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살인, 국가 그리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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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올해 7월부터 연방정부 차원의 사형 7명을 집행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분출하자, 17년 만에 연방정부 사형을 재개한 것이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석방된 무고한 사형수는 172명이다. 그중에는 20~30년 동안 사형수였던 사람도 많다.
끔찍한 경험은 평생 그들을 괴롭힌다. 최악은 이미 사형이 집행된 경우다. 그러면 누명을 벗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20세기 미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가장 어린 사형수는 조지 스티니 주니어다.
1944년 6월 16일, 14세의 이 흑인 소년은 체포된 지 83일 만에 전기의자에서 처형됐다.
11세와 7세의 백인 소녀를 살해한 혐의였다.
흑인 소년은 부모도 변호사도 없이 혼자 심문을 받아야 했다.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독방에 수감됐다. 부모는 아들을 딱 한 번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체포되자, 아버지는 해고됐다. 폭도들 때문에 가족 모두 마을을 떠나야 했다.
유일한 증거는 “자백”이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자백”이었고, 기록되지 않았으니, 서명도 없었다.
자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경찰들이 재판에서 증언한 게 다였다.
소년은 무죄를 입증해 줄 증인을 부를 줄도 몰랐고, 항소권도 몰랐다.
방청객은 1000여 명의 백인이었다. 배심원은 전부 백인 남성이었다. 가족들은 법정에서 쫓겨났다.
주의회 선거에 출마하는 변호인은 아무것도 변호하지 않았다. 증거 부족과 “자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증인도 부르지 않았다. 소년의 가족도 인터뷰하지 않았다(경찰도 그랬다). 검찰 측 증인을 반대 신문 하지도 않았다. 항소도 하지 않았다. 사형 집행의 유예도 요청하지 않았다.
재판은 고작 2시간 걸렸고 배심원 심의에는 10분이 걸렸다. 유죄가 판결됐고 전기의자 처형이 선고됐다.
반나절 만에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노조들, 교회들, 흑인인권단체(NAACP)가 항의 캠페인을 벌였다.
자비를 청원하는 수백 통의 편지와 전보가 주지사에게 배달됐다. 그러나 상원의원에 출마하는 주지사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그 애가 큰 여자애를 강간하려고 작은 여자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큰 소녀를 죽였고 그 시체를 강간했습니다. 20분 후에 돌아와 다시 강간하려고 했지만 시신이 너무 차가웠습니다. 이 모든 건, 그 애가 자백했습니다. ... 하나 더, 만약 경찰들이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유색인종들이 이 소년을 린치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검시관은 성폭행 가능성을 부인했다.
소녀들의 시신은 배수로에서 발견됐다. 키 150센티미터에 체중 43킬로그램의 소년이 10킬로그램쯤 되는 모종의 둔기를 휘둘러 소녀들을 두들겨 패고,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피칠갑의 시체 둘을 배수로까지 옮겨 놓는 게 가능할까.
무엇보다 그날 내내 소년은 그의 형제자매와 함께 집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실들보다, 그들이 남부의 가난한 흑인이었다는 사실 하나가 가장 중요했다.
사형에 쓰이는 전기의자는 성인용이었다. 14세의 조지 스티니 주니어에게는 너무 컸다.
양팔, 양다리, 몸통을 의자에 고정해야 하는데 갸날픈 그의 팔다리에는 가죽끈이 너무 헐거웠다. 사형을 집행하는 백인 어른들은 즉석에서 구멍을 새로 뚫었다. 키가 작아서 커다란 성경책을 의자 위에 놓고 앉게 했다.
전기의자의 스위치가 켜지자, 첫 번째 2400볼트가 소년의 몸을 강타했다. 충격 때문에 너무 큰 마스크가 얼굴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겁에 질린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 번째 1400볼트, 세 번째 500볼트가 이어졌다.
가족은 테러가 두려워, 묘비도 없이 그를 묻어야 했다. 여동생은 그의 어머니가 다시는 웃지 않았다고 전했다.
형제자매와 시민권 운동가들이 그의 유죄 판결을 뒤집는 데, 무려 70년 274일이 걸렸다.
그들은 재판의 정보를 계속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지 스티니 주니어에 대한 유죄 판결은 2014년 12월 17일, 마침내 기각됐다.
사회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면, 형벌도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참말이다.
가난할수록, 천대받는 인종이거나 난민이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등 취약한 이들일수록 경찰, 검찰, 법정, 출입국관리소에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230만 명이 넘는 남성, 여성, 청소년이 자물쇠와 열쇠 아래 있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5퍼센트도 안 되지만, 세계 교도소 인구의 4분의 1이 있다.”(무미아 아부 자말, 《교도소의 변호사 : 죄수를 변호하는 죄수 대 미국》)
1972년에는 미국의 수감자가 20만 명이었다. 지금은 1980년에 비해 사소한 “약물 사범들”도 폭증했다.
