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저스트 머시〉(2019년, 136분):
미국 사법체계의 추악한 인종·계급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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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재조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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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꼭 보길 바란다. 반드시 엔딩 크레딧 끝까지 봐야 한다.
1986년 앨라배마에서 18살의 백인 여성이 살해되자, 이듬해 흑인 벌목공 월터 맥밀란이 체포됐다. 사건의 배경인 먼로 빌은 인종차별에 관한 유명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의 내용은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쓴 동명의 회고록에 기초했다. 국내에는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그는 삼십 년 넘게 가난하고 감금된 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의 단체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EJI)는 140여 명의 사형수를 경감, 전환, 석방했다.
영화는 충분히 좋다. 다만, 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보충이 더 필요할 뿐이다.
영화와 달리, 보안관 테이트는 월터를 살인 혐의로 체포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마이어스(거짓 증언한 백인 남성)에 대한 강간, 즉 “남색” 혐의로 체포했다. 동성 간 성행위가 위법임을 활용했다. 그러나 두 명은 만난 적도 없었다.
월터는 보안관이 말한 “남색(sodomy)”이란 단어를 몰라, 질문해야 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듣자, 실소가 터졌다.
그러나 보안관이 사납게 말했다.
“우리는 너희 깜둥이들이 백인 여자들과 어울려 다니지 못하게 할 거다. 너 같은 놈들은 모빌의 그 깜둥이한테 그랬던 것[KKK의 흑인 살해 사건]처럼 끌고 가서 목매달아 버려야 해.”
실제로 앨라배마의 주헌법은 인종 간 결합을 금지했다. “입법부는 흑인 또는 흑인의 후손과 백인의 결혼을 인가하거나 합법화하는 어떠한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 2000년까지 앨라배마에는 인종 간 결혼금지법이 존재했다.
어쨌든 영화처럼, 체포 먼저하고 조작했다. 살해 추정 시각, 월터와 내내 함께 있었던 최소 10여 명의 증언은 무시됐다.
실제로 재판도 하기 전에 보안관 테이트는 월터를 13개월 동안 교도소 사형수 수감동에 투옥했다.
사형수가 아닌 건 둘째 치고, 교도소는 기결수만 수감돼야 한다. 미결수는 구치소에 있어야 한다. 중대한 위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다.
월터와 마이어스는 전기의자 처형 일정에 맞춰서 이감됐다. 사람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공포에 떨게 했다. 월터는 사기가 저하됐고 마이어스는 위증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을 영화는 압축해 보여 준다. 실제로는 마이어스가 다시 위증을 거부했다. 그래서 보안관은 그를 또다시 사형수 감방에 보냈고, 패닉에 빠진 마이어스는 정신병원에 한 달간 입원됐다. 그래도 위증을 거부했다. 다시 세 번째로 사형수 감방에 이감되고 나서야, 결국 위증하게 됐다. 그러나 나중에 월터의 변호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말했다. 죄책감에 잠을 잘 수 없다고. 역시 보안관과 교도소의 불법 행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언론은 벌목공 월터를 “마약계의 대부,” “성범죄자,” “남색 혐의로 기소,”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마,” “강도와 절도, 위조, 마약 밀수를 일삼는 범죄 조직의 일원,” “조직의 수괴” 등이라 보도했다.
영화처럼 변호사들은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미행도 당했다. 폭파 위협이 3번이나 있었다. 배달된 폭탄에 흑인 변호사가 살해되거나, 항소법원의 판사가 살해되는 사건들이 실재하던 때였다.
영화처럼 검사가 지시한 위증을 거부한 백인 경찰관이 있었고, 해고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검사와 판사는 면책권이 대단히 강력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 정도는 거의 책임지지 않는다.
변호사 브라이언이 알몸 수색을 당하는 장면은 실제로는 “정신장애”가 있는 다른 사형수 에이버리 젱킨스의 사건을 맡았을 때 겪은 에피소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성에 관한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의 10장을 직접 읽어 보길 권한다. 정말 감동적이다!
