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항쟁:
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억누르려 하나 반발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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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항쟁 세력들이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투쟁을 재개하고 나섰다.
2월 29일 밤, 주룽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이선 로드 일대에서 수백 명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2019년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사건’* 6개월을 맞이해, 시위대는 지하철역 출구에 헌화대를 설치하고 경찰 폭력으로 부상당한 이들을 기렸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공공질서 교란’을 이유로 지하철역 출구에 놓인 꽃과 손팻말을 치웠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맞섰고, 경찰은 최루탄과 최루액을 뿌리며 해산에 나섰다. 경찰 폭력은 2019년과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홍콩 독립언론 〈입장신문〉 기자의 헬멧과 마스크를 강제로 벗기기도 했다. 심지어 시위대가 던진 생수병과 우산에 팔꿈치를 맞은 한 경찰이 권총을 뽑아 시위대를 겨누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115명을 연행했다.
이날 시위는 전날 홍콩 경찰이 민주 인사들을 체포한 것에 대한 항의의 의미도 있었다. 경찰은 2019년 8월 31일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빈과일보〉 창업자 지미 라이, 홍콩의 민주노조인 홍콩직공회연맹 주석(사무총장)이자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톈안먼 항쟁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단체) 주석인 리척얀,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전前 주석 융섬 등을 체포했다.
범민주 진영의 대표적 인물 하나인 앨버트 호 역시 체포될까 우려한다. 앨버트 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체포가 “지속적인 홍콩 탄압”의 일환이라며, “다음은 내 차례일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홍콩 야당을 탄압하고 침묵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다” 하고 비판했다.
경찰력 강화
홍콩 경찰은 송환법 반대 운동이 대중 항쟁으로 번지기 시작한 2019년 6월 초부터 2020년 1월 19일까지 모두 7143명을 체포했고, 시위 대열에 최루탄 1만 6000여 발을 발사했으며, 실탄도 19발 발사했다.
그것도 모자라 홍콩 경찰은 실탄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며, 고무탄·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을 발사하는 총)·테이저건(전기충격기)·그물총 등 다양한 시위 진압 장비와 심지어 장갑차까지 준비하는 등 무력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다.
홍콩 인권단체 ‘홍콩인권감찰’ 간사 로육카이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미 충분한 검거 수단을 갖춘 경찰이 새로운 장비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 [경찰이] 전기충격기를 사용하면 만성 심장 질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의 육·해·공군 합동 실전 훈련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에는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테러 훈련 장면, 홍콩 상공에서 헬기가 이동하는 장면 등이 포함돼 있다. 홍콩 항쟁 세력들에게 보내는 중국 정부의 협박이다.
캐리 람은 홍콩 경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콩 행정부 보안국이 2019년 12월 13일에 입법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6개월 동안 경찰 약 1만 1000명이 총 9억 5000만 홍콩달러(한화로 약 1428억 원)에 달하는 시간 외 수당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관 1명당 매월 1만 4000여 홍콩달러(약 216만 원) 꼴이다.
그래서 범민주 진영 입법회 의원들은 올해 5월에 있을 공무원 급여 인상안 심의에서 경찰을 별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콩 야당인 민주당 린줘팅 의원은 경찰에 초과수당을 지급하거나 급여를 인상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는 2020/2021년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경찰부문 예산을 2019년 대비 약 3배나 증액했다. 경찰 인력도 2500명 이상 늘려 총 3만 8000명으로 확대했다. 이는 캐리 람과 더 나아가 시진핑이 올해 벌어질 홍콩 항쟁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위기에 빠진 홍콩 경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홍콩 경제라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릴 지푸라기가 될 것이다.”(한 홍콩 사업가의 〈로이터〉 인터뷰 중)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엎친 데 덮친 격인 홍콩 상황을 잘 표현한 말이다.
