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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 :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은 이주민을 재난에 더 취약하게 한다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3월 20일 ‘코로나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주공동행동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3월 20일 ‘코로나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이주인권연대,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 주최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난민, 중국인·중국동포 등 이주민들이 코로나19 대책에서 배제되거나 여러 편견들로 고통받는 사례들을 모아 발표하기 위해서다.

이주민들은 코로나19 사태의 필수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질병의 특성, 확진자 수와 동선, 마스크 구입 방법과 개학 연기와 같은 각종 행정적 조처들이 제대로 번역돼 제공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예방수칙 정도만이 여러 언어로 번역돼 알려졌을 뿐이다. 고용허가제 송출 국가만 16곳이고 난민들 중에는 아랍어 사용자들이 있는데도, 그나마 제공되는 번역본은 영어와 중국어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의료서비스 전달 체계를 알지 못하면 번역된 글만 읽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정보들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주민들은 더 큰 공포심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고용주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불안한 마음에 귀국을 서두르는 것을 이용해 체불임금이나 퇴직금 등을 “후려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면서 공적 마스크 판매 대상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을 제외했다. 이 때문에 미등록 이주민, 유학생, 난민신청자, 체류기간 6개월 미만의 이주민 등 전체 이주민의 약 절반이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 설령 자격이 있더라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대리구매를 해 줄 가족도 없는 이주노동자가 평일에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조처가 방역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들을 공장에 있는 기숙사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사례도 많았다. 충분한 위생물품과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강제로 가둬놓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외출 자제를 권할 수는 있지만 확진자나 의심자도 아닌데 강제로 이동을 막는 것은 인권침해다. 발표자의 사례 수집에 응한 한 이주노동자는 “어차피 한국사람들은 다 출퇴근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만 막고 있어서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 종속시킨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한 이주노동자는 “성실근로자로 다시 [한국에] 오려면 회사가 재고용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서 공장에서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성실근로자 제도’는 고용허가제 체류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고 고용주가 재고용 하면 다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다.)

경제적 타격

이주민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휴업이나 경제활동 위축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귀화자 등이 취업한 직종은 내국인보다 상용직 비중이 월등히 낮고 임시직·일용직 비중이 훨씬 높았다. 서비스업 종사자 비중도 내국인보다 높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는 “당장 다문화 강사 활동을 하는 이주여성들은 유치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개학 연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출근해야 하는데 개학 연기로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허오영숙 대표는 이주민의 경우 “돌봄을 나눌 네트워크가 훨씬 취약할 수 있다” 하고 지적했다.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김영아 대표는 “2월 말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위축[되면서] 한국 노동시장 구조에서 가장 밑에 있는 난민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취업 제한과 고용 불안정으로 경제적 곤란을 겪던 난민들의 빈곤 위기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는 취업을 하려면 일자리를 구한 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방문해 취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실업과 이직이 잦아지면서 그때마다 취업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발표자들은 고용노동부가 시행 중인 가족돌봄휴가 지원금, 서울시가 발표한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등 생계 지원 대책에 이주민들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주민도 이런 정책들의 대상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한편, 중국인·중국동포들은 코로나19 확산에 책임이 있고 잠재적 전파자라는 편견으로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직후 중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건설, 가사도우미, 간병인, 식당 등 일하는 곳에서 그만둬야 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또 “그동안 짱깨, 다문화라고 불리던 [중국동포] 아이들이 이제는 ‘코로나’로 불리면서 놀림받고 있[다]”고 한다.

신뢰할 만한 공공 방역·의료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전염 위험을 피할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내맡겨진다. 그러면 타인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기 쉬울 것이다. 따라서 집권 이후 공공병원을 단 한 곳도 늘리지 않는 등 공공 의료체계 강화를 외면한 문재인 정부는 일각에서 중국인·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이 확산된 것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방역 실패의 책임을 가리기 위해 신천지 마녀사냥을 벌인 것이나 미래통합당과 〈조선일보〉 등 우파가 정쟁에 이용할 목적으로 ‘중국인 입국 금지’ 등을 표지로 내세운 것도 전염병 확산을 특정 집단의 책임으로 여기는 태도를 고무하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인종차별적 정책이라는 ‘기저질환’

한국의 이주민은 250만 명이 넘는다. 정부는 노동력과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필요 때문에 이주민 유입을 꾸준히 늘려 왔다. 장기체류하는 이주민의 비율도 점차 커졌다. 한국 정부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과 개입 때문에 전 세계 난민이 늘어, 한국으로 유입되는 난민도 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인종차별적 정책들로 이주민의 권리를 빼앗아 왔다. 또한 이주민의 안정적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과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례 발표에 앞서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건강권이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이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재난이 닥치자 훨씬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이라는 ‘기저질환’이 이주민들을 코로나19 확산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내국인 노동자, 서민들의 안전과 건강에도 해로운 일이다.

따라서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들에 반대하고 코로나19 방역·생계 지원 대책에서도 이주민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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