좀도둑질이나 사소한 재산 침해 행위로도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지금까지 3000여 명의 청소년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까지 미국에서 366명의 청소년이 사형 집행됐다.
사형은 최악이다. 어떤 식으로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형수의 52퍼센트(2019년)가 흑인이다(미국 인구의 13퍼센트가 흑인이다).
사형 폐지 운동가인 헬렌 프리진 수녀는 자신의 책 《데드 맨 워킹》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사형은 가난한 사람들의 형벌입니다.”
사형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형(capital punishment)은 자금(capital) 없는 사람들이 받는 벌(punishment)이다.”
사형이 폭력과 살인을 억제한다는 가설은 터무니없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과 유엔의 결론조차 명백하다 — 사형은 살인을 억제하지 않는다. 사형은 폐지돼야 마땅하다.
오히려 불평등과 폭력이야말로 동반 상승하고 동반 하락한다. 폭력의 수준은 불평등이 감소할수록 낮아진다.
살인이 증가하려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더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살인의 증감은 불평등과 가난, 차별과 천대의 증감과 관계 깊다.
살인과 폭력을 줄이려면, 가난과 불평등과 차별과 천대와 소외가 줄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오히려 고대부터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을 사형을 통해 제거해 왔다.
로마는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군 6000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반면, 야만에 직면한 사람들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은 투쟁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에도 그러하다.
1886년 5월 미국 전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그러자 정부는 ‘헤이마켓 광장 폭탄 사건’을 빌미로 8시간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조작이 의심되는 이 사건은 강경 탄압의 빌미가 됐다.
국제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1887년, 노동운동 지도자 4명은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최후까지 아무도 굴복하지 않았다. 세계 노동절은 바로 이들의 죽음을 기리면서 시작됐다.
어거스트 스파이스의 최후진술은 수많은 투사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됐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그러면서도 해방되기를 애타게 원하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래,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땅 밑의 불이다. 당신이라도 그 불을 끌 수 없으리라.”
대단히 전투적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도 정부의 집중 탄압을 받았다.
1915년 11월 IWW의 노동시인 조 힐이 미심쩍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국제적인 항의 편지 1만 통이 주지사에게 전달됐지만, 기관총을 든 경비원들이 감방을 지킨 채, 총살형이 집행됐다.
조 힐은 IWW 창립자 “빅 빌” 헤이우드에게 글을 남겼다. “슬퍼하느라 시간 낭비마시오. 조직하시오!”
이탈리아의 붉은 2년, 1920년에 이탈리아계 이주 노동자이자 아나키스트 투사들인 니콜라 사코와 바톨로미오 반제티는 날조된 살인 혐의로 미국에서 사형수가 됐다.
7년 동안 석방 투쟁을 감옥에서 전 세계로 확산시킨 그들은 1927년 8월, 다시 사형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 지지자들이 나섰고, IWW는 3일간의 총파업을 호소했다. 광부들이 화답해 파업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들과 도쿄, 시드니, 멜버른,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부에노스아이레스, 두바이, 요하네스버그에서도 항의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경찰이 폭행과 체포로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군대가 감옥을 에워쌌다. 사코와 반제티는 전기의자에서 처형됐다.
1만여 명이 조문했고, 장례 행렬만 수천 명이었다. 20만 명 이상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50년이 지난 뒤, 사코와 반제티의 무죄가 인정됐다.
물론, 미국 국가는 재판도 없이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의 투사들, 흑인들,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거리와 파업 현장, 거주지에서 경찰과 주방위군(그리고 자경단)에게 살해됐다.
동시에, 미국 국가는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날조된 범죄 혐의를 씌워 탄압했다.
그러면 국가는 국면을 전환시킬 기회를 얻고, 시간을 벌고, 운동의 틈새를 비집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론이 동요하거나, 운동이 주춤하거나, 약화되거나, 분열하거나 겁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71년 폭로된 미국연방경찰(FBI)의 코인텔프로 작전은 흑인, 원주민, 환경단체, 좌파 조직 등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고 파괴하기 위해 FBI가 사용한 온갖 불법 공작들이다. 거기에는 범죄와 살인 누명 씌우기도 있다.
1970년 흑표범당의 지도자 제로니모 프랫이 날조된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거짓 증언에는 FBI의 첩자가 동원됐다.
그러나 사건 당시 프랫은 34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석방되기까지 27년이 걸렸다.
1982년 그의 동료 무미아 아부 자말이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됐다. 국제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항소, 재심의 신청을 수차례 거부했고 항소 법원의 이의 제기도 거부했다.
