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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0년:
안전하고 평화적인 핵 에너지는 없다

2011년 3월 11일 저녁 국내 방송사들은 몇 시간 전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친 지진해일(쓰나미)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거대한 해일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가는 집과 자동차들, 육지로 떠밀려 온 대형 선박이 건물들과 충돌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재난 영화를 무색하게 할 지경이었다. 2만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다.

늘 그렇듯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신속히 대피하고 이웃의 생명을 구한 일본인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사고 지역에 있던 ‘후쿠시마 제1원전’(핵발전소)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3호기는 안전 장치에 의해 자동으로 정지됐다. 4호기는 점검을 위해 정지돼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50분 뒤 지진해일이 발전소를 덮쳤다.

석탄이나 가스 등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는 연료를 꾸준히 공급받아야 하지만, 핵발전소는 일단 연료를 장전하고 핵분열 반응이 시작되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한동안 스스로 계속 열을 낸다.

그래서 핵발전소는 열을 발생시키는 것보다 그 열이 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도록 냉각시키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냉각 기능이 멈추면 반응로의 온도가 계속 높아져 결국 녹아내린다. 이날 지진해일은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무력화하고 냉각장치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30시간 동안 냉각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사투가 벌어졌지만 모두 실패했다. 매우 높은 방사선 유출 때문에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조기에 바닷물을 부어 반응로를 식히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도쿄전력 고위 관료들이 거부했다. 정제되지 않은 바닷물을 부으면 발전소를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발전소 안에 찬 수소가 폭발해 발전소 지붕이 날아가는 영상이 전 세계로 송출됐다.

폭발 이후 방사성 물질을 대량 배출하고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비슷한 사고는 앞으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출처 DigitalGlobe

수소 폭발보다 더 심각한 일은 발전소 바닥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압력용기 바닥이 녹아 핵연료가 그 아래로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멜트다운이었다. 핵발전 연료인 우라늄은 매우 무거운 금속이라 주변을 녹이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방사성 물질이 발전소 인근 지역에 대량 유출된 뒤에는 자동차를 탄 피난 행렬과 석유를 구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 하얀 방호복을 입고 이재민의 몸에서 방사능을 측정하는 소방관들, 방사능에 오염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엄마와 아이, 피난길을 따라 높게 측정되는 방사선 등. 지금까지 어떤 재난 영화도 그리지 못한 서늘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최고 등급(7등급)의 핵 사고로 기록됐다. ‘안전한 핵발전’이라는 신화가 무너졌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앞으로 20년 동안 핵산업은 암흑기에 놓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국내의 신형 ‘가압 경수로’가 후쿠시마의 구형 ‘비등 경수로’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원리상 구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냉각장치가 정지하면 같은 처지에 놓인다. 냉각을 위한 복잡한 장치들은 사소한 실수나 부실 공사 등으로도 고장나기 쉽고,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면 접근하기도 어렵다. 고리·월성 핵발전소는 지진대 위에 놓여 있다.

10년 뒤

10년 사이에 이 발전소는 어떻게 됐을까? 조금 과장하면 10년 전 그대로다. 녹아내린 핵연료에서 핵분열이 계속되면서 열을 내고 있다. 이를 식히려고 바닷물을 들이붓고 있고 그 오염수가 계속 쌓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장 시설 부족을 이유로 오염수를 해상에 방류할 계획을 세웠다.

강한 방사선 때문에 1~3호기의 압력용기에는 여전히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무너져 가던 발전소 건물에 구조물을 설치해 추가 붕괴를 막은 게 고작이다.

