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노동자 조건 지키려면 타협하지 말고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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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팀] 민주노총 집행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6월 말까지 합의 타결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위한 길이라고 한다. 급기야 일주일 전인 6월 18일에는 타결을 촉진하기 위한 양보안까지 내놓았다. 〈노동자 연대〉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을 때부터 그것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는 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글의 필자 김하영 운영위원은 이 점이 점점 분명해져 왔다며, 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투쟁해야 한다고 매우 강조한다. 노·사·정 타협(거래)이 아니라 투쟁 — 그것도 형식적인 것이 아닌 — 을 통해서만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킬 수 있다. 이 글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회의 공식 입장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이하 노사정대표자회의) 2차 본회의(6월 18일)에서 정세균 총리는 건배주로 ‘동몽’(同夢)을 내놓았다. 그 청주의 명칭이 뜻하는 것은 “사람 사이 소통이 되고 하나가 되어 연결하는 꿈”이라고 한다(국무조정실).
그러나 노·사·정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출범(5월 20일) 이후 줄곧 ‘동몽’이 아니라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어 왔다. 우선, 사용자 측은 이번 사회적 대화의 핵심이 기업 살리기라는 점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유지된다며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라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추가적인 유동성(자금) 지원, 각종 세금과 전기·시설 사용료의 유예 또는 감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원받는 기업이 해고를 못 하게 하자는 노동계 요구에는 콧방귀를 뀌고 있고, 고용 유지를 위한 재원도 보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사용자 측은 노동력 착취를 증대시킬 수 있는 조처들도 요구하고 있다. 임금 삭감, 탄력근로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핵심이다. 고용 위기를 이용해 임금을 깎고, 기업 사정에 따라 사용자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에 대한 저항을 방지 또는 약화시키고자 파업 자제 합의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노사정대표자회의 논의 결과를 들여다보면, 정부는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에 대해 한결같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예산 배정을 외면하고 있고, 상병수당 도입도 예산 부담이 너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내뱉은 전국민고용보험에 대해서도 정부 기여(일반회계)를 확대하지는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해 번지르르한 말은 쏟아 내면서 결코 돈은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임금 삭감, 노동시간 유연화 등의 쟁점을 놓고 확고하게 사용자 편을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총리는 배구선수 김연경 씨의 연봉 삭감을 칭찬해 정부 측의 의중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정부는 사기업들이 요구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이미 공공부문에서 착수한 상태다. 또, 탄력근로제 개악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동안에도 정부는 기업들을 위해 특별연장근로를 거듭 확대해 줬다.
착취 증대에 필사적인 사용자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된 지난 한 달 동안 이러한 정부·사용자 측 입장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4월 18일 정세균 총리와 만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비상협의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래 뻔질나게 정부 고위 관료들을 만나 대화를 했음에도 말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자부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등과의 면담 결과를 한결같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고했었다. “적극적인 노정 간의 협의를 하겠다고 화답했다”거나, “민주노총 의견을 적극 수렴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식으로 말이다. 장관 면담을 보고하는 성명들은 대개 “노사정 간의 연대와 협력”을 약속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악들이 착착 진행됐다. 정부는 코로나 상황과 방역체계 확충을 명분으로 의료영리화의 대표 정책인 원격의료 도입에 탄력을 보탰다. 공공부문에서는 직무성과급 도입과 수당삭감 공격이 진행됐다.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 의제를 띄워 포퓰리즘적 환심을 끌고는 실제로는 지난해보다 후퇴한 법안을 내놓았다. 고용보험위원회의 사회적 합의(2018년)를 정부가 버젓이 어긴 것이다. 노동계가 반대해 온 노조법 개정안도 또다시 입법예고했다.
물론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런 문제들을 비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결론은 사회적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경총 등이 탐욕스런 정책 건의를 내놓았을 때도 민주노총은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고는, 결국 “사회적 대화[에]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하라”고 촉구했다. 기승전-대화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스스로 말했듯이, 열세 차례 회의에도 아무 진전이 없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의 공전(헛된 진행)은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고용과 소득 보장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 사용자와 정부 측을 좋은 말로 설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 줬다.
지금 사용자들은 경제 침체와 세계 질서 불안정에 따른 위기감이 크기 때문에, 전에 했던 양보마저 도로 뺏으려 필사적이다.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려면 그 어느 하나도 투쟁 없이 얻어 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로 무언가 얻을 수 있다고 조금치라도 정말로 기대했다면 순진하고 안이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코로나19 위기와 정부·여당의 총선 승리 이후 마치 사회개혁을 위한 전환의 계기라도 마련된 양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 냈다. 마치 그전 문재인 정부 2년의 기억을 모두 상실한 듯이 말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금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가의 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국가는 기업을 위해 돈을 쏟아부으며 그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도록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도 경제 위기 시기의 자본주의 국가 운영자로서 이런 방침이 확고하다.