2011년 검찰은 더는 사형 집행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고 무미아는 거의 40년 동안 여전히 투옥돼 있다.
다른 국가들도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는 1997년까지 총 919명을 사형했고 그중 249명 즉, 27퍼센트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 때문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핍박했다. 이승만은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사형시켰다.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으로 재판 후 불과 18시간 만에 8명을 사형시켰다.
한국 정부 역시 알량한 사법 절차 없이도 수많은 투사를 비롯해 거의 수십만 명을 4.3항쟁, 여순항쟁, 그리고 한국 전쟁 기간 보도연맹 사건 등에서 학살했다. 나중에 광주항쟁에서도 물론이다.
이러한 국가의 학살과 “사법살인”의 효과는 단지 제거된 반란자들이나 조직에 그치지 않는다.
광범위한 공포와 통제의 효과를 낸다.
예컨대 1997년 12월 30일 법무부는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 의지 표명,” “법의 엄정함에 대한 경각심 고취,” “사회 기강을 새로이 확립”하기 위해 23명을 사형시켰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가의 합법적 살해 목록에는 사형 말고 다른 방법들도 있다.
국가의 무장조직과 비밀조직들은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공격한다.
올해 미국에서 명확히 드러났듯이, 경찰들은 주로 가난한 유색인종들을 살해한다.
브라질에는 사형이 없다. 마지막 사형은 150년 전에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 경찰은 빈민가를 습격하고 사람들을 살해한다. 2019년 리오네자이루에서만 1814명이 경찰들에게 죽었다. 주로 흑인들이었다.
중국 정부는 매년 수천 명을 사형 집행한다. 공정한지 알 수도 없다. 중국 경찰의 사살도 마찬가지다.
진지한 좌파라면, 이런 사회가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분간해야 한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중국은 시작부터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였다.
대량 살상과 대량 학살, 모두 국가가 자행한다. 국가가 크고 셀수록, 살상의 규모와 수준이 더 심각해진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살인광시대〉(1947년)에서 연쇄살인범은 이렇게 주장했다.
“한 명을 죽이면 악당, 수백만을 죽이면 영웅... 숫자가 [범죄를] 정당화한다,” “그들에 비해 나는 아마추어다.”
채플린은 곧 마녀사냥을 당했고, FBI가 그를 조사했고, 하원의 비(非)미국적 활동 조사위원회가 그를 소환했다. 결국 미국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가난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루즈벨트와 트루만, 존슨과 닉슨, 클린턴과 부시 부자, 맥아더와 키신저, 올브라이트와 럼스펠트... 백악관과 펜타곤의 살인자들 중에서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의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계급이 문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계급 사회다.
만약 이 사회에 계급이 없다면, 이토록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반하는 하루하루의 경험들은 다 무엇인가.
착각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 탓인가? 그렇다면 어느 계급 인간의 이기심 탓인지 물어야 한다.
경험으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계급 분단이 선명하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계급 위에 중립자인가? 계급을 초월한 심판관인가?
그럴 수가 없다. 애초부터 국가는 계급 지배를 위한 기구였다.
적어도 인류 역사의 95퍼센트 동안, 계급은 없었다. 따라서 국가도 없었다.
계급과 국가와 여성 차별은 대략 5000년 전쯤에 생겼다.
자본주의는 훨씬 더 최근이다.
EBS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인류 역사가 24시간이라면 자본주의는 이제 4초가 됐다.
지배계급은 극소수라서, 대다수를 지배하려면 국가의 무장력과 억압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지배계급은 우리 대다수를 끊임없이 분열시킨다.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계급이 단결해서 침을 뱉는다면, 그들은 익사할 것”(토니 클리프)이기 때문이다.
분열시켜야, 대중의 자신감이 떨어지고 저항 능력이 약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지배계급은 교육, 미디어, 성 차별, 인종차별 등을 동원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자체에서 비롯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부가 아니라 유독 가난이 죄인가.
“법은 그 위대한 평등으로 가난한 자뿐 아니라 부자에게도 다리 밑에서 잠자거나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빵을 훔치는 일을 금지한다.”(아나톨 프랑스, 사회주의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 사회에서 국가와 법의 실제 목적은 계급 지배에 있다.
따라서 범죄를 줄인다며 국가가 경찰, 검찰, 법원, 감옥을 강화하는 조처들을 좋은 것으로 볼 수 없다.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폭력적이고 차별적이고 착취와 소외로 점철된 체제야말로 범죄의 근원이다.
끝내야 할 것은 자본주의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의 비극이 끝날 것이다. 엄청난 부의 세습도 끝날 것이다. 화석연료 산업이 권력을 잃을 것이다. 백악관과 펜타곤의 살인자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