각각의 발전소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려고 만들어 둔 수조가 있다. 사용후 핵연료(연료봉)는 열과 방사선을 계속 내뿜기 때문에 물속에 보관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연료봉을 사용하는 월성 1호기의 경우에도 연료봉이 완전히 식으려면 6년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호기 수조에 있던 연료봉은 2014년에, 3호기 수조에 있던 연료봉은 올해 3월에서야 회수가 완료됐다. 그러나 여전히 1호기에는 392개, 2호기에는 615개의 사용후 핵연료봉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2~3호기 건물 상층부에서 매우 강한 방사선이 측정됐다. 1시간만 노출돼도 사망할 정도로 강한 방사선인데, 압력용기 상부를 덮는 ‘실드플러그’에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들러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이 방사선의 강도가 지금의 10퍼센트로 줄어들려면 100년쯤 걸린다는 뜻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예상과 달리 핵산업은 암흑기에 놓이지 않았다. 핵발전의 신화가 무너지고 전 세계 곳곳에서 탈핵 시위가 벌어졌지만, 지배자들이 핵발전을 단념하도록 밀어붙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때 모두 정지됐던 일본 핵발전소는 2021년 2월 25일 기준으로 33기가 가동되고 있다. 전 세계 38개 나라에서 443개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51개가 건설 중이다.

왜 지배자들은 핵발전소 안 없애나

빌 게이츠는 최근 출판한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김영사)에서 기후 재앙을 피하려면 핵발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는 인류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생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이유다.

빌 게이츠 자신이 핵발전 기업 테라파워의 창립자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그의 비판은 순전히 기업주들의 관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즉, 제아무리 잠재력이 커도 이윤을 충분히 얻을 수 없다면 누가 투자하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와 자본가들의 의구심에도 재생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력은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대단히 높아져 이제는 보수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경제성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어마어마한 양의 핵발전 설비에서 이윤을 얻고 있는 지배자들이 이를 폐기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이 각국 정부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력은 발전 정책에 거의 그대로 반영된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은 핵산업이 유지되는 데에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가동되는 핵발전소에 지급된 보조금은 발전 ‘원가’의 140퍼센트에 이른다(한국 한수원은 구체적이고 믿을 만한 발전 원가를 공개한 적이 없다). 그 덕분에 생산된 ‘값싼’ 전기는 제조업 자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쟁력을 제공한다.

경쟁하는 열강도 핵산업의 유지를 바란다. 사용후 핵연료가 잠재적인 핵무기 원료이기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도 여러 차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험을 몰래하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대놓고 핵잠수함 개발에 나섰다. 문재인의 ‘탈핵’ 제스처조차 믿기 어려웠던 이유다.

핵무기와 방사능 위험에서 안전한 세계는 제국주의적 경쟁이 사라지고, 이윤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는 자본주의 자체를 폐지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방사선 위험에 대한 거짓말들

월성 1호기 지하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예상치보다 높게 측정돼 논란이 됐다. 그러자 일부 과학자들은 해당 방사선 수치가 멸치 몇 마리, 바나나 몇 개가 방출하는 양과 비슷하다며 별 문제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어떤 물질이 내뿜는 방사선 양보다 살아 있는 세포가 실제로 노출되는 방사선 양이 중요하다. 어떤 물질이 방사선을 다량 방출해도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잠깐만 노출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삼중수소가 체내에서 인체 조직과 결합되면 세포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방사선에 노출된다. 어떤 방사성 물질은 금방 배출되는 반면 어떤 방사성 물질은 상당히 오래 인체에 남는다. 안타깝게도 이 ‘체내 피폭’ 문제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실험이 어려울 뿐 아니라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이를 체계적으로 방해해 왔기 때문이다. 1959년 IAEA는 세계보건기구(WHO)와 협약을 체결했는데, 그 협약은 핵 발전과 핵무기 개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발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었다.(헬렌 칼디코트, 《원자력은 아니다》)

그래서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작성한 체르노빌 사고 보고서는 그 사고로 46명만 사망했다고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가 2006년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방사선량과 암 발생률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아주 적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돼도 암 발생률이 비례적으로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등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핵발전소(월성) 주변에 거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 자료를 검토한 결과, 갑상선암이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서도, 갑상선암만이 아니라 다른 방사선 관련 암에서도 증가하는 경향, 그리고 출생년도에 따라 구분했을 때, 뚜렷한 양-반응관계를 보였다”고 발표했다.(당시 이명박 정부는 같은 자료를 두고 방사선이 건강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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