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 :
택배사가 야기하고 문재인 정부가 방조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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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택배·배달 업계는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1명이 사망했다. 10월 들어서만 4명(택배 기사 3명, 택배 분류작업자 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3명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심야 노동에 따른 과로사, 1명은 저임금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다.
연이은 택배 노동자 사망은 장시간·중노동,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공짜 노동’ 수행, 특수고용·단기계약 노동자로서 겪는 차별과 권리 박탈 등 온갖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일들이 이미 충분히 지적됐고 방치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견됐음에도, 택배사와 정부는 책임을 외면하고 약속한 대책조차 지키지 않았다.
지난 9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이하 실태조사)를 보면, 택배 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71.3시간을 일한다. 주 52시간을 훌쩍 뛰어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라 노동시간 제한 적용을 받지 못한다. 장시간 노동의 주범은 분류 작업(근무시간의 43퍼센트)인데, 배달 수수료만 임금으로 받을 뿐 분류 작업은 아예 ‘공짜 노동’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늦은 밤, 심지어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다. 10월 8일 사망한 CJ대한통운 노동자는 당일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나가며 아버지에게 “오늘은 더 늦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배달하던 차량에서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10월 12일 사망한 한진택배 노동자는 숨지기 나흘 전 동료에게 “어제도 집에 도착 [새벽] 2시, 오늘 [새벽] 5시 …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늘어나는 물량과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책으로 분류 인력 충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추석 전 분류 작업 거부를 예고했었다. 택배사와 정부는 분류 작업 등에 인력 충원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택배사들은 분류 작업에 2067명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투입한 인력은 360여 명에 불과했다. 정부는 택배사들의 말만 믿고 “[인원 투입] 목표량 대비 90퍼센트 이상의 인원 및 차량이 추가 투입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감독하기를 외면했다.
지난 8일과 12일에 사망한 노동자들이 근무한 터미널에는 분류 작업 인원이 단 한 명도 충원되지 않았다(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노조).
노동자들은 그동안 피로가 누적된 데다 추석 기간 폭증하는 물량에도 인력이 충원되지 않자 훨씬 힘든 상황에 처했다. 특히 추석 이후인 10월에 노동자 과로사가 급증한 데에 약속을 방기한 택배사와 정부가 명백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키지 않은 인력 충원 약속
10월 20일 “억울합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로젠택배 노동자의 사례는 ‘무늬만 사장’인 특수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을 여실히 보여 준다.
고인은 유서에서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구입에 전용번호판[구입]까지. 그러나 현실은 … 차량구입 등 투자한 부분이 있음에도 적은 [배달]수수료에 세금 등 이것저것 빼면 한 달 200만 원도 벌지 못[한다]” 하고 절규했다.
실태조사를 보면, 택배 노동자들의 월 순소득은 234만 원에 불과하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월 수입에서 대리점 수수료, 차량 구입비와 관리비, 각종 업무 관련 경비 등 본인 부담 비용이 절반에 가깝다.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택배사들이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임금인 배달 수수료는 십수 년간 동결된 상태다.
또한, 고인은 배달구역을 얻는 대가로 대리점에 권리금 300만 원과 보증금 500만 원을 내야 했다. 저임금과 힘든 업무로 일을 그만 두고 싶어도, 후임자를 구하지 못 하면 권리금과 보증금을 잃기 때문에 울며 격자 먹기로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구조였다. 고인은 배달차량에 기사를 모집하는 구인 광고물을 부착하고 다녔다.
택배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계약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고용·산재 보험 가입은커녕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택배업계 1위이자 올해 5명이나 사망한 CJ대한통운은 법원 판결조차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도 특수고용 노동자 지원책과 노동자성 인정을 회피하고 있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각종 사회보험을 예외 없이 즉각 적용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허송세월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업주들은 허술한 법망을 악용해 보험료 납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10월 8일 사망한 CJ대한통운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가 사업주에 의해 대필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애초에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규정하고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 개정에도 미온적이다.
10월 들어 잇따른 택배 노동자 죽음에 대해 사회적 공분이 크게 일자, 정부와 택배사는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한다. 문재인은 지난 9월에 이어 10월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에도 택배 터미널과 대리점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10월 22일에 분류 작업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와 택배사는 전에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었다. 노동자 사망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와 택배사가 내놓은 대책들이 알맹이가 없어 부실하거나 미흡한 개선책조차 공문구에 그쳤기 때문이다. 심야 노동을 금지하고, 물량·구역을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요구 수준에 못 미치는 인력 충원 약속조차 사기로 드러났다.
따라서 죽음의 행렬이 지속되는 것을 당장 막으려면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분류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사회보험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