월터는 석방됐지만, 고통은 지워지지 않았다. 석방된 후 사형제 폐지와 인권 변호를 위한 좋은 활동을 이어갔지만 7~8년 후 조기 치매에 걸려, 2013년에 사망했다. 요양원에서는 자신이 다시 사형수가 된 줄 알고 괴로워했다.
정부 차원의 배상은 없었다. 민사소송의 합의금이 있었지만, 정작 주범 격인 보안관은 빠져나갔다. 보안관에 6번이나 재선해서 2019년에 은퇴했다.
은퇴 직전 그가 다시 언론을 탔는데, 가관이었다. 앨라배마에서는 수감자들의 식비를 아끼면, 보안관에게 돌아간다. 즉, 재소자들에게 싸게 먹일수록 보안관들은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그는 세금도 냈고 합법이라 주장했다.
영화처럼 사형수들은 동료 사형수가 처형될 때 미친 듯이 철창을 두들겼고, 소리쳤다. 사형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쳤다. 교도관들에게 “살인자들아!”라고 외쳤다.
영화에는 같은 앨라배마 홀먼 교도소 사형수 수감동의 또 다른 사형수 앤서니 레이 힌튼도 나온다. 그는 1985년 체포돼 결백한 사형수가 됐고 2015년, 30년 만에 무혐의로 석방됐다.
홀로 열 명의 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막내가 석방되길 17년 동안 애타게 염원했지만,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유일하게 범한 죄가 있다면 하필 앨라배마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것뿐이었다.”(앤서니 레이 힌튼, 《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
1평이 안 되는 그의 독방은 사형집행실에서 불과 9미터 떨어졌다. 전기의자 처형은 냄새가 다음날까지 남았다. 코에서 탄내가 나고, 목이 따끔거리고, 눈물이 흐르고, 속이 울렁거렸다.
54명이 그의 방문 앞을 지나서 죽으러 갔고, 22명이 그 전에 자살했다. 한 사형수는 “사형이 아니라 정의를 집행하라”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처형장을 향했다.
사형수 수감동은 아침 식사가 오전 3시, 점심이 오전 10시, 저녁 식사가 오후 2시다. 아침 식사는 계란 가루와 비스킷 하나, 젤리 한 스푼이고, 밤이면 바퀴벌레와 쥐들이 기어 나오고 사형수들의 신음, 울음 소리,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책 《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유머가 있다. 그는 교도소장에게 요구해 북클럽을 조직하고 사형수들과 책을 읽고 토론했다. 그는 사형수들의 진정한 친구가 됐다.
흑인 청년을 린치하고 죽인 백인 사형수와도 친구가 됐다. 그에게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책들, 《앵무새 죽이기》 같은 책들을 권했고 읽고 함께 토론했다. 그는 점차 변했다. 인종차별의 잘못을 깨달았고, 지역 KKK의 단장인 아버지에게 흑인인 앤서니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악수를 거부했다.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사형수 수감동에는 그런 사람이 정말로 드물다.”
앤서니 레이 힌튼은 여전히 자기 앞을 지나가 처형된 54명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 킹사이즈 침대를 샀지만, 30년 동안 그랬듯이 태아처럼 웅크리고 잔다. 정부는 그에게 한 푼도 배상하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고, 영수증을 챙기고, 보안 카메라 앞으로 다닌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 싶으면 몇몇에게 전화해서 뭘 하고 있는지 알린다. 밤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날마다 빠짐없이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다.
영화뿐 아니라 책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법과 감옥에 드리운 인종과 계급 차별의 길고 추악한 그림자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올해 미국에서 아래로부터 분출한 위대한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저스트 머시〉는 각종 온라인TV 채널에서 유료로 볼 수 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사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6월 한 달간 영화를 무료로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