이 점을 직시하고 폭로하기보다 오히려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적 언사를 구사하면서 정국 주도권 쥐는 것을 도와주는 셈이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수동화시키는 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부와 사용자들은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 붙잡아 둘 가치를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양보안의 수혜자는 취약층이 아니라 사용자와 정부다
노사정대표자회의의 공전은 투쟁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요구를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준 것이지만, 양대노총은 엉뚱한 처방을 내놓았다. 빠른 타결을 촉구하며 선제적 양보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두 노총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으로 연대기금을 조성해 취약계층 지원에 쓰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았음에도 사용자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노동운동 일각에서 통용되던 주장, 즉 노동조합의 선제적 양보가 사용자 측의 양보를 끌어내리라는 기대는 경제 침체에 직면해 이윤 지키기에 혈안이 된 사용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서양 속담이 더 알맞다. “악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주면 악마는 곧 네 몸 전체를 끌어가려 할 것이다.” 사용자 측은 임금과 휴업수당 삭감, 탄력근로제 확대 같은 더 큰 양보를 압박할 뿐 아니라, 양보 정신의 확산도 노린다. 민주노총이 선제적 양보안을 낸 와중에 현대차노조가 품질혁신에 협조하겠다며 노사 공동선언을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생산성 향상 협조”는 사용자 측이 노사정대표자회의 논의 의제로 제기한 것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선제적 양보안은 그 내용이 노동운동의 단결에 나쁜 효과를 미친다는 점에서 한층 심각하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취약한 노동자들에 대한 계급연대, 사회연대 차원에서 양보안(고용보험료 인상, 연대기금 조성)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규직 양보에 기초한 연대기금안은 오히려 노동계급 내부에 반목을 부추기기 쉽다.
그런 방식은 취약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이 좋은 조건을 누려온 정규직 탓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강화한다. 정규직 노동자는 취약노동자의 존재가 자기들의 조건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라고 여기게 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이처럼 노동계급 내 부문간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 한다.
그런 양보안으로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뿐 아니라 실질적인 득을 얻는 것도 실은 취약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와 정부다. 애초 이들이 냈어야 할 비용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신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 확대에 따른 재원 확충을 위해 고용보험료 인상을 양보한다면, 그것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 일이 아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제 몫의 보험료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재원 문제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들이 사용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고용주 기여분을 회피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양보안은 그 구멍(빈 자리) 메우기를 돕겠다는 것으로, 그 효과는 기업과 정부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최근 실업급여 ‘개혁’ 방향의 세계적 추세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확대하되, 가입자들에게 부담을 나눠서 지게 하는 것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사용자들에게 기여를 강제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말이다. 그러니 가입자들에 대한 혜택은 약화되기 십상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정부 연구기관들은 이런 개악 방향을 벤치마킹하려 하는데(가령 프랑스 마크롱의 개악안),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취약노동자들은 실질적 혜택을 받지도 못하면서, 도움에 의존하는 집단이라는 인상만 키우게 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규직 조합원 조건 지키기를 회피하고 기업과 정부에 양보하는 것에 그럴듯한 명분이 됨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자 내부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정규직 조건 지키기를 회피하거나 양보한 조처들은 결국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흔히 이어진다. 이것은 이번에는 조직노동자 이기주의론의 자양분이 된다. 악순환이다.
진정으로 노동계급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규직 노동자와 취약노동자들이 단결해 공동의 적인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것이 취약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진정한 길이기도 하다. 취약노동자들은 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조직하고 싸움에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투쟁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연대를 제공할 수 있다.
양보 타결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 타결 추진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해야 한다. 지금 노·사·정 합의로 도출될 수 있는 안은 잘해 봤자 두루뭉술하게 ‘00 추진 노력과 고통 분담’을 명시하는 것이기 쉽다. 그것은 이후 이어질 산업·지역 사회적 대화에서 더한층의 노동자 양보를 압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양대노총의 선제적 양보안을 넘어선 노동조건 양보가 추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합의로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지적했다. 또 다른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조건 악화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합의한 양보와 관계있음을 알게 되면서 민주노총에 불만을 갖게 될 수 있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계급 대표성을 획득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투쟁을 해야 할 때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미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그러는 동안 개악이 진척됐고, 세력관계는 노동자 측에 더 불리해졌다. 대화 테이블에서 시간을 질질 끌면 이런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협상에 미련을 둔 채 단순한 타결 압박용으로 투쟁을 자리매김 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투쟁은 협상을 위해 수위가 조절돼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힘있게 전개되거나 탄력이 붙기 어렵다. 사용자와 정부 측에 별로 큰 위협이 안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잘해 봤자 양보 교섭인 상황에서 그런 타결을 성사시키라고 압박하는 투쟁을 위해 조합원들이 큰 열의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과 산하노조의 몇몇 지도자들은 민주노총 양보안을 실제로 비판한다.(경사노위 참여 반대 기류가 만만찮게 형성됐던 2018년 말~2019년 초와 달리, 현재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은 거의 균열 없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추진에 힘을 쏟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런 비판이 투쟁 호소로 이어진다면 노동자들의 관심과 투지를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좌파적 비판이 주로 하반기 노조 임원선거 준비로 방향이 맞춰진다면 실질적인 저항의 초점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주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장 동력 부재를 들먹이며 저항 가능성에 회의를 나타낼지 모른다. 물론 1~2년 전에 비해 기층의 수동성이 커진 듯하지만 그것은 주로, 사회적 대화에 목을 매 온 현 집행부 방침과 지향성이 낳은 효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활력 부족과 모순이 수많은 노동자들을 큰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지금, 특정 계기와 맞물리면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투쟁적 활동가들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양보 협상이 별 반발 없이 추진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실질적 저항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 문제도 돌아보면서 정치적 교훈을 얻고 운동의 쇄신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의 핵심은 분열을 극복하고 노동계급을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김하영(노동자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