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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노동개악 신속 처리 요구, 임시국회, 민주노총 탄압:
피아식별 분명히 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4당이 자유한국당 동의 없이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다. 네 당은 17일에 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

물론 이것이 추가경정(추경) 예산 통과 등 중요한 국정 사안에 대한 “자한당 패싱”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부 여당이 급하게 국회를 연 가장 큰 이유가 추경 예산 통과인데, 이 추경 예산을 다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자한당 몫이기 때문이다.

즉, 여야 4당은 이런 점을 알면서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 현안들을 둘러싼 갈등과 협상은 이어질 듯하다. 그럼에도 노동개악에 관해서는 전격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7일 오후에 재계를 대표하는 형식으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만(전 두산그룹 회장)이 방문해 5당 원내대표를 모두 만나서 국회 개원과 재계 지원을 촉구했다. 박용만은 “가장 급한 법안은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회 앞에서 항의한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재벌 회장 출신 박용만은 여야 원내대표들의 환대를 받았다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 청문회

4월 이후 자한당은 선거제 개혁안 등을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패스트트랙)한 것에 항의해 대규모 집회를 매주 열며 국회 소집을 거부해 왔다. 표면상 여론이 자한당에게 불리했는데도 자한당이 ‘갑’처럼 군 것은 국회 소집이 급한 쪽이 정부 여당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 상황에 대응할 책임이 있고, 특히 추경예산 투입과 노동개악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 그런데 두 현안 다 자한당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자한당은 이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개악을 앞장서 추진하면서도 그것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고 싶어 한다. 재계의 칭찬도 받고 싶지만 노동계의 욕을 혼자 먹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은 선거제 법안 등의 합의 처리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방향으로 양보하려고 했다. 알량한 선거제 개혁조차 자한당에 밀려서 양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한당이 지난 주말에 경제 청문회 실시를 새 요구안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일단 바미당이 자한당에게 책임이 있다며 국회 소집에 앞장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용만이 방문한 17일 오후에 벌어진 일이다.

‘좌파 독재로 민생 파탄’,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망친다’고 외쳐 온 자한당이 경제 청문회를 요구한 목적은 뻔하다. 전통적 지지층에게 경제 부진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 탓임을 재차 각인하려는 것이다. 사용자 계급이나 보수적 자영업층에게는 호소력 있을 것이다. 또한 잘만 되면, 경제 사정에 민감한 중도층이나 일자리 정책 등에서 실망한 청년층도 공략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 정책은 이명박근혜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 적도 없다. 그래서 우파의 경제 실패 책임론 공세는 일종의 허수아비 때리기이다.(지금 위기는 특정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쪽은 여당이므로 자한당을 빼고 국회를 소집해서 자존심은 세운 다음에 여당이 내놓을 것은 아마 절충안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국회의장 문희상은 18일에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경제 현안을 가감없이 토론하는 경제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자한당 원내대표 나경원은 형식은 중요치 않다며 일단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 방안으로 여야가 합의를 이뤄도 말싸움과 상호간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 대선에 영향을 미칠 총선이 이제 열 달 남았기 때문이다. 자한당은 18일 북한 어선의 귀순 건도 우파 공세에 이용해 먹을 것이다.


중도층 경쟁

자한당 황교안-나경원 지도부가 출범 이후 추구한 보수 대통합 기조는 자한당 중심으로 우파를 결속시키고 그 힘(세력)에 기초해 중도층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봄에는 5·18 망언까지 불사하며 색깔론으로 우파 결집에 매달렸던 것이다. 황교안 자신은 막말 의원들과 다르게 행동했지만(5·18 국가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함), 그들을 징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중도층을 염두에 두고 경제 부진 여당 책임론을 띄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덜 우익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황교안은 문재인 정부 때문에 “폭망”한 경제를 살리겠다며 당내에 “2020경제대전환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경제를 위해 다섯 가지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과 ‘민주노총’이 앞순위에 꼽혔다.(나머지는 탈원전, 규제, 포퓰리즘)

여기에 양념처럼 더해진 막말과 가짜뉴스 공세는, 여전히 강력한 반우파 정서에 대처하는 자한당의 방식인 듯하다. 이들은 문재인에게 실망한 반우파 청년 세대가 아예 공식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돌아서길 바랄 것이다. 애초 진흙탕 전술은 자기편은 결집시키면서, 상대편 지지층은 환멸과 냉소로 유도하는 우파의 전통적 책략이다. 공식정치에서 우파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강해질 테니 말이다.

