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참사 35년 — 왜 핵발전은 대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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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의 방사성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낸 가운데, 어느덧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35년이 됐다. 이 참사가 보여 준 핵발전의 위험성과 핵발전을 둘러싼 쟁점들을 짚어 본다.
다음은 2019년 8월 호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월간지 《솔리대리티》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당시 그 참사를 다뤄 화제가 된 드라마 〈체르노빌〉에 관한 내용은 생략했다.
1986년 4월 26일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반응로 한 기가 폭발했다. 히로시마 핵폭탄의 400배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방출됐다.
정부 당국은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못했고, 재앙을 수습하기 위해 파견된 소방관들과 도움을 주려고 몰려온 수많은 자원 봉사자에게 거짓말을 했다.
체르노빌 피해 규모는 한번도 공식적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 소련 당국은 재해 규모를 은폐하려 했고, 그 결과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 케이트 브라운은 저서 《생존 매뉴얼》을 집필하기 위해 4년간 수많은 연구와 기록 보존소의 자료들을 검토했다. 그녀는 사망자 수를 3만 5000명에서 15만 명으로 추정한다. 체르노빌 참사 이후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암, 호흡기 질환, 빈혈, 자가면역 질환, 선천적 기형, 불임 문제가 사고 발생 전보다 2~3배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만이 그 재앙으로 배우자를 잃은 3만 5000명에게 지금도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재앙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방사능은 대부분 벨라루스를 강타했다. 현재 벨라루스 농지의 20퍼센트는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멀리 떨어진 지중해 코르시카 섬에서까지 오염된 토양이 발견됐다. 영국에서는 체르노빌의 방사능 물질이 섞인 비가 내린 후 9000곳에 달하는 농장에 사용 제한 조처가 내려졌다. 마지막 제한 조처는 26년 뒤에야 해제됐다.
소련 정부는 어떤 경고도 발표하지 않았다. 폭발 이틀 후 스웨덴 당국이 방사능 증가를 감지하고 나서야 전 세계가 이 재앙을 알게 됐다.
스탈린주의 러시아
체르노빌 참사와 소련의 은폐 시도는 소련의 몰락을 앞당긴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소련은 1917년 진정한 노동자 혁명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오시프 스탈린은 반혁명을 이끌어 노동계급 조직과 저항을 분쇄해 소련을 독재 국가로 만들고, 서방과 경쟁하기 위해 강제 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소련의 모든 산업을 국가가 소유했고, 노동자들은 이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이 체제는 새로운 지배계급에 의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자비한 노동자 착취를 통해 이뤄지는 자본 축적에 의존했다. 체르노빌 참사 당시 이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수십 년 간의 침체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었다.
프랑스 자유주의 이론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나쁜 정부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개혁을 시작할 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소련 지배계급은 향후 방향을 놓고 분열했다. 1985년에 집권한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경제를 시장에 개방하고 세계 경제로 통합시키길 원했던 지배계급의 일부를 대표했다. 이런 정책은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내 고르바초프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지배계급의 더 보수적인 일부와 권력 투쟁에 휘말렸다.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 고르바초프는 정치적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글라스노스트”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더 많은 변화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
체르노빌 참사는 이 과정을 가속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련 체제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 체제가 서구보다 기술이 더 낫다는 주장도 신뢰를 잃었다. 1989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광원 파업이 러시아를 휩쓸었다. [동유럽에서] 혁명들이 일어나 곧 소련 자체를 붕괴시켰다.
위험
체르노빌은 세계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1979년에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핵발전소에서 기계 고장으로 반응로 하나가 부분적으로 녹아내렸다.
영국에서는 2001~2008년 사이 핵발전소에서 1767건의 방사성 물질 누출, 고장 또는 기타 안전 사고가 발생했다.
프랑스 정부는 모든 핵 사고를 공표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공표되는 사고가 연간 최대 800건에 달했다. 2009년에는 폭염으로 강이 냉각수 구실을 못할 정도로 데워져서 프랑스 핵발전소의 3분의 1이 폐쇄됐다. 기후 변화로 지구가 더워지면서, 핵 안전성에 끼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2011년 일본은 노심용융(멜트다운)에 직면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방사성 물질이 방출됐다.
