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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끝난 철도 파업:
완강한 정부에 밀렸지만 철도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보여 주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 파업을 비난하며 반(反)노동 행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11월 23일 철도 파업 승리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이윤선

철도 노조 파업이 제한적이지만 효과를 막 내기 시작한 시점에서 돌연 종료됐다. 파업 돌입 5일 만이었다.

국토부 장관 김현미는 인력 충원 요구를 ‘물정 모르는 떼쓰기’라고 매도했다. 심지어 턱없이 부족하고 문제투성이였던 철도공사 측의 안조차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파업의 요구들은 하나같이 정부 정책과 직접 연관된 것이었다. 핵심 요구인 인력 충원 문제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교대제 개편(4조2교대로의 전환)과 관련된 쟁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면서 철도 노동자들의 요구도 벽에 부딪혔다.

SRT-KTX 통합 추진 약속은 여태 첫 발도 못 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민자 사업을 확대하고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SRT-KTX 통합 논의를 위해 발주된 연구 용역의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국토부가 비밀리에 이 연구를 종료하려 했다는 점이 최근 폭로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노동자들의 임금 요구(수당 체불 해결과 임금 인상)도 가로막혔다. 누더기가 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파산이 보여 주듯, 철도공사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합의조차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임금은 자동 인상분(호봉 승급분)을 제하면 고작 0.4퍼센트 올랐을 뿐이다. 노동자들은 수당 체불 문제를 일부 해결했으나 낮은 임금 인상률을 만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별로 얻은 것 없이 파업이 종료되자, 적잖은 노동자들은 불만족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핵심 요구인 인력 충원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와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으니 성과랄 것도 없다.

이처럼 정부가 완강하게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축하고 파업을 비난하고 나서자 노동자들은 크게 분개했고,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커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부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비정규직(자회사) 처우 개선 문제도 당장 손에 쥔 것이 없다. 게다가 직접고용 합의 이행에서도 전혀 진전이 없다.

부족한 연대

철도 노조 파업이 더 전진하지 못한 데는 최근 노동조합 운동 일반이 직면한 난점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초기에 다수 노조 지도자들은 개혁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통해 개혁을 일부 성취할 수 있다는 전략을 추구했다. 이는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 가동에 도움이 될 정도로 제한하거나 종속시키는 효과를 냈다. 그래서 번번이 투쟁을 확대할 기회를 유실했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운동 내에서 이에 대한 반발이 일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한 경사노위 참가 시도가 올해 초 무산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여름에도 비슷한 약점을 반복했다. 특히, 한·일 갈등과 조국 사태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행보를 취하지 않았다. 가을에 정부가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나선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그저 여야간 교착상태로 인한 개악 시도 좌절을 기대했다.

노동운동의 이런 약점은 철도 파업 연대를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됐다. 특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철도 파업을 노동개악 저지 투쟁으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철도 파업이 노동개악 저지 투쟁으로 이어질 듯했다면 정부는 둘 모두에 약간의 양보를 제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파업 여론이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도 민주노총이나 민중당, 정의당과 같은 대표적인 노동계급 조직들은 연대에 실질적이고 열의 있게 나서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도 그 시점에 정부(기재부 등)와 임금체계, 노동이사제 등의 의제를 다루는 교섭을 시작했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참여한 교섭은 최근 출범한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 논의와 병행되는 노정교섭으로, 정부로서는 공공부문 노조들을 대화 테이블에 묶어 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정부는 철도 파업에 상당히 강경하게 나올 수 있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그럼에도 철도 파업이 성과 없이 끝나는 게 예정돼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파업으로 대입 수험생들에 불편을 주고 한-아세안 정상회의 같은 국가적 행사를 망치려 한다’는 비난에도 노동자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 정부는 지소미아 협정 유지 방침을 발표해 상당한 대중적 불만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파업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아쉽지만 철도노조 집행부는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시작되는 날 파업을 종료해 버렸다. 아마도 파업을 지속해 정부와 크게 틀어지면 추후 협상 테이블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러나 노조가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를 내려놓으면 성과를 거두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제로 파업 종료 이후 국토부는 인력 충원 협의 약속에 대해서도 ‘노사가 내놓는 안을 보고 충원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향후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정부가 물러서지 않으면 다시 파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은 주머니칼처럼 언제나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체인력과 파업 효과

철도노조 집행부는 정부의 완강한 대응을 보면서 자칫 파업이 장기화되는 것 아닌가 하고 우려했을 수 있다.

실제로, 파업이 장기화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파업의 효과를 제약하는 대체인력(파업파괴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이는 그간 중요한 파업 때마다 빈번히 제기된 문제였고, 노동자들 사이에도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하는) 파업 효과에 대한 회의가 적잖이 퍼져 있다.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 때 군 인력의 대체인력 투입을 규탄하고 법률적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 군 인력 투입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도 모호한 판결을 내린 바 있어 노조에게 유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군 인력만 파업 파괴자 구실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체인력 투입을 실제로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와 사측이 공격을 퍼부을 테지만, 이는 그만큼 파업 효과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투쟁의 초점을 형성해, 연대를 끌어모으는 데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대체인력을 저지하는 행동은 노동자들의 투지와 결속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물론 이런 막중한 과제가 철도 노동자들만의 노력으로 실행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던져질 수 있다. 그리고 전체 노동운동이 달려들어야 실행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노동운동 전체의 차후 토론 과제로 남겨져야 한다.

비록 이번 파업이 아쉽게 끝났지만, 철도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투쟁 잠재력이 여전함을 보여 줬다. 이번 파업의 양상을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다음번 투쟁의 교훈으로 삼는다면, 앞으로 투쟁을 더 전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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