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채용 과정에서 또다시 해고에 직면한 대학 시간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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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운동”하는 강사는 뽑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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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학기에만 대학 시간강사 약 2만 명 가량이 해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 견줘 시간강사가 담당하던 강좌는 3만 993학점이 감소했고, 소규모 강좌는 9086개가 줄었다. 고학력의 강사들이 “잉여 인간” 취급 받으며 거리로 내몰리고, 학생들은 “수강신청 전쟁”을 치르고 콩나물시루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 전임교수들은 과중한 강의 부담에 헉헉대는 일이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2학기를 앞두고 또다시 강사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2학기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대학들은 공개채용 절차를 시작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고려대에서 올해 2학기 공개채용으로 나온 강의는 3800학점이다. 이는 지난해 2학기 6300학점에서 40퍼센트나 줄어든 것이다.
이뿐 아니라 1년짜리 계약직인 강사를 뽑는 공개채용에서 거의 전임교원 수준의 조건을 요구하는 대학들도 많아 강사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대학 당국들은 공개채용 과정에서 진보·좌파적인 강사들을 배제하려는 시도도 벌이고 있다. ‘전국 대학교 교무행정 관리자 협의회’ 회장인 한양대 교무팀장 이재은은 ‘강사 임용 등에 관한 규정’을 각 대학들에 배포했다. 그 문서에는 “정부를 파괴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 “수업 거부”, “특정 정당 지지 또는 반대를 위해 학생을 지도·선동”하는 일 등이 강사 해고 사유에 포함돼 있다.
자유로운 사상 토론, 학문 탐구의 장이어야 할 대학에서 사상과 정치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들이 이번 공개채용 과정에서 열악한 처지 개선을 위해 투쟁에 나설 만한 진보·좌파적인 강사들을 솎아 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처는 너무 미흡하다.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강사법 시행령이 통과됐다. 대학들이 강사와 강의를 줄이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등 강사들과 학생 등이 요구한 내용이 일부 들어갔다. 그럼에도 ‘분노의 강사’들이 지적했듯 강사법 시행령은 “풍전등화에 놓인 강사 고용 불안 해결 못”한다. ‘분노의 강사들’은 지난 학기에 해고된 시간강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이다.
지난해 8월 강사 노동조합들과 대학 당국들과 국회 측의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안을 마련했을 때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국민건강보험 등이 제공될 것이라는 말에 많은 강사들이 기대를 보냈다. 그러나 이 처우 개선 합의안은 대개 법적 강제력이 없는 건의안에 불과했다.
협의체의 합의안을 기초로 만들어진 강사법에는 방학 중 임금이 포함됐지만 임금수준은 명시되지 않았다(임용계약으로 정함). 정부는 강사법 시행 예산으로 방학 중 임금을 겨우 2주분만 계산해 예산을 배정했다. 방학은 학기당 두 달이 넘는데 말이다. 강사들의 퇴직금이나 직장건강보험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정하도록 한다는 협의체의 건의안도 강사법 통과 뒤 추진되지 않고 있다.
해고 관련 대책도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부는 해고 대책으로 강사 2000명에게 1년간 14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추산으로도 강사가 1만 4000명 해고됐다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이다. 게다가 논문실적 자격기준이 있어야 신청 가능하고 기본적으로 해고 강사들끼리 경쟁해서 연구계획서가 통과돼야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계획조차 추경예산에서 통과돼야 한다.
교육부는 정부 지원사업의 평가 항목에 강사 고용 안정 지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 사업에 ‘강의 규모의 적절성’ 지표를 강화하고 ‘대학 및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의 지표에 ‘총 강좌 수’와 ‘강사 담당학점’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이 충분한 효과를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 강사 고용 안정과 교육 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있다. 사립대학들을 규제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시장 논리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대학 구조조정
현재 대학 당국들이 강사를 해고하는 이유가 단지 강사법 시행 예산 부담을 피하려는 의도만은 아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수입 감소를 만회하고, 대학 간 경쟁과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에 대응해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강의 ‘유연화’ 등 구조조정을 해 왔다.
한국의 대학을 지배해온 수익성 논리는 학령인구 감소와 경제 위기 속에서 강화되고 있다. 역대 정부들은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리고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며 고등 교육의 질을 높이려 하기보다는, 시장주의적 평가 지표로 대학 구조조정을 유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당국들은 심각해지는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 왔다. 가장 열악하고 해고하기 쉬운 시간강사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해 하위 40퍼센트에게 정원 감축을 압박하고, 재정적 불이익을 주는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였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상위 대학과 학과들에게는 지원을 강화하겠지만 하위 대학들은 폐교시키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는 이번 강사 대량해고 사태로도 분명히 드러났다. 구조조정 정책이 강화될수록 대학 구성원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대학 위기의 고통을 강사와 교직원,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정부와 대학 당국에 맞서 저항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사들의 열악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돈 벌이만 중시하는 대학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크다. 대학들이 이번 공개채용 과정에서 진보·좌파적 강사를 배제하려는 것은 그들이 저항을 두려워함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하다.
강사 해고를 막고, 해직 강사 복직시키고, 교육 여건 악화를 막기 위해 투쟁과 연대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