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최악의 경우 도쿄에서 3000만 명을 대피시켜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와 오나가와 핵발전소 모두 방사성 물질 누출, 반응로 손상 사고가 일어나 이를 은폐한 역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계속 두 발전소의 운영을 허용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 이후 많은 발전소가 폐쇄된 후에도 여전히 핵발전 의존도를 높이려 한다.
이런 상황은 세계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2031년까지 핵반응로 21기의 건설을 발주했고, 그중 상당수는 이미 건설 중이다. 중국은 핵반응로 45기[2021년 현재 49기]를 가동 중이고 15기를 더 건설하고 있으며, 향후 20년 동안 매년 2기를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탈핵’을 했다는] 호주에서도 보수 연립 여당 국회의원들이 다시 핵발전을 촉구하고 있고, 또 다른 공식 조사 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위원회의 주목적은 더 많은 우라늄 채굴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호주는 세계에서 우라늄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2019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대법원은 [환경보호 단체들이 제기한] 일리리 우라늄 광산 개발 사업에 대한 승인 취소소송을 기각했다.
청정 에너지?
이 광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핵 산업은 친환경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핵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는 탄소 중립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즉, 이산화탄소를 생성하지 않으므로 기후 변화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처럼 보일 수 있다. 반응로에서 일어나는 핵반응은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추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채굴, 운송, 폐기물 보관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 가스가 생긴다.
2004년 ‘지구의 친구들’이 낸 보고서는 핵반응로 건설, 우라늄 채굴·수송, 핵연료의 처리와 추가 수송, 방사성 폐기물 장기 보관에 따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핵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풍력 발전보다 약 50퍼센트 더 많았다.”
호주 남부의 애들레이드시(市) 북쪽의 록스비다운스 인근에 있는 올림픽댐광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우라늄 광산이다. 이 광산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주(州) 전력의 4분의 1을 소비한다.
이 광산은 또한 지역 환경을 파괴하고 주변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킨 끔찍한 역사가 있다.
게다가 세계 에너지 발전을 화석 연료 기술에서 핵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만큼 빠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 핵발전소 하나를 짓는 데 15년이 걸린다.
핵발전은 기후 변화의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의 일부다.
핵발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안전한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자리, 생활 수준과 기후 변화 대처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식이 돼선 안 된다. 2018년 말 스페인 광산 노조는 2억 5000만 유로 규모의 협약을 따냈다. 이를 통해 스페인의 거의 모든 탄광을 폐쇄하면서도 정당한 전환의 일환으로 관련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훈련을 받게 됐다.
핵반응로에서 생기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고려하면 핵 산업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얄팍하기 그지 없다. 이 폐기물은 수십만 년 동안 치명적인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지는 상당한 의심을 받고 있다. 영국의 핵 폐기물 보관을 담당하는 기관은 폐기물을 지하 1킬로미터에 매장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해당 기관의 고문들조차 폐기물 저장 용기가 500년 이내에 녹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업저버〉 신문은 “영국의 유해 핵 폐기물 비축량의 거의 90퍼센트가 제대로 보관되고 있지 않아 언제라도 폭발하거나 누출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 폐기물만으로도 산을 채우고도 남아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보다 더 나쁜 측면이 있다.
“민간” 핵발전 프로그램은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시작됐다. 1956년 영국에서 최초로 셀라필드 핵발전소가 가동됐을 때 그것의 주목적은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초기 핵발전소도 마찬가지다. 핵무기를 생산한 10개국 중 8개국이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북한도 핵발전 프로그램을 통해 플루토늄을 축적했다.
체르노빌 참사로 우리는 유럽을 거의 잃을 뻔했다. 재앙이 일어나면 누가, 얼마나 심각하게 피해를 입는지가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준 참사였다. 이 참사는 스탈린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 준다. 또, 안전한 핵발전과 안전한 폐기물 보관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핵발전은 기후 변화의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