표면상 여론 지형이 자한당의 장외 투쟁에 부정적이었는데도 자한당 지도부가 과감하게 장외 투쟁을 벌인 맥락이다. 성공했다. 자한당이 더 우파적이지 못해 실망했던 우파층, 즉 집 나간 집토끼가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자한당 지지율 상승의 실체다.

그러나 전통적 자한당 지지층도 양분돼 있기 때문에 이 책략은 딜레마도 낳았다. 집토끼와 산토끼가 한집에 머물길 싫어하는 것이다. 가령 자한당이 이제는 중도층(산토끼) 포섭을 위해 막말을 자제하자는 황교안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진박’ 홍문종이 친박의 자한당 탈당설을 흘리며 견제구를 던졌다. 결국 홍문종은 우파 친박당을 만들자며 주말 태극기 집회를 주도해 온 조원진의 대한애국당에 15일 입당했다.

그러나 김진태, 김태흠 등 당내 태극기파 친박 의원들은 따라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파도 자한당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우파까지 보수대통합하려면 말이다.

경제·안보 불안 속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등을 거치며 정치적 양극화가 강화된 것이 최근 정치 상황의 배경이다. 우파도 강경해졌지만, 촛불 운동의 효과가 아직 지속되면서 반(反)우파 정서도 강력하다.

이 때문에 자한당은 지지율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과 민주당도 딜레마를 겪는 건 마찬가지다. 중도층의 반우파 정서가 우파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효과도 내지만, 자신들은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고 남북 화해 국면 효과가 떨어져 중도층 상당수가 우파로 기울면 민주당의 딜레마가 더 커진다.

그래서 여당이 과거 청산, 검찰 개혁 등 정치개혁에서는 자한당 등 구 여권 세력과 맞서면서 ― 가령 검찰총장에 윤석열을 임명한 것 ― 노동개악, 기업 규제 완화 등에서는 초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청문회 등을 빙자해 국회가 실질적으로 재가동되면 사용자 계급의 압박으로 국회가 열리는 맥락상 노동개악 전격 처리가 합의될 가능성도 커졌다.


“피아 식별”

최근의 공식정치 상황은, 2005년 개혁 배신과 포기로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급락하며 우파가 직접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며 세력을 회복했을 때와 다르다. 그때는 중도층이 한나라당(자한당의 옛 이름)으로 대거 돌아섰고 진보층 청년들은 대거 탈정치로 이동했다.

이런 차이를 낳은 가장 큰 요인은 촛불 운동의 효과와 노동운동의 상태 차이로 보인다. 2005년 당시 노동운동은 사기가 좋지 않았다. 민주노총 집행부 임원이 연루된 부패(사측과 부정한 거래)가 폭로돼 더욱 그랬다.

지금은 노동운동이 촛불 운동을 초기에 이끈 결과 조직과 의식이 성장하고 사기도 올랐다. 양 노총 모두 조직이 성장했는데, 특히 민주노총이 급속히 성장했다. 신규 조직 노동자들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약속 배신에 항의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 있다. 이 과정에서 더디긴 해도 정치의식도 조금씩 성장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황교안은 최근 최저임금과 민주노총을 한국 경제의 리스크로 지목하고, 리스크 해소를 하려면 여야가 “원팀”이 돼야 한다며 문재인에게 “피아 식별”을 똑바로 하라고 주장했다. 보수 매체인 〈헤럴드 경제〉는 19일자 석간에서 노동자 파업 보도 제목을 “文정부 밀려드는 ‘촛불청구서’”로 하고 기사 첫 문장을 “또 파업이다”로 삼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최저임금 동결로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파가 중도파 정부에게 좌와 우, 또는 사용자의 요구와 노동자·촛불의 염원 사이에서 편을 확실히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압박에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으로 화답했다.

문재인의 민주노총 탄압은 노동개악 저지 대정부 투쟁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투쟁 발목잡기이자 개악 강행 신호다. 김명환 위원장이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을 하면서까지 문재인 정부와 충돌을 피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무망한 기대였다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

이를 우파의 일방적 압력으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그렇게 보더라도 그토록 우파에 휘둘리는 정부라면 문재인 정부를 이용해 개혁을 얻는 것이 무망한 일임은 변함이 없다. 진실은, 노동개악과 강경 수사를 문재인은 애초에 주도해 왔다는 것이다. 경찰(검찰과 함께)은 최근 민주노총 임원과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남발해 왔다.

차이가 있다면, 우파는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우파가 문재인 정부를 혐오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도 촛불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우파에게 민주노총을 희생양으로 넘겨서 정권을 유지하고 재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맞서지 않고서는 우파에게도 맞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자한당 견제에만 힘쓰다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독립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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