전하거나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거나 우파의 부상을 우려해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기를 꺼리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해 개혁을 이루길 바라고, 그보다 투쟁적인 지도자들 다수도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각급 교섭이 안착되길 바란다. 다른 한편, 경제 위기 상황도 관련이 있다. 개혁주의적 노조 지도자들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조건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바람직한’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 심지어 사용자와) 참여와 협력을 추진한다.

이런 약점은 올해 노동운동에도 나타날 것이다.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은 민주노총이 이바지해야 할 한국 사회 개혁 과제가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와 일부 겹친다며 이를 위한 ‘광범한’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연합은 노동계급의 독자적 투쟁을 어느 수준 이하로 억압하고, 어느 수준을 넘을 듯하면 노동운동을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

또, ‘정규직 양보를 통한 격차 해소’론이 노동운동 내에서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것도 약점이다. 노동운동 온건파뿐 아니라 일부 좌파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방어 노력은 광범한 지지를 받기 어렵고, 노동계급 내 격차만 증대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 상위그룹인 민주노총[은] 노동조건을 지키려는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금 공격,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면서 ‘일자리 연대’, ‘연대임금’을 표방하는 상황에서 이런 입장은 노동자들의 투지를 떨어뜨리고 수동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투쟁적이고도 정치적인 노동운동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투사들과 좌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현재 노동운동의 약점을 극복하려면 단지 투쟁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투쟁성도 아직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좌파들은 노동운동이 투쟁적인 동시에 정치적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이 사회 개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옳은 발상에서 그릇되게도 문재인 개혁(재벌 개혁, 평화, 복지)에 일면 협력하려는 민중주의 전략이 아닌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단순히 전략 없는 급진 조합주의로 회귀하지 않고, 진정한 좌파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우파의 반사이익 얻기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 좌파들은 이렇게 주장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문재인에게 저항하고 선명하게 비판하면서 정치 지형을 왼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의 인기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우파가 챙기지 못한다. ‘반(反)우파를 위해 문재인 측면 지지하기’는 2005년 이후 노무현에 대한 환멸로 진보가 동반 하락했던 약점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은 개혁 후퇴에 직면한 노동자들에게 인내를 요구할 뿐, 복지 확대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이다.

또, 좌파는 노동운동 내에서 논란이 되는 쟁점에 관해 명확한 좌파적·계급적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가령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방어해야 한다. 민간부문 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조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공격이 성공하면, 계급 간 세력관계(힘의 균형)가 불리해져서,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도 공격받기가 더 쉬워진다. 좌파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고,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밖에도 구조조정의 대안, 직무급제, 연대임금 등의 쟁점도 중요하다.

좌파들은 자신들이 제안하는 전술이 온건한 지도자들의 자기 제한적 전술보다 운동을 더욱 키우고 성과를 거두는 데 효과적임을 대중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 그러려면 급진 조합주의의 협소함을 벗어나 사업장이나 부문 내 노사 세력관계뿐 아니라 더 넓은 정치 상황을 알고 (가능하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을 그저 폭로하고 일축해 버리는 것은 전술로서 크게 부족함을 이해하고, 노조 지도부에 촉구하기나 좌파 지도부와의 간헐적인 사안별 (필요하고 가능한 경우) 동맹 등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배신적 타협이나 역효과적 동맹은 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일부 좌파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빠진 노조 지도부’ 대 ‘투쟁하려는 노동자’ 식으로 현실을 묘사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박근혜 퇴진 투쟁으로 고무돼 새로 노동운동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었다가 지금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좌파들은 이런 노동자 의식의 모순을 알고 거기에 관여할 줄 알아야 한다. 노조 지도자들에게 투쟁을 압박해 봐야 소용없다며 그런 전술이 필요하고 가능할 때조차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을 되뇌는 것은 노조 지도자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노동자들을 (경험과 입증을 통해) 설득할 기회를 그냥 내던지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라는 물질적 기반이 있는 노조 지도층과 달리, 보통의 노동자들은 이런 정치적 경험에 의해 의식이 진보할 수 있다.

좌파 공조

최근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를 둘러싼 투쟁은 좌파들이 공조해서 대응하면 비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좌파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경사노위 불참 운동을 주도한 결과 민주노총 집행부의 경사노위 참여를 좌절시켰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좌파 실력이냐, 조건부 불참파가 도와 준 결과다” 하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 자체가 그 운동이 성공적이었음을 반영한다. 즉, 모든 성공적 운동에는 ‘누구 덕’이라는 얘기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1987년 6월항쟁의 넥타이 부대 주도론이나,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강남 ‘중산층’ 주부들의 역할에 대한 주장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마지막 지푸라기가 당나귀를 주저앉혔다” 해서 지푸라기에게 공을 돌릴 수는 없듯이, 경사노위 불참 운동도 그렇게 볼 수 없다. 누구의 공을 칭찬하느냐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교훈을 제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그 운동은 좌파들이 일찌감치 공동으로 문재인 정부와 경사노위를 폭로하고 정부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그 운동이 중요했던 것은 단지 노조 운동 상층의 좌우 분열을 기다리지 않고 기층의 불만을 세력화하고, 그럼으로써 경사노위를 둘러싼 노동운동 내 지형을 점점 왼쪽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 수정안의 뉘앙스도 중간적 입장에서 조금씩 불참 쪽으로 기울었다. 운동의 동학을 본다면, 불참을 이끈 것이 누구였는지, 전위와 후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좌파들이 서로 협력해서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번 경험의 교훈을 잘 살린다면, 노동운동이 기지개를 펴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가 전진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투쟁적이고도 정치적으로 만드는 일과 함께, 혁명적 좌파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혁명적 좌파 조직을 단단히 구축해야만 지금 제기되는 도전 과제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