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사와 정부의 외면 속 계속되는 과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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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고강도 노동, 과로사 문제가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택배사들은 역대급 특수를 누렸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113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111퍼센트 폭등했다.
그런데도 택배사들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 속에서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약속한 분류 인력 6000명 투입 비용(약 750억~900억 원)을 아까워하며 노동자들을 과로사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거리 두기 단계 강화로 택배량은 더욱 늘었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불만도 가중되고 있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택배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50퍼센트 넘게 폭증했다. 그 한 달 동안 택배 노동자 4명이 연달아 쓰러졌다. 안타깝게도 그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무려 16명이나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노동자들이 항의에 나서자, 택배사들과 정부는 지난해 추석을 전후로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었다. 택배사들은 장시간 노동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 작업에 인력을 투입하고, 당일 배송 강요와 밤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책을 발표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을 뿐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죽음의 ‘새벽 배송’
주요 택배사들(CJ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택배)은 인력 확충을 약속한 만큼도 안 했다. 매우 적은 인원만 더디게 투입하고 있어 과로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심지어 CJ대한통운 사측은 분류 인력을 투입할 때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원청이 인건비의 일부를 대리점 소장에게 책임지라고 떠넘기고, 대리점 소장은 자기 현장에서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직접 돈을 갹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인력 투입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곳에는 1월 11일에야 처음 분류 인력이 투입됐는데, 몇 명 안 돼요. 그러니 분류 작업하는 분들도, 택배 기사들도 일이 많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심야 배송을 중단한다고 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에요. 회사가 밤 10시 이후 배달 기입만 전산으로 막고, 실제로 일은 그대로 다 하고 있어요. 10시 전에 배달한 것처럼 먼저 전산 기입을 해서 고객에게 ‘배송 완료’ 문자만 먼저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 고객들이 ‘왜 물건이 없냐?’고 전화를 걸어 와 설명하느라, 시간도 까먹고 스트레스만 늘었어요.”
실제로 지난해 12월 23일 배송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한진택배 노동자는 새벽 6시까지 배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 노동자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정부는 택배사들의 약속 위반, 사기극을 방치하며 어떤 제재도 취하지 않고 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택배사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정부와 민주당은 1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킨 택배 산업 관련법(생활물류법)에서도 원안에 있던 인력 충원 관련 조항을 폐기했다. 전국택배노조 등은 현재 ‘공짜 노동’으로 택배 노동자들이 떠맡고 있는 분류 작업을 사측이 책임져야 할 몫으로 법률에 명시해 달라고(택배 분류 작업의 사측 책임) 요구했었다. 그러면 인력 충원을 강제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그러겠노라 약속했지만, 택배사들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대며 결국 해당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
정부는 대신 정부·여당 주도로 택배 노·사가 참가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미진한 부분을 논의해 나가자고 노조를 설득했다. 지난해 12월 초 구성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해 논의를 이어 왔지만 택배사들과 정부 모두 무책임한 태도로 인력 충원을 외면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택배사가 또 뒤통수를 쳤고 정부도 책임이 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가 진전될 줄 알았는데, 노조가 안이하게 생각했던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밥그릇은 싸움 없이는 얻어낼 수 없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투쟁 채비에 나서다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는 “이대로는 안 된다”며 투쟁 채비에 나섰다. 노조는 1월 10일 대의원대회에서 분류 인력의 즉각 투입과 인건비 전액 사용자 부담, 원청 택배사와의 직접 교섭 등 요구를 걸고 투쟁을 결의했다. 앞으로 택배사들과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배달 물량이 폭증하는 1월 말 설 명절을 앞두고 전 조합원 파업을 하기로 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결속시키며 투쟁과 조직을 조금씩 확대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이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 업무를 도맡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그 속에서 불거진 장시간 노동, 과로사 문제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고, 처우 개선을 위한 요구와 투쟁도 지지를 얻었다.
지난해 10월 말 노조 결성 후 첫 투쟁에 나선 롯데택배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싸워, 파업 사흘 만에 수수료(임금) 인상과 부당한 벌금 제도 폐지 등을 따냈다.
한진택배 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하고 조건 개선 투쟁에 나섰다. 최근 전국택배노조 이천한진지회는 현장 투쟁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분류 인력을 늘릴 수 있었다. 조합원에 대한 부당 해고도 철회시켰다. “조합원 수도 계속 늘고 있어요. 매주 새롭게 지회가 생겨나고 있고요.”
지금 다시 투쟁 채비에 나선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임현우 전국택배노조 이천한진지회장은 말했다. “대의원대회 분위기는 고무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요구를 지지해 주는 만큼, ‘한번 해 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우체국 위탁 택배 노동자도 쟁의 결의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도 택배 노동자들과의 약속을 어기며 처우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 위탁 택배 노동자들은 이에 불만을 터뜨리며 민간 택배 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우정본부는 그동안 정규직 집배원 인력을 묶어 두고 특수고용직인 위탁 택배원을 늘려 왔다. 인건비를 최소화하려고 위탁 택배원의 임금 수준을 억제하면서 말이다.
위탁 택배원에게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고, 그조차 일정 수준의 인건비를 넘기지 않으려고 물량을 제한적으로만 준다. 그러면 (월급제로 임금을 받는) 정규직 집배원들은 인력 부족 속에 넘쳐 나는 우편물을 처리하느라 허덕인다.
“택배 물량은 늘었는데, 우정본부는 위탁 택배원들과 약속한 기준 물량(하루 190건)조차 준수하지 않고, 남는 물량을 집배원들에게 전가합니다. 집배원들은 힘들고 위탁 택배원들은 소득이 줄어들게 되죠. 공짜 노동인 분류 작업도 더 악화되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비용 절감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윤중현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우체국본부장)
전국택배노조 우체국본부는 1월 11일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1월 말 전국택배노조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