중국과 서방 모두에서 자본가들과 언론들은 홍콩 항쟁 때문에 홍콩 경제가 추락했다고 아우성친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일부 줬다손 치더라도 이는 명백한 과장이다. 홍콩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2019년 이전부터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 홍콩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중개항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산업 구조를 보면 무역 및 물류업이 국내총생산(GDP)의 21퍼센트, 금융서비스는 17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관광업은 4.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는 2003년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위기보다 경제에 더 심각한 타격을 줬다. 코로나19 때문에 홍콩의 관광업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올해 1월 홍콩의 방문객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52.7퍼센트 급감했다. 홍콩소매업협회는 올해 상반기 소매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30~50퍼센트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결과 올해 홍콩의 개인 및 기업 파산 신청 건수가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홍콩 정부는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또 올해 9월에 있을 입법회 선거를 염두에 두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홍콩 정부는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만 홍콩달러(약 153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대략 710억 홍콩달러(약 10조 8800억 원)가 투입될 전망이다. 또 노동자들에게 근로소득세를 최대 2만 홍콩달러 한도 내에서 전액 감면해 줄 방침이다. 기업에게도 부양책을 내놓았는데, 이윤세(소득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면제해 주고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75퍼센트 감면하며, 200만 홍콩달러까지 저리로 융자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을 낮출 방안이나 청년 실업자들에 대한 지원 계획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측근을 전진 배치하는 시진핑
최근 홍콩과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하나는 1월 5일 홍콩 주재 중국연락판공실(중국 정부와 홍콩 특별자치구의 연락을 담당하는 홍콩 주재 중국 영사관 같은 기구, 이하 ‘중련판’) 주임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재경위원회 부주임이자 시진핑의 측근인 뤄후이닝이 임명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2월 13일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샤바오룽이 임명된 것이다.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중국 국무원 산하에서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기관이다. 따라서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이 중련판 주임보다 훨씬 중요한 직책이다.
시진핑이 홍콩 관련 책임자 둘을 교체한 것은 지난해 홍콩 항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전임자들에 대한 경질의 의미가 있다. 또 시진핑에 충성하는 당 관료들과 인맥 ‘시자쥔’을 전진 배치한 것이기도 하다.
뤄후이닝은 2016년에 ‘정치적 지뢰밭’으로 불리던 산시성 당서기를 맡아 산시성 재벌과 베이징의 정치 파벌이 뒤얽힌 복잡한 부패 스캔들을 신속하게 처리(즉 정적을 제거)한 공로로 시진핑의 신임을 받은 자다.
샤바오룽은 2012년 시진핑이 주석이 된 후 시진핑의 자리를 물려받아 저장성 당서기가 된 인물이다. 샤바오룽은 당서기를 지내며 2000여 곳이 넘는 교회 십자가를 철거하는 등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했고, 그 공로로 정협 부주석이 됐다. 항저우의 정치 분석가인 원커지엔은 이렇게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반대파와 교회를 대하는 그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불행해 했다. 샤바오룽이 3년 전[2017년] 저장성을 떠날 때 많은 이들이 기뻐했다.”
시진핑이 핵심 측근이자 강경파인 샤바오룽을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으로 임명한 의도는 명백하다.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앞으로 벌어질 홍콩 항쟁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중앙정부가 홍콩을 중시한다는 걸 보여 줬다”며 샤바오룽 임명을 환영했다.
코로나19 사태와 홍콩 항쟁은 모두 시진핑을 곤혹스럽게 하는 쟁점들이다. 홍콩에서는 시위가 다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코로나19에 대한 시진핑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리원량 의사의 죽음에서 드러나듯 코로나19는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요구를 부각시켰다. 시진핑 체제를 비판한 쉬장룬 칭화대 교수와 시민기자 천추스는 ‘연락 두절’ 상태고, 인권운동가 쉬즈융은 체포돼 있다.
시진핑은 자신을 비판하는 반대파들에게 재갈을 물리면서 자신의 친위대를 내세워 이번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시진핑의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억압적인 체제가 축적해 놓은 불만을 억누르는